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두 사람의 안타까운 부고 소식이 연달아 들려왔다. 한 사람은 폴 워커, 아마도 누구? 하고 갸우뚱하다가 하면 아항! 하고 그제야 떠올릴, 다소 낯선 이름의 배우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넬슨 만델라, 설명이 필요 없는 위대한 지도자다. 워커는 40살에 교통사고로 숨졌고, 만델라는 95살에 폐렴으로 타계했다. 언뜻 연관성 없어 보이는 두 사람에게 하나의 공통된 이미지가 겹친다.
내가 기억하는 폴 워커는 라는 영화 속 캐릭터다. 배경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주인공은 렌터카를 잘못 타면서 뜻하지 않은 범죄 사건에 휘말린다. 의문의 휴대전화로부터 거듭된 위협과 추격을 받으면서 그는 점점 더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곤경에 빠진다.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공개수배당해 더 이상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을 때, 주인공은 전화기에 대고 외친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알아? 권력자보다 더 센 게 누군지 알아? 바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그는 차를 몰아 바리케이드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한다. 도저히 승산 없어 보이던 상황을 반전시켜 기어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범죄에 연루된 권력자의 죄상을 세상에 밝혀낸다.
만델라의 삶에도 반전이 있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을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감옥에 갇혀 있었다.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한 이듬해인 1995년, 남아공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 ‘희망봉’을 돌아 케이프타운 ‘테이블마운틴’이라는 산에 올랐다. 정상에선 바람이 몹시 불었다. 시야에는, 좌청룡 우백호 거느리듯, 좌인도양 우대서양이 한눈에 펼쳐졌다. 수평선에는 납작하게 깔린 잿빛 섬 하나가 손에 잡힐 듯 뚜렷이 떠 있었다. 섬의 이름은 로벤, “만델라 대통령이 오랜 세월 감옥 생활을 했던 곳이지요”. 함께 산에 오른 남아공 사람이 벅찬 음성으로 목이 메며 가리킨다. 까닭 모르게 뭉클했다.
훗날, 만델라의 삶을 소재로 만든 영화 를 보며 그날의 뭉클했던 까닭을 깨달았다. “나를 뒤덮는 칠흑 같은 어둠. 신께 감사하나니 정복되지 않는 내 영혼. 운명의 폭력 속에서도 피투성이 된 내 머리는 결코 고개 숙이지 않느니.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그는 모든 것을 잃고도 굴하지 않았고 그 힘으로 마침내 뜻한 바를 이룬다.
얼마 전 ‘2013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발표되었다. 리스트에는 정치인, 독재자, 왕족, 종교인, 억만장자, 기업가, 국제기구 수장 등 막대한 권력과 재력과 추종자와 직원 수를 지닌 사람이 즐비하다. 전세계 72억 인구 중 72인, 즉 1억분의 1 확률로 선정되었으니 대단한 경쟁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더 센 사람이 있다. 그건 누굴까? 바로 내몰리고 내몰려서 더 이상 비킬 데가 없는 사람, 빼앗기고 빼앗겨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 바로 폴 워커나 넬슨 만델라 같은 사람들이다.
11월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만4044달러로 전년 대비 5.9% 상승한 역대 최고 수치다. 묻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소득은 5.9% 늘었는가? 답은 소득분배지표에 나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으로 이뤄낸 성장의 과실은 고스란히 극히 일부인 특권층이 가져갔다. 나머지는 더 가난하고 더 가련해졌다. 전세난으로 서울에서도 수도권에서도 내몰리고 이젠 전철선이 닿는 곳이면 어디라도 갈 각오가 되어 있다며 통근에 하루 4시간 이상을 쓴다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았다. 한 국가 안에서도 한쪽에선 너무 먹어서 비만으로 죽어가는데 다른 한쪽에선 끼니를 굶주려서 기아로 죽어간다. 묵시록에나 나올 법한 이런 기막힌 모순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 21세기 우리 인류의 현실이다.
‘인빅터스’의 뜻은 ‘대적 불가’다. 잃을 게 없는 것처럼 사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없다. 어떤 권력자보다도 센 인빅터스가 속속 등장할 것이다. 성장의 열매를 손에 쥔 사람도,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도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판단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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