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격’이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어 보이는 어떤 존재의 위엄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려움 같은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시간이 태생적으로 소멸과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의 테가 우연보다 집념에 더 많이 좌우되는 이유기도 하다.
지난 5월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27년이나 이끌어온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은퇴를 선언했다. 축구가 비즈니스가 된 세상에서, 전세계에서 축구로 마케팅을 가장 잘하는 클럽의 수장이던 그는 정작 ‘옛사람’이었다. 퍼거슨은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을 누구에게나 당당히 할 수 있는 유일한 감독이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에, 노동자 계급의 존재와 그 삶의 방식과 가치를 가장 중시하는, 축구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여지를 주지 않던 철저한 지도자였다.
그렇다고 퍼거슨이 무슨 ‘무결점의 영웅’이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악랄한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조직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경우도 마다하지 않고 우수한 개인들을 무한히 희생시켰다. 그 과정에서 배신과 교묘한 심리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퍼거슨을 등지고 나간 선수도 있고, 데이비드 베컴 같은 선수가 쫓겨나기도 했으며, 희대의 불륜 사건으로 여전히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라이언 긱스 같은 선수를, 적어도 그라운드 안에서는 문제 삼지 않기도 했다. 한 번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퍼거슨의 요청으로 복귀했다, 결국 퍼거슨과 같은 날 영원히 현역 시절을 마감한 폴 스콜스 같은 선수도 있다. 스콜스는 맨유에 전념하기 위해 국가대표마저 이른 시기에 은퇴했을 정도다.
유럽 축구사를 통틀어 이렇게까지 사랑받고 또 철저한 충성심을 담보할 수 있었던 지도자는 아마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의 시대는 점점 더 그런 것들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퍼거슨의 위대함은 무엇보다 그가 ‘마지막 존재’라는 점에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이전 세대에서 태어나, 완전히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낸 뒤, 우리의 ‘지금’에 대체 불가능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 리더는, 분야를 막론하고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몇 년 전이다. 시즌이 한창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던 3월 즈음, 퍼거슨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당히 “다다음주쯤이면 1위로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경험 많은 노감독이라지만, 너무 심한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유는 정말 몇 주 뒤 1위가 됐고, 우승을 했다. 그가 쌓아온 시간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집념이었다. 30년 뒤, 우리는 이런 감독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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