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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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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리고 여자는 주먹을 날렸다

2012 런던올림픽 첫 여자복싱 경기 국가대표 자격 두고 경쟁 벌인 60kg급 박주영, 오연지, 심희정… 나흘간 동행하며 지켜본 세 여자의 링
등록 2011-12-02 10:54 수정 2020-05-03 04:26
» 단 한 방의 주먹이 인생을 바꾼다. 심희정 선수가 오연지 선수에게 역전하는 순간.

» 단 한 방의 주먹이 인생을 바꾼다. 심희정 선수가 오연지 선수에게 역전하는 순간.

경기가 시작되기 전 링은 아직 조용했다. 지상에서 높이 1m, 로프 4가닥으로 둘러진 25㎡ 사각지대를 링이라 부른다. 링에서 난타전이 벌어질 때 사람은 존재가 아니라 힘이다. 그러나 ‘한국 아마추어 복싱 국가선발전’을 이틀 앞둔 11월16일, 선수들은 아직 링 밖에 있었다.

1라운드 - 링을 감동시켜라

» 현역에서 은퇴해 선수를 키우는 감독들에게 여자 권투선수들은 모두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뤄줄 ‘밀리언달러 베이비’다. 박주영 선수를 링으로 보내는 박현승 감독.

» 현역에서 은퇴해 선수를 키우는 감독들에게 여자 권투선수들은 모두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이뤄줄 ‘밀리언달러 베이비’다. 박주영 선수를 링으로 보내는 박현승 감독.

한국아마추어복싱협회에 속한 여자 선수들은 모두 80명. 이번 선발전 중 여자 51kg·60kg·75kg급의 3체급 최종 승자가 영국 런던올림픽 출전 기회를 잡게 된다. 60kg 도전자는 5명이다. 처음으로 여자 권투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한 2012년 런던올림픽은 좁은 골목싸움에서 벗어나 넓은 하늘을 볼 기회다. 돈이 아니라 명예를 먹고 사는 아마추어 선수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60kg급 선발전에 출전하는 박주영 선수(29)와 박 선수를 지도하는 박현성 감독(44)은 이때만을 기다리며 숱한 인내의 시간을 감당했다. 간절한 이유가 있었다. 박 감독은 ‘돌아온 복서’다.

» 오연지 선수와 전진철 감독.

» 오연지 선수와 전진철 감독.

“(선수 시절)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선발전에서 내리 2등만 했어. ‘그날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인생 3막을 다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는 거야.” 청소년대표 출신으로 아마추어 전적 142전 135승 7패. 주먹으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그는, 그때의 판정이 억울해서 링을 떠났다. 모든 권투선수가 올림픽만을 향해 달리던 시절, 다른 길이 보이지 않기도 했다. 링 밖의 세상은 의미 없는 전쟁터였다. 주먹밖에 모르던 청년은 조직폭력의 세계에 발을 담갔다. 감옥을 드나들어도 돈과 사람을 주무르는 생활은 거침없었다. 그러나 반대파와 싸우

» 작전을 주고받는 권종오 감독과 심희정 선수.

» 작전을 주고받는 권종오 감독과 심희정 선수.

다 발목 아킬레스건이 잘려 또 막다른 길을 만났다. 보스 노릇도 어렵게 된 박 감독은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몸의 93%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5년간 수술 27번과 10여 년의 재활을 거쳐 식물인간이던 그가 전신 화상 1급 장애인이 되었다. 2003년 그는 일그러진 몸으로 15년 만에 이종격투기 선수로 링에 올랐다. “나는 종교가 없다. 믿는 것은 딱 하나, 링이야. 링이란 무엇일까. 링은 세상이고, 하늘이지. 나는 링을 감동시킬 거야.” 어쨌든 권투를 하고 싶었다. 런던올림픽에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여자대표가 자신의 제자이기 바랐다. 그러나 앞뒤 가리지 않는 그의 집념과 혹독한 훈련에 지쳐 ‘링에 그의 사랑을 전해줄’ 기대주이던 제자들은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났다. “혼자 남아 짐승처럼 울부짖던” 박 감독 곁에 박주영 선수만 남았다.

박주영 선수는 7급 행정보호감찰직 특별채용에 뽑혀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사람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교도관이 되고 싶어” 박현성 감독을 찾아왔다가 다른 선수들이 내던진 글러브를 받아들었다. 범죄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 하던 그가, 조폭 출신 감독 밑에서 권투를 배웠다. 감독은 운동신경이 둔한 그에게 하루에도 타이어를 수백 번 오르내리도록, 겁이 많은 그에게 커다란 생선을 동강 내도록 다그쳤다. “감독님이 처음에는 비워라, 예전의 너를 잊으라고 휘둘렀어요. 요즘엔 ‘네가 배운 것 중에서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네 모습 그대로 이겨라’고 해주셔서 나를 다시 찾는 느낌이에요.” 박 감독이 “착하고 여리기만 하던 아이가 이젠 복서의 눈과 심장을 지녔다”고 한 뒤였다. 박주영 선수는 지난 10월 열린 전국체전에서 3위를 했다. 이번 선발전에서 넘어야 할 큰 산은 그때 1위를 한 오연지(22), 2위를 한 심희정(29) 선수다.

