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기성용 같은 유형의 선수를 본 적이 없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 까닭에는 그런 이유도 있다. 기성용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그 과정의 곳곳에는 확실히 독특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열리기 전, 기성용은 소속팀 셀틱에서 좀처럼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축구계는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공동체 의식이 아주 강한 곳이다. 당시 축구계의 많은 사람들이 “기성용이 대표팀에 와서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빨리 경기에 나서야 할 텐데…”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기성용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축구를 위해서였다. 정작 본인은 상대적으로 덜 조급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010년, 그의 나이는 겨우 21살이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문자 그대로 앞날이 ‘창창한’ 선수였다. 당장 남아공 월드컵에서 세상의 정점에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일은 없었다. 놀랍게도 석 달 뒤, 기성용은 2010년 6월 남아공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잘나가던 ‘절친’ 이청용보다 많은 주목을 받았고, 대표팀 경기력에도 상당 부분 공헌했다. ‘G세대’라 불리는 또래 선수들 중 기성용은 결과적으로 지금 이 시점에 가장 많이 성장한 선수가 됐다. 이청용은 큰 부상으로 오랜 기간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직속 선배인 박주영의 앞날은 불투명할 정도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일이 벌어져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것처럼 위태해 보이던 기성용의 축구 경력은, 다행히도 선덜랜드로 이적하며 다시 돌파구를 찾았다. 위기가 닥치면 넘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조급해하지 않고 파도에 몸을 맡기듯 넘어내는 선수도 있다. 기성용은 언제나 후자에 가까운 선택을 하고 있다. 지금 당장, ‘홍명보호’라는 배가 만들어지는 현장에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그 배가 브라질을 향해 진짜 출발하기 시작했을 때, 기성용은 다시 한번 선장의 적잖은 신임을 받는 1등 항해사(중 하나)가 돼 있을 가능성 역시 크다. 그래서 더더욱,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궁금하다. 우리네 정서가 기성용이라는 선수의 성장과 결과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얼마 전 새벽길에 집으로 가다 국가대표까지 뛰었지만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 20년 가까이 택시 기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분의 차를 탄 적이 있다. 그는 여전히 K리그 클래식 현역 감독들과 형·동생 하고 지내는 사이였고, 축구인들의 공동체 의식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게 해주는 에피소드를 쉴 새 없이 들려줬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은 “예전 같으면 절대 다시 못 뛰었을 거야”였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결국 기성용이 브라질에 갈 것이라는 사실에도 이견이 없었다.
이른바 ‘준비된 인재’라고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다양한 종류의 참사를 겪고 있는 요즘, 그 뒤의 과정을 보면 세상은 점점 더 ‘쿨’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도, 실용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에 따라, 체감하기 어려운 일부터 순차적으로, 결국에는 기억 저 멀리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다음 세대가 ‘레전드’를 판단하는 기준은 지금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은혜 SBS ESPN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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