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0월21일 아침 7시를 기해 선포된 주베트남 미군당국의 군포 교환으로 구군표가 된 661시리즈와 신군표 681시리즈. 12시간 안에 교환되지 않은 구군표들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지난 8월18일 대한축구협회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판마르베이크와의 국가대표 감독 협상이 결렬되었음을 알렸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진행하겠다”며 소신을 밝혔다. 다른 누구도 아닌, 히딩크를 한국 축구로 초대해 신화를 기획했던 인물이 이용수였기에 팬들은 기다림에 동의했다.
축구팬들은 여전히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원인이 ‘의리축구’ 때문이며, 외국인 감독이 와서 편견 없이 선수를 선발해 세계 축구의 흐름을 입힌다면 한국 축구가 강해질 것이라 믿는 것 같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여전히 히딩크의 임팩트 때문이다. 2002년의 히딩크는 1년6개월간 마치 클럽팀처럼 대표팀을 운영할 수 있었고, 유례없는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에게도 그런 예외적인 상황은 제공될 수 없다. 히딩크 뒤에 우리는 4명의 외국인 감독을 거쳤지만 그들의 유산은 우리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국가대표 감독 선임을 둘러싼 풍경을 지켜보며 엉뚱하게도 나는 영화 의 임권택 감독을 떠올렸다. 조선의 화가 장승업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서 임권택 감독은 문밖에서 방 안의 풍경을 보여줄 때 양옆으로 방문을 조금씩 닫아두고 촬영을 했는데, 이 장면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 “영화는 서양의 기술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오. 기본적으로 가로의 예술이지. 그런데 동양화의 구도는 세로란 말이야. 나는 서양의 기술 안에서 동양화의 구도를 살리고 싶었소. 그래서 스크린 양옆으로 방문을 조금 닫아서 세로에 가까워지려 한 거요.” 이 ‘서양의 기술로 동양의 구도’를 그린 영화로 임권택 감독은 2002년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감독상을 받는 역사를 만들었다.
어차피 축구도 서양이 발명한 스포츠다. 중요한 것은 세계 축구의 흐름에 편승하는 게 아니라 그 흐름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경쟁력을 기르는 일이다. 지금 한국 축구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정체성도 특징도 없다. 2002년의 그 위대한 조직력은 실종된 지 오래다. 히딩크가 위대한 것은, 그가 한국 축구의 장점을 이식한 것이 아니라 발견했다는 것이다. 모두의 편견과는 달리 한국 축구가 기술은 좋으나 체력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내놓았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한국 선수들은 심장이 2개가 된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히딩크의 한국대표팀이었다. 2002년에 역사를 만든 2명의 감독, 히딩크와 임권택은 모두 가장 한국적인 것에 집중한 감독이었다.
어설프게 세계 축구의 유행을 입혀보는 감독보다는, 한국 축구를 열정적으로 관찰해 재해석해낼 수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용수의 기준을 통과한 감독이라면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줘야 한다. 한국 축구의 퇴보에는 올림픽의 영웅을 2년 만에 역적으로 폐기 처분해버린 팬들의 근성도 일정 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축구협회와, 감독과, 팬들이 함께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다. 다시 축구로 축제를 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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