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사회인 야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 밟아보고 싶은 꿈의 구장이 있습니다. 부산 야구의 상징인 사직야구장과, 아직도 최동원의 혼이 묻어 있는 구덕야구장입니다. 일반인에게 쉽게 개방하지 않는데다, 가끔 경기장을 대여하려면 최소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수개월을 기다려 최동원이 서 있던 마운드 위에 올라서서 최동원이 노려보던 시야로 포수미트를 쳐다보노라면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어깨를 타고 흐릅니다.
최근 부산의 사회인 야구인들에게 새로운 성지로 떠오른 구장이 있습니다. 바로 부산고등학교와 경남고등학교의 야구부 운동장입니다. 정식 경기장도 아니고 잔디구장도 아니며 그저 학교 운동장일 뿐이지만, 두 학교의 운동장에 대한 사회인 야구인들의 열기는 대단합니다. 그곳은 바로, 지금 미국과 일본에서 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2명의 한국인 타자, 추신수와 이대호가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달린 운동장이기 때문입니다.
4월24일 현재 시즌 개막 이후 메이저리그의 추신수와 일본 프로야구의 이대호가 쌓아올린 기록은 경이적입니다. 신시내티의 추신수는 현재 메이저리그 출루율과 최다 안타 1위이며 타율 2위에 팀 창단 최다 게임 연속 출루의 대기록에도 도전 중입니다. 오릭스의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 타율 1위이며 (당연하게도)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 부문에서 상위에 랭크돼 있습니다. “던질 곳이 없다”는 일본 투수들의 한숨을 이끌어내는 데 조선의 4번 타자에겐 고작 1년이면 충분했습니다.
더 위대한 것은 두 선수의 타율입니다. 4월24일 현재 추신수의 타율은 0.387이고 이대호의 타율은 0.390입니다. 봉황대기 고교야구나 전국체전에서의 타율이 아닙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들이 올린 성적입니다. 추신수와 이대호는 지금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를 말 그대로 ‘두들겨패고’ 있는 중입니다.
잘 알려진 바대로, 두 소년은 부산 수영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 의해 야구선수로 길러지고 있던 소년 추신수가, 할머니와 함께 살던 가난한 소년 이대호에게 야구를 권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고교야구를 평정하고 각자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에 데뷔했지만 둘의 야구 인생이 처음부터 평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투수로 프로야구에 데뷔했으나 한계를 절감한 이들은 약속한 듯이 타자로 변신합니다. 이대호는 힘은 좋지만 ‘답이 안 나오는’ 엉성한 타자였고, 추신수 앞에는 일본의 전설 스즈키 이치로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대호는 살을 빼라는 감독의 명령에 무리한 체중 감량을 하다 무릎 인대가 끊어져버렸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같은 포지션에 있던 이치로 때문에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던 추신수는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눈물 젖은 햄버거를 먹으면서 몇 번이고 한국으로 돌아올 것을 고민했습니다. 누구보다 잔인했던 20대 초반을 이겨낸 소년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슈퍼스타가 됐습니다.
언젠가 사회인 야구를 하며 부산고등학교 운동장 좌타석에 서본 적이 있습니다. 타석에 들어서며 땅을 고를 때, 바로 이 흙먼지 날리는 타석에서 모든 것을 시작한 추신수가 생각났습니다. 아마 사회인 야구인들이 그 고등학교 운동장에 서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이제는 소년 시절의 꿈을 접어버린 사람들이, 아직도 소년 시절의 꿈을 현재 진행시키고 있는 저 두 소년의 불꽃 같은 열정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직아재·칼럼니스트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전광훈 “탄핵 반대 집회에 사람 데려오면 1인당 5만원 주겠다”
공수처 차량 파손하고 ‘난동’…윤석열 지지자들 ‘무법천지’ [영상]
윤석열,구치소 복귀…변호인단 “좋은 결과 기대”
윤석열 엄호 조대현·안창호·조배숙…연결고리는 ‘복음법률가회’
윤석열, 구속영장 심사서 40분 발언…3시간 공방, 휴정 뒤 재개
공수처 직원 위협하고, 차량 타이어에 구멍…“강력 처벌 요청”
“사필귀정, 윤석열 구속 의심치 않아”…광화문에 응원봉 15만개 [영상]
윤석열 지지자 17명 현장 체포…서부지법 담 넘어 난입
경호처 ‘윤석열, 하늘이 보낸 대통령’ 원곡자 “정말 당혹”
“우리 엄마 해줘서 고마워, 매일 올게”…눈물의 제주항공 추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