2라운드 - 눈을 보지 말고 한 방

오연지 선수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박현성 감독은 “복서는 복서를 알아본다고 연지는 정말 크게 될 선수라는 걸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심희정 선수를 지도하는 권종오 감독(59)은 “연지는 정신력이 대단하고 기술이 뛰어난 선수”라고 했다. 누구와 주먹을 대본 일 없는 듯 여리고 청순한 외모의 그가 링에 올라가면 상대를 코너에 몰아붙이는 인파이터 복서로 변한다고들 했다. 전 복싱 국가대표 출신인 외삼촌 전진철(44) 감독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를 맡아 훈련한 덕에 벌써 8년차의 노련한 복서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축구·태권도·육상·씨름 등 다른 사람과 붙어서 지는 법이 없었단다. “태권도가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외삼촌이 운영하시는 체육관에 놀러가는 것은 괜찮으니까 몰래 드나들며 권투를 배웠지요.” 오연지 선수가 하필 권투를 시작한 이유다. 전진철 감독은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돌도 되기 전에 철봉에 올려주면 꼭 잡고 한참을 매달려 있었다. 연지는 타고난 복서다.” 전국체전에서도 내리 1위를 했고, 지금까지 진 경기는 단 한 번이다. 모두가 오연지 선수를 가장 두려운 상대로 꼽았다. 그런데 정작 오 선수는 “나는 사실 링이 두렵다. 나와 마주치는 선수가 모두 두렵다”고 했다. “링에 올라갈 때면 항상 기도합니다. 항상 긴장되고 무섭습니다.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이기게 해달라고, 잘하게 해달라고, 안 다치고 내려오게 해달라고요.” 파이터로 소문난 그가 실은 싸울 때면 무서워서 자꾸 눈을 감는다는 건 전 감독과 그만 아는 비밀이다. 실력이 뛰어난 탓에 처참히 깨져본 적도, 다쳐본 적도 없기에 더 무서운 건지도 모른다. 권투선수들에게 가장 흔한 안면 부상 한번 당한 일이 없다. 아시안게임 선발전 때 용인대 소속 박진아 선수에게 진 것이 유일한 패배 기록이지만 전국체전에서 더 크게 되갚았다고 한다.

권투선수들은 거짓말쟁이다. 자신의 두려움을 상대에게도, 자신에게도 감춘다. “주먹에 맞아 쓰러지면 분명히 캄캄하겠지….”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조차 큰 시합을 앞두고 두려움에 잠을 못 이뤘다고 한다. 고 김득구 선수는 “복서란 무엇일까. 맞는 걸까, 때리는 걸까. 때릴 땐 꿈속 같고 맞을 땐 안타까워”라는 노래를 곧잘 불렀다고 전해진다. 김득구 선수는 18전16승1무1패의 전적을 지녔지만 그 1패가 문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 라이트급 타이틀전 14라운드에서 레이 붐붐 맨시니에게 결정타를 맞고 숨진 것이다(이인영, ). 단 한 방이 인생을 바꾼다. 링 위에서 수많은 잽이 오가지만 언제 어떻게 엄혹한 주먹이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희정 선수는 “코뼈에 금이 가서 수술받은 덕분에 콧날이 예쁘게 섰다”며 밝게 웃지만 링에 오르면 떨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두려워서 상대의 눈을 본다. 실은 상대방의 턱선을 보고 재빠르게 허점을 노리는 것이 권투의 기본이다. “눈을 보지 말라고 하는데 저는 자꾸 눈을 봐요. 상대방 눈을 보면 얘도 지금 쫄았구나, 잔뜩 긴장하고 있구나, 나랑 똑같구나 느낌이 전해지거든요.” 링 위에 서는 복서들은 먼저 두려움과 싸운다. 심희정 선수는 말한다. “천주교 신자라 항상 기도문을 외워요.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대학 때 일본어를 전공하고 의료기기 회사에서 일하던 그가 권투선수가 된 것은 순전히 승부 기질 덕분이다. “취미로 시작한 권투인데 첫 경기 때 처참하게 지고 나니까 다니던 복싱클럽 관장님이 옆에서 약을 살살 올리잖아요. 지금도 지면 하루이틀은 정신을 못 차려요. 그러다 마음을 다잡죠. 1년에 한두 번 있는 시합도 아니고 다음번에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 이러고요.” 그의 투지와 성실성이 단박에 경북체육회 권종오 감독 눈에 들어 심 선수는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전업 선수가 됐다.

