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앞에서 ‘다음’에 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서 숙연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성실한 노력은 언젠간 보상받는다는 단순명료한 믿음을 확인할 때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스포츠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개인적으로- 물론 대국민적으로도 당연히 그럴 것 같지만- 한국이 내년 브라질월드컵에도 출전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축구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누군가 혹은 어떤 조직이 세계 최고를 가리는 자리에 30년 넘게 꾸준히 도전한다는 것은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그렇게 감상적인 곳이 아니다. 한국 축구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월드컵이라는 공간에 발을 딛기 위해 감내한 희생과 노력, 고통은 종종 상상을 초월한다. 노력의 형태는 분야와 종류 그리고 강도를 달리해 그 성과를 뒷받침해왔다. 그것은 누군가의 부상일 때도 있고, 누군가의 눈물일 때도 있고 때로는 돈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중에서도 가장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선수와 감독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감독들인데, 흔히 알려진 것처럼 그들은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눈앞에서 독이 든 성배를 마시는 감독을 만난 느낌이다. 최강희 감독은 한국 축구를 여덟 번째 연속으로 월드컵 무대에 올려놓기 위해 ‘땜빵’ 역할을 자처한 감독이다. 그는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던 날 “나는 2013년 6월 최종 예선까지만 대표팀을 맡고 물러나겠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월드컵 출전권만 책임지고 정작 ‘본방’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전후 사정은 복잡하다. 전임 감독이 갑자기 경질됐고, 대한축구협회는 정신이 없었으며, 다시 ‘외국인 감독론’까지 슬금슬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이 만약 여덟 번이나 연속으로 월드컵 무대에 나가게 된다면 최강희 감독은 정말로 많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혹은 어떤 조직이 30년 넘게 실패하지 않고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서기 위한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과 노력이 뒤따른다. 그러나 그 어느 순간에도 단호히 ‘땜빵’을 자처한 인물은 없었다. 무언가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부분에 선을 긋는 지도자. 많은 사람들이 ‘그 정도 배포로는 월드컵 나가도 문제다’라고 수군거리는 장면을 종종 보지만, 그 정도 배포라면 월드컵엔 나가지 않겠다는 게 과연 무슨 문제란 말인가. 오히려 아쉬운 건 이것이 모두 ‘여덟 번 연속 월드컵에 나간 뒤’에나 빛을 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최강희 감독의 운명은, 스스로 넘긴 성배의 독이 어디까지 치명적인 것이었는지는, 운명의 6월에 결정된다. 그 마지막 장면이 너무 잔혹한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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