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학교 다닐 때 몇몇 선생님들은 자주 ‘선진국’을 거론하며 열변을 토하셨다. ‘선진국에서는 누가 보지 않아도 교통질서를 잘 지킨다’ ‘선진국 국민은 절약정신이 투철하다’ ‘독일 사람들은 서너 명이 모이지 않으면 성냥불도 켜지 않는다’ 등.
그런데 차츰 성장하고 난 뒤, 나라 안팎의 문물을 좀더 많이 접한 뒤로, 한두 번쯤은 바로 그 ‘선진국’에 나갔다 온 뒤로 나는 그 옛날 낡은 교실을 훈훈하게 달군 ‘선진국 이야기’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에 가보니 횡단보도는 그냥 도로에 그어놓은 하얀 금이었다. 사람들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곧잘 건너다녔다. 독일에 가보니 흡연자들은 저마다 라이터나 성냥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아, 과연 그 옛날의 ‘선진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도 개도국의 우리 선생님들은 특정한 어느 선진국보다는 발달한 여러 나라의 특장을 이리저리 짜맞춘 ‘가상의 선진국’ 이미지로 가난한 조국의 후손에게 근검절약을 강조하셨던 것이리라.
이런 정도는 지난날의 추억일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에도 툭하면 ‘선진국’ 타령이 들려온다. 대운하며 4대강이 그렇고 미디어법도 그렇다. ‘선진국 사례를 살펴보면…’이라는 말은 거의 모든 보고서와 토론과 간담회의 간투사가 되었다.
이런 와중에 대한체육회 박용성 회장도 지난 8월7일 에 기고한 ‘학교 체육과 엘리트 체육’이란 칼럼에서 ‘선진국’을 운운했다. 칼럼에서 박 회장은 안민석 의원이 대표발의해 현재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인 ‘학교체육법안’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 법안의 취지는 ‘성적 지상주의에서 기인한 비교육적·반인권적 훈련문화를 개선하여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및 인권 상황을 발전시키고 일반 학생들의 체육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에 박용성 회장은 “이런 문제들로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을 때 세계 스포츠는 저만치 앞서”간다면서 ‘선진국’을 운운한 것이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일찌감치 국가대표 선수 합숙소를 짓고 선수들이 많은 지원 아래 훈련할 수 있게 한다. 일본 역시 2001년에 최첨단 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를 설립해 국가대표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세계 최고를 위해 재능 있는 선수를 조기에 발굴해 특화 훈련을 시키고 있는 모습들이다.”
이른바 스포츠 선진국의 체육 분야에 대한 다양한 면모를 두루 살피지 않고 박용성 회장의 이 말만 듣는다면 과연 ‘선진국’은 어릴 때부터 집중 훈련을 통해 뛰어난 성적을 내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박 회장은 중요한 원칙을 간과하고 있다. 바로 그 ‘선진국’의 체육에서는 일반 학생의 폭넓은 스포츠 활동과 학생 선수의 수업 참여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은주가 4학년을 3년 다니는 이유
이 대전제 속에서 빼어난 선수가 따로 육성되는 것이지 우리 현황처럼 비대층의 기형적 ‘선진국’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젊은 유망주들이 외국에 진출했을 때 가장 큰 낭패를 겪은 것이 수업에 ‘정상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극명한 사례가 일본 세이토쿠대 영문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농구선수 하은주 선수다. 그는 출석일수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4학년만 3년째 다니고 있다. 그런데 하은주는 그것이 결코 고된 의무가 아니라 인생의 즐거운 한순간이 되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11월 초, 한국방송이 방영한 속에 나타난 선진국은 박용성 회장이 어림짐작으로 넘겨짚은 ‘선진국’과는 전혀 다른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 ‘선진국’에서는 장래희망이 직업 선수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그리고 해당 학생이 운동에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와 관련 없이 모든 학생은 누구나 스포츠를 중요한 교과로 여겨 친숙하게 접하고 있으며 물론 당연히 운동에 소질 있는 학생 역시 정규수업에 빠짐없이 참여한다. 대학에서는 해당 학생이 고교 재학 중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스포츠 활동에 참여했는가를 입학 사정의 엄격한 기준으로 삼는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장차 선수가 될 학생에게도 필수적인 학력 사항을 엄격하게 요구한다. 학습권·문화권·인격권이라는 기본적인 삼박자가 갖춰진 바탕 위에서 체계적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럽연합(EU)에서는 지난 2007년에 를 발간해 유럽 전체 차원에서 포괄적인 스포츠 정책 및 전략적 목표를 세웠는데 여기서는 스포츠의 공공성, 교육성, 환경성, 직업성, 소수자 보호 등에 걸쳐 무려 41가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2008년에는 를 통해 일반 학생과 학생 선수, 지도자와 학부모, 정책 관료와 전문가 집단이 각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부적으로 밝혀두고 있다. 유럽평의회에서도 이미 1975년 ‘유럽인 모두를 위한 스포츠 헌장’(European Sport for All Charter)을 제정해 스포츠가 인간적 발전의 중요한 요소이며, 따라서 학생을 포함한 모든 시민이 이에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천명했다. 이로써 사회 통합과 연대를 증진하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라는 개념이 제시됐다. 이 ‘모두’에는 여성, 장애인, 이주민, 노인, 청소년, 수용자 등 사회적 약자가 일일이 거론되어 있을 정도다. 이것이 이른바 스포츠 ‘선진국’의 현황인 것이다.
이제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것은 현행 체육 교과과정에 대한 심도 있는 개선이다. 근대적 체육 교육의 이념은 ‘인간의 왕성한 육체적 활동’이라는 허약한 전제 위에 육체를 기능적으로 단련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런 전제는 100m를 몇 초 안에 들어오는지, 뜀틀을 몇 단 이상 넘을 수 있는지, 드리블을 몇m 이상 할 수 있는지 등을 요구하게 된다.
관계 인식능력 없이는 김승현·기성용도 없다이같은 수업은 운동신경이 발달한 몇몇 학생에게는 즐거운 성취감을 주지만 나머지 학생에게는 지루하고 힘겨운 추억만 남기게 된다. 체육을 육체활동이라는 비좁은 틀이 아니라 인간 상호 간의 유기적 관계 맺음으로 확산할 경우 그 콘텐츠는 훨씬 건강하게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스포츠의 원리 자체가 개인의 신체능력의 유기적 확산이며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정신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실제 경기에서도 확인된다. 김승현 같은 농구의 포인트가드나 기성용 같은 축구의 미드필더가 드리블을 몇m 이상 할 수 있는가로 평가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경기 전체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상대팀과 동료 선수의 위치와 관계를 총괄적으로 인식해 매순간의 경기를 풀어나간다. 일반 학생의 경우 비록 세부 기량은 떨어져도 이와 같은 종합적 판단력과 유기적 관계에 대한 통찰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이로써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관계망을 인식해나가는 연습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딘가에 진실로 ‘스포츠 선진국’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모든 학생이 차별이나 열외 없이 수업과 스포츠에 다 함께 참여하고 그 속에서 인간적인 관계 맺음을 자연스럽게 익혀나가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체육의 이정표는 그곳을 향해 재조정되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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