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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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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 나머지 성분 알고는 계신가요?

‘먹는’ 약에 대해서 ‘바르는’ 화장품의 정보만큼도 모르는 우리
화장품의 ‘전성분 표시제’처럼 의약품에도 ‘모든 성분’ 표기해야
등록 2013-06-26 17:12 수정 2020-05-03 04:27

툭하면 약을 집어먹곤 했다. 오늘은 머리가 띵해서, 어제는 콧물이 나서, 그제는 몸이 찌뿌듯해서…. 결혼 초, 그걸 지켜보던 신랑이 한마디 던진다. “당신 그러다가 좀비 되겠어.” 움찔했다. “약 먹는데 왜 좀비가 된다는 거예요?” “약에 들어 있는 방부제가 몸에 쌓일 테니 나중에 죽어서 땅에 묻혀도 잘 썩지않을 거야.” 남편의 농담성 경고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약에 방부제가 들어 있나?’

윤운식

윤운식

그때까지 솔직히 몰랐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약의 나머지 성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아스피린 한 알이 있다고 하자. 1정 120mg 전체가 아스피린 성분이 아니다. 그중에 아스피린은 100mg이고 나머지 20mg은 다른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당뇨약 한 알에는 글리메피리드 2mg과 메트포르민 500mg이 들어 있다고 약 설명서에 나와 있다. 저울에 재보면 한알의 무게는 1천mg이다. 즉, 그 약에서 약리 효능을 지닌 유효성분 502mg을 뺀 나머지 498mg에 대해서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정보가 없다. 예를 들어 어느 소염제를 보자. 약 설명서에는 캡슐 하나에 트라마돌 50mg과 첨가제(타르색소) 적색 3호, 청색 1호, 황색 203호가 들어 있다고 돼 있다. 그게 다가 아닐 텐데 나머지는 알 수가 없다.

나만의 개인적 무식함인지, 아니면 의료인 집단의 평균적 수준이 이런 것인지 궁금해졌다. 주위의 의사와 약사와 간호사 십수 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면담 혹은 유선을 통해 질문해보았다. 결과는, 모두가 모르겠다고 했다. 심지어 약에 뭐 다른 게 들어가냐고 깜짝 놀라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낙관적이고도 안이한, 그래서 위험한 상식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그래도 방부제는 들어 있지 않을 거예요. 설마 약인데….”

다음 질문을 내게 던지기도 한다. “도대체 그게 왜 궁금한데요? 처방하는 데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문제가 생겨야만 그때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소를 잃지도 않았는데 왜 외양간 울타리는 점검하고 다니느냐고? 수년 전 안전성 문제를 일으켰던 탤크, 멜라민, 디부틸프탈레이트 등의 성분은 모두 ‘약의 나머지 성분’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잠재적 시한폭탄은 더 있을 것이다. 약 설명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수많은 알 수 없는 성분들, 즉 결합제, 붕해제, 용해보조제, 활택제, 코팅제, 색소, 보존제(방부제) 등이 부형제와 첨가제라는 이름으로 약의 반죽에 해당하는 나머지 부분에 분명 존재하고 있다. 어느 화장품 보습크림 뒷면에는, 세어보니 무려 43가지 성분이 적혀 있다. 악명 높은 파라벤 계열의 방부제도 2개나 들어 있음이 바로 확인된다. 우리나라는 화장품에 대해 2008년을 원년으로 ‘전성분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원칙은 단순하다. 1) 화장품의 모든 성분을 표기한다. 2) 함량이 많은 순으로 표기한다. 3) 1% 이하로 사용된 성분, 착향료, 착색제에 대해서도 순서에 상관없이 기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매일 먹는 약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것일까? 우리는 ‘먹는’ 약에 대해서 ‘바르는’ 화장품에 대한 정보만큼도 갖고 있지 못하다.

사람들은 의사가 약의 모든 성분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어느 60대 환자가 내게 질문을 했다. “제 조카가 종합영양제를 선물로 사왔는데 그거 먹어도 될까요? 먹기 전에 의사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여기에 방부제가 들어 있는 건 아니에요?” 약병에는 여러 가지 영양소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역시 ‘나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의사도 아는 것은 여기까지다.

무엇이 들어 있고 들어 있지 않은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진짜로 더 중요한 것은, 그 정보에 대해 환자뿐 아니라 의료인들조차 근원적으로 차단돼 있는 지금의 제도, 의약품 성분 표시제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서울시립동부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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