» “링에서 잘못 풀린 인생, 링에서 바로잡고 싶다”는 감독의 소원을 제자가 받아안았다. 박주영 선수(왼쪽)가 염세진 선수와 예선전에서 훅을 주고받는 모습.

» “링에서 잘못 풀린 인생, 링에서 바로잡고 싶다”는 감독의 소원을 제자가 받아안았다. 박주영 선수(왼쪽)가 염세진 선수와 예선전에서 훅을 주고받는 모습.

3라운드 - “꼭 런던에 가겠습니다”

박주영 선수가 가진 두려움은 좀 다른 종류다. “감독님과 스파링을 하다 보니 별로 무서운 선수가 없어요. 링에 서면 졸릴 때도 있어요.” 지독한 훈련 덕에 그도 일찌감치 코뼈를 부러뜨렸다. 권투 2년 동안 10번 남짓한 경기를 거쳤지만 벌써 4번의 대회에서 입상했다. 그런데 처음 그가 상대 선수를 이기던 날, 그 선수가 체육관을 나서기도 전에 상대 감독에게 뺨을 얻어맞는 걸 보았다. 그 뒤 안 그래도 물러서길 좋아하는 박주영 선수의 주먹은 내가 이기면 상대에게 일어날 일을 상상하느라 망설이기 일쑤였다. 박 감독의 다그침이 커졌다. “세상이 어떠하든 강한 것,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선이고 약해빠지고 쓰레기 같은 생각과 ‘나는 안 돼’라는 태도는 악이다.” 시합을 코앞에 둔 새벽까지 박주영 선수는 감독에게 붙잡혀 되뇌였다. “승리자가 복서다. 지면 복서가 아니다. 링에 왜 오르냐, 승리하려고 오른다.” 그런 날에는 밤에 잘 때도 꿈속까지 감독의 말이 따라온다.

시합이 다가올수록 선수들은 점점 간절해졌다. 마지막 스파링을 마친 심희정 선수는 “올림픽은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권투를 계속 해야 할지 마음을 잡지 못하던 오연지 선수는 1년 전에 훌륭한 복서가 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루 3번의 운동, 달리기, 웨이트, 실전훈련에서 외삼촌인 전진철 감독은 누구보다 엄격한 코치가 됐다. 오 선수 특유의 빠른 스텝은 그렇게 얻어졌다. “외롭고 힘든 운동이지만 계속 하기로 했어요. 런던에 꼭 가고 싶거든요. 링 위에 오르면 주목받을 수 있잖아요. 제가 올림픽에 가는 태초가 되고 싶어요.” 오 선수의 출사표다. 링의 두려움을 아는 전진철 감독은 마지막으로 선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파이팅, 너는 잘할 수 있어. 너는 내 조카잖아.” 박현성 감독은 링에 오르는 제자에게 이렇게 속삭인 뒤 등을 떠밀었다. “내가 더 많은 것을 못 줘서 미안하다. 너는 최고가 된 뒤 무엇을 할지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긴다. 오늘 고생하고 내일 하산하거라.”

어떤 사람이라도 싸울 때는 고독하다. 링으로 올라가는 3개의 계단은 감독을 의지해서 오를 수 있지만 전투는 홀로 치른다. 링을 둘러싼 로프는 선수를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는 사슬이다. 고독이나 불안, 고뇌를 물리치는 방법을 상상하고 마침내 이겨내는 것이 복서의 능력 전부일지 모른다. 11월18일 선발전의 종이 울렸다.

» “마지막 순간 내 손이 들렸으면 좋겠어요.” 심희정 선수는 소원을 이루었다. 60kg급 대표로 선발된 심희정 선수.

» “마지막 순간 내 손이 들렸으면 좋겠어요.” 심희정 선수는 소원을 이루었다. 60kg급 대표로 선발된 심희정 선수.

4라운드 - 흰 수건을 던진 순간

종이 울린다. 선수들이 서로를 탐색하느라 빙빙 돌며 허공에 주먹을 날리는 동안 그들의 심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보통 1분에 80~90번 고동치던 심장은 이때부터 150번으로 뛰어오른다. 서로에게 꽂은 눈은 움직일 줄 모른다. 여자 아마추어 권투 경기는 2분씩 4라운드에 걸쳐 진행된다. 이 8분을 이기려고 수없이 훈련을 반복해온 터다. 심장박동이 180번 넘게 달릴 즈음에야 경기가 끝난다. 여자 아마추어 권투 경기에서 KO승은 거의 없다. 대부분 판정승이다.

