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황재균이 미국 프로야구(MLB·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그의 실력만큼이나 많이 얘기된 건 ‘배트 플립’(Bat Flip)이었다. 홈런을 친 뒤 배트를 던지는 행위를 미국에선 배트 플립이라 부른다. 한국에선 이를 대체하는 말이 등장했다. 빠따 던지기, 즉 ‘빠던’이다.
황재균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빠던을 가장 과하게 하던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미국 언론에서도 황재균을 소개하며 배트 플립 얘기를 빼놓지 않았고, 황재균의 소속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은 황재균의 빠던을 보며 폭소를 터뜨렸다 한다.
MLB에서 배트 플립은 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불문율이다. 홈런을 맞은 투수를 자극하지 말라는 것이고 이를 어기면 다음 타석에서 보복구도 감수해야 한다는 게 암묵적 규칙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박병호나 황재균 같은 타자들은 한국에서와 달리 배트 플립을 하지 않을 거라는 인터뷰를 반복해야 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요란한 빠던의 나라’다. 누구라도 홈런을 친 뒤 타구를 응시하며 배트를 집어던질 수 있고, 누구도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처음 뛰는 외국인 투수들이 홈런을 맞고 불쾌해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런 한국의 관습(?)이 미국 야구인들에겐 신기했다. 롯데 자이언츠의 전준우나 정훈의 빠던 영상은 미국 언론의 해외 토픽으로도 소개됐을 만큼 화제를 모았고, 많은 야구 매체들이 미국에선 보기 어려운 한국 프로야구의 빠던에 큰 관심을 보였다. ESPN의 미나 키메스 기자는 아예 한국을 찾아 수많은 관계자들을 만나며 빠던의 기원을 찾고 빠던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를 기사로 썼다. 야구를 넘어 근래 읽은 가장 훌륭한 탐사 기사였다.
미국 야구계가 한국의 빠던에 관심을 보이는 건 메이저리그의 고민 때문이기도 하다. 야구를 보는 연령층은 점점 높아지고 미식축구는 물론 농구에게까지 인기를 위협받고 있다. 젊은 층으로 내려갈수록 야구의 인기는 떨어진다. 미국에서 야구는 ‘노인이 보는 지루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점점 더 넓게 퍼져가고 있다. 빠던이야말로 지루한 야구에 역동성을 더할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볼거리가 훨씬 더 많아지는 건 물론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제 그 불문율을 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야구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보수파와 ‘우리의 기분을 바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진보파의 의견이 오간다.
올 3월에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두며 관심을 모았다. 각 나라의 자존심을 걸고 출전한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상황마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메이저리그에선 볼 수 없던 격한 감정 표현과 세리머니가 오갔고 중요한 장면마다 선수들은 포효했다. 빠던 역시 빠지지 않았다. 그동안 메이저리그에선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정도로 힘차고 멋있게 빠따를 내던졌다. 선수들의 감정은 관중석과 TV를 보는 시청자에게까지 전달되며 흥분의 순간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그 순간, 야구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젊고 역동적이었다.
생각해보면, 빠던은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저 투수의 기분이 조금 나빠질 뿐이다. 단지 그것 때문에 이 흥분을 포기해야 한다고? 이것이 전통이라면 그리 좋지 못한 전통에 속할 것이다. 야구에 빠던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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