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한창이다. 긴장감 속에서 우리나라 경기를 보고 나면 몸살이 날 지경이지만 여유롭게 다른 나라의 경기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어떤 이들은 시즌 내내 한솥밥을 먹으며 발을 맞추는 클럽 경기가 ‘진짜 축구’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메시이지 아르헨티나의 메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4년에 한 번 한 달간만 존재하는 팀은 ‘유령팀’이며 그 대항전인 월드컵은 진짜 축구가 아니란다. 하지만 클럽팀 간의 대회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는 늦은 밤 케이블 TV로 가족 눈치를 보며 혼자서 봐야 한다. 떼로 모여 소리 질러대며 보는 재미는 없다. 심야영화 감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 대항전은 경기 내용이 좋든 나쁘든 말 그대로 ’12번째 선수’로 온몸을 던져 치른다. 이기면 좋고 져도 그 쓰라림은 나 혼자 삭이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월드컵이 좋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취재 갔을 때 경기가 열리는 도시마다 설치된 ‘팬페스타’라는 곳의 낯설지 않은 분위기에 슬쩍 웃음이 나왔다. 독일 사람들 말로는 한-일 월드컵 때 우리 거리응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큰 전광판을 설치한 광장에 모여 경기를 보면서 응원하는 모습이 우리 모습과 겹쳤지만, 그곳에는 독일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인부터 아프리카인까지 모두 모여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했다. 서울시청 앞에는 “대∼한민국”만 있었지만, 그곳에는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라는 함성뿐만 아니라 “알레 르 블뢰” “간바레 니혼” “바모스 아르헨티나” “티엔티 골”이 있었다. 심지어 본선 참가국이 아닌 “짜유”도 있었다. 각국 응원단은 경기가 열리는 도시의 거리에 몰려다니며 자신들의 응원 구호를 외쳤다. 다른 나라 응원단을 만나면 서로의 응원 구호를 배워 외치고 같이 사진 찍고 다시 멀어져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큰 무리의 응원단은 역시 우리나라였는데, “대∼한민국”과 노래 는 정말이지 전세계인이 다 아는 듯했다.
우리나라 응원팀과 함께 응원하는 이들 중에는 중국과 베트남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팀이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프리카 원”을 외치며 국적에 상관없이 아프리카 팀을 응원했다.
우리가 이기면 더없이 좋았고 상대방이 이기면(원수가 아닌 다음에야) 그들이 좋아해서 좋았다. 그래서 월드컵이 좋아졌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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