백호주의 우려 높지만 다문화주의 위해 잘 짜인 제도는 감탄할 만
▣ 시드니=권기정 전문위원 kjkwon@hotmail.com
얼마 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한 대학교수의 인종주의적 발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화제의 주인공은 매콰리대 인문학부 공법학과 앤드루 프레이저 교수. 그는 잇따른 매체 기고를 통해 유색인종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프레이저 교수는 아프리카 흑인은 인종적으로 열등하고 또 아시안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사회 지배계층을 형성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인의 경제적 권익을 빼앗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레이저 교수 자신이 캐나다에서 출생한 뒤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온 이민자다.
최근 프레이저 교수같이 유색인종을 싸잡아 폄하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에 백호주의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사실 7·7 런던 테러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에선 무슬람 중동계 이민자에 대한 기피 풍조가 알게 모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전에도 알카에다와 직·간접으로 결부된 테러가 다른 나라에서 발생할 때마다 오스트레일리아 내 회교 사원 등에는 방화 같은 유사한 보복행위가 심심찮게 일어났다.
현재 연방정부는 반테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반테러 정책이 강화될수록 중동계 이민자가 많은 시드니의 라켐바 등지에서는 회교도에게 침을 뱉는 등 애꿎은 인종차별 사건이 간간이 보도되고 있다. 일부 라디오 방송의 토크쇼에서는 아예 “중동계 이민자를 막아야 한다” “중동계 이민자에겐 시민권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 일부 청취자들의 원색적인 발언도 자주 나오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슬람 혐오주의’에서 시작한 불똥이 오스트레일리아 내 모든 유색인종 배척 움직임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같은 눈에 보이는 현상들만으로 ‘오스트레일리아=백호주의’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인종차별 국가’라고 평가하기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서 뭔가 석연찮다.
오스트레일리아 사회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외국 태생인 이민자들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각 문화간 ‘다름’을 인정하는 ‘다문화주의’다. 정부에는 ‘다문화부’가 따로 있어 다양한 문화적 차이와 상대성을 인정하고 100여개에 달하는 소수민족과 각 커뮤니티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정책들을 추진한다. 이민자들의 사회·정치·경제적 참여를 돕기 위한 제도적 지원도 각양각색이다. 동네 경찰서마다 그 지역에 많이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언어를 구사하는 일명 ‘소수민족 연락관’이 배치돼 있고, 주요 정부 부처의 민원 서비스는 영어 외에도 다양한 언어로 제공된다. 정부가 돈을 들여 신규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서비스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또 연간 이민자 쿼터도 국가별이 아니라 숫자만 정해놓고 있다. 요건이 되는 모든 신청자들에게 이민의 문호가 열려 있다. 예를 들면 최근 기술인력 부족이 심화되자, 가족 초청 이민보다는 독립 기술이민 쿼터를 늘렸다. 그래서 엔지니어나 정보기술(IT) 인력을 많이 보유한 인도 등 아시아계 이민이 늘어났다.
이처럼 비교적 잘 짜인 제도적 지원 덕에 평등주의와 관용의 정신이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최대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인종차별이나 백호주의 논란에는 꼭 말없는 다수의 목소리는 없이 ‘튀는’ 일부 사람들의 발언만 도드라진다. 도발적인 인종주의 발언이나 정체불명의 논리를 세우며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소수는 그야말로 ‘튀기 때문에’ 언론과 사회의 조명을 받는 셈이다.
반론의 여지가 많은 단순 비교이긴 하지만,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나란히 놓고 보라. 한국에는 동남아 노동자들이나 문화적 소수집단에 대한 공개적 폄하 발언이 없지만 그들에게 별다른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가끔 인종주의적 발언과 돌출 행동이 나오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다름을 인정한다. 과연 어떤 곳이 더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적인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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