60kg 첫 경기에서 오연지 선수는 황서림 선수에게 4라운드에서 기권승을 얻어냈다. 13 대 1로 이미 판정도 기울어진 다음이었다. 거의 유효타를 허용하지 않는 빠른 스텝으로 순식간에 때리고 여유 있게 빠졌다. 박주영 선수도 염세진 선수를 맞아 14 대 4로 이겼다. 박주영 선수의 스텝은 독특했다. 톡톡 튀는 듯한 권투 스텝과 달리 힘있게 걷는 듯하다. 박현성 관장이 창안한 권투 스타일이라고 한다. 독특한 스텝으로 상대를 힘있게 코너에 몰아붙이는 모습이었다. 이제 셋만 남았다. 오연지·심희정 선수가 경기를 치르고 그중 이긴 사람이 박주영 선수와 결승에서 만난다.

11월19일 낮 12시. 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에서 오연지·심희정 선수의 경기가 열렸다. 두 선수는 코너에서 돌아서며 말없이 각자의 기도문을 외웠다. 주먹이 마주쳤다. 오연지 선수가 다가들었다. 심희정 선수는 주춤주춤 물러나는 듯했다. 상대가 준비된 상황에서 주먹을 날리면 자칫 상대의 더 큰 주먹에 당하리라. 탐색할까, 달려들까. 오 선수는 초반부터 강수를 내세워 파고들고 주먹을 날렸다. 수많은 잽이 꽂히고 날아가자 심 선수는 방어하는 형국이었다. 3라운드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뒤지는데도 권종오 감독의 태도는 별로 조급한 기색이 없었다. 담담하게 심 선수에게 주문했다. “역전하자. 4점 차다. 밀고 들어가.” 전진철 감독도 말했다. “앞으로 가, 가자.” 4라운드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심희정 선수의 훅에 오연지 선수가 코피를 흘렸다. 피를 닦을 새도 없이 심 선수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오 선수가 자꾸 방어 자세를 취했다. 전진철 감독은 외쳤다. “연지야, 피하지 마. 나오지 마. 연지야, 받아. 받고 쳐, 받고 치라니까.” 오 선수는 더 이상 유효타를 주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종이 울리고 결과는 심 선수의 판정승. 점수는 동점이지만 4회 때 더 많은 포인트를 내준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강력한 우승 후보이던 오연지 선수가 졌다. 옷까지 피범벅이 된 채 먼저 짐을 챙겼다.

11월20일. 박주영·심희정 선수의 결승전이다. 전날 심희정 선수는 오연지 선수와 경기를 마치고 “4회 때 무조건 밀고 들어가다 보니 상대방 선수도 힘들다는 게 보여서 야, 이거 따라잡을 수도 있겠구나 했어요. 그래도 밀렸어요”라고 했다. “결승에선 초반부터 더 바짝 밀겠다”고도 했다. 두 선수는 망설임 없이 붙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재빨리 붙어서 난타전. 다시 물러섰다가 또 붙어서 난타전. 점수는 심희정 선수 쪽으로 기울었지만 박현성 감독은 여유를 보였다. “상황을 네가 이끌어. 잘하고 있어.” 반대쪽 코너에서 권종오 감독도 소리쳤다. “지금이야, 바로 그거야.” 기세는 막상막하, 기술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4회가 시작되고 10초쯤 지났을까. 박현성 감독이 돌연 일어나 수건을 던졌다. 점수가 18 대 40, 너무나 크게 기울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란히 선 두 선수 중 심 선수의 손이 들렸다. 심희정 선수가 런던으로 갈 기회를 잡았다. 권 감독의 얼굴에 커다란 웃음꽃이 피어났다. 박주영 선수는 감독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체육관을 나섰다.

체육관을 나온 박현성 감독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오늘로 복싱 지도자 노릇은 끝내겠다고 말했다. ‘나도 한 번만 국가 대표선수를 키워보자’던, ‘그리하여 링에 내 이름을 남기자’는 15년의 꿈이 접혔다. 제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절을 올렸다. 박 감독은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1988년 국가대표 선발전 때 자신이 겪은 악몽을 오늘 제자에게서 다시 봐야 하는 심정을 짧게 이야기했다. 박현성 감독의 이야기는 2012년 EBS 국제다큐멘터리에서 상영될 이진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에 담길 예정이다. 이날 경기장에서 만난 전진철 감독도 “이제 연지에게 권투를 그만 시키겠다”고 했다. 땀 흘리고 고통받고 인내하던 패자의 시간들은 어디로 간 걸까. 진 선수들은 모두 떠나고 이긴 선수 하나만 새로운 링으로 갔다.

경기를 끝낸 링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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