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스 파크 레인저스 입단을 확정 짓고 웃고 있는 박지성 선수
어린 시절의 저에게 한국 축구는 참패의 역사였습니다. 월드컵에 나가면 선수들은 다리가 굳어버렸고, 축구 강국들과의 시합에서는 외계인의 역습을 받는 듯한 공포까지 느꼈습니다. 해외 슈퍼스타들의 황홀한 드리블과 물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궤적의 슈팅을 보면서, 저들은 우리와 유전자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0년, 작고 마른 몸매에 더벅머리를 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이 국가대표팀에 승선했습니다. 분주히 뛰어는 다니지만 드리블은 둔탁했고 슈팅은 빗맞기 일쑤였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참패 이후에도 지극히 ‘한국 축구적인’ 청년이 유망주로 불리며 대표선수로 출전하는 것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저 열심히 뛰어다니는 한국 선수는 이제 지긋지긋했습니다. 무엇보다,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생각했던 윤정환을 후보로 몰아내면서 개인기도 패스도 슈팅도 뭐 하나 특별한 것 없이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하는 이 어린 선수가 월드컵 대표팀의 주전이 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지인들에게 2002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해야 할 선수로 언제나 박지성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10년간, 이 더벅머리 소년이 달려간 길은 굳이 제가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박지성이라는 소년이 위대한 것은 지금 그의 몸에 장착된 모든 능력이 후천적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기술은 없이 그저 잘 뛰기만 하는 전형적인 한국 축구 선수라고 사람들이 비아냥댈 때 박지성은 ‘잘 뛰기만 하는 것’으로 선수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조기축구라도 해본 사람은 압니다. 상대방 처지에서 가장 무서운 선수는 제쳐지고 넘어졌는데도 다시 들러붙는 선수입니다. 상대 선수들이 박지성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가 리오넬 메시와 웨인 루니 같은 판타지스타가 아니라, 분명히 따돌리고 왔는데도 다시 그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서 질리게 만드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별명 중 하나는 ‘유령’입니다.) 그는 가장 한국 축구적인 것으로 세계를 부수며 달려나간 선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타국 팬들의 냉대와 ‘과연 통할까?’라고 생각했던 모국 팬들의 편견과 동시에 싸워야 한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박지성은 한국인들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선수였다는 것을 증명해왔습니다. 받아주는 국내 프로팀도 없고, 테니스부에 배정된 정원 1명으로 겨우 대학에 들어간 동아시아의 작은 소년이 10년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허리를 달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요.
마라톤 풀코스를 10여 차례 완주한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에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묘비명은 박지성이라는, 영원히 달리고 있는 위대한 소년에 더 어울릴 듯합니다. 박지성,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은 소년. 그가 프리미어리그 퀸즈파크 레인저스(QPR)에서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도전을 합니다. 저에게 그는 우리 세대가 가져본 단 한 명의 판타지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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