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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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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에도 박수가 인색한 사회

‘1인자들’에 대한 예의
등록 2013-07-30 15:19 수정 2020-05-03 04:27

취재를 위해 종종 ‘1인자’를 만날 때가 있다. 그중에는 당연히 ‘세계 1인자’도 여럿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누군가가 어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면 응당한 존경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 최고가 되는 방법으로 이것 말고 더 명확한 방법을 아직까지 많이 보지 못한 까닭이다.
개인적인 고백을 이어가자면, 사실 어두운 이면을 볼 때보다 더 힘든 순간은 1인자가 되기 위해 지독히 노력하는 선수나 그 환경이 너무 열악하거나 그런 선수가 인정받지 못하는 장면을 접할 때다. 1년 전쯤 쇼트트랙 국가대표인 노진규 선수를 공항 입국장에서 만날 일이 있었다. 그는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8개나 목에 걸었고, 줄곧 세계 랭킹 1위를 지켰다. 너무 지친 나머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코피를 쏟았다고,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태연하게 인터뷰하는 그를 보며 웃을 수도 없었다. 그저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문득 근본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금메달을 목에 걸면 돌아오는 보상도 있고 그마저도 손에 쥐지 못하는 선수가 세상에는 더 많지만, 그래도 승리한 자의 노력에 정당한 박수를 치는 일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나 잘난 척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주 강원도 원주 양궁장에서 대통령기 양궁대회가 열렸는데 그곳에는 관중도,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세계 1위에 한 번쯤은 올라봤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부터 세계기록 보유자까지 신궁 수준의 선수가 즐비했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그렇게 종종 세계 최고가 된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만날 때, 요즘에는 존경심보다 근본적인 회한 같은 것이 가슴에 사무치는 느낌이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운동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은 슬픈 농담이다. 한국 스포츠는 인기 종목이든 비인기 종목이든 많은 종목에서 세계 1위를 배출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가 정말 많다. 그렇다고 단지 1등만 기억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승리보다 과정에 의미를 두자는 이상론도 아니다. 선수에게 승리를 목표로 하지 말라는 것보다 잔인한 이야기도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다만, 조금 더,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른 선수들의 가치를 기억하고 또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 1인자가 되었다면,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1인자가 되었다면 사심 없이 그의 땀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줘도 좋지 않을까. 우리가 서로의 가치를 조금씩 더 존중할 때, 이 세상은 조금 더 살 만한 곳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SBS ESP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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