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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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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집에 불이 났어요!

연구소 세우고 페스티벌 열고 관광객 몰리고… ‘한류 음식’으로 거듭나는 떡볶이
등록 2009-04-02 11:32 수정 2020-05-03 04:25

떡 샐러드, 된장 크림소스 떡볶이, 떡 바비큐 꼬치, 떡 치즈 퐁듀…. 임금님이 먹던 궁중음식에서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전락’한 떡볶이가 ‘명예회복’에 나섰다. 김치·비빔밥·불고기에 이어 ‘음식 한류’를 이어갈 메뉴로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추장 양념으로 만든 정통 떡볶이와 함께 크림소스, 치즈, 올리브 오일 등을 섞은 신메뉴로 세계 식탁 공략에 나섰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세대’를 아우르던 떡볶이는, 동양인과 서양인 할 것 없이 ‘세계’를 아우르는 음식으로까지 변해가는 중이다. 영양가 없고 비위생적인 ‘길거리 불량식품’이란 오명도 벗고 있다. 떡볶이 산업이 프랜차이즈화되면서 깨끗한 실내에서 고급스러운 재료를 이용해 만든 웰빙 음식으로 거듭나고 있다. ‘만만한’ 요리인 떡볶이를 연구하겠다는 연구소가 만들어지고, 정부도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떡볶이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떡볶이집에 불이 났어요!

떡볶이집에 불이 났어요!

경기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는 듣기만 해도 웃음부터 나오는 ‘떡볶이 연구소’가 있다. 지난 3월11일 개소식을 연 이곳은 한국쌀가공식품협회에서 8억원을 들여 설립한 연구개발 센터다. 장난스럽게 보이지만 이곳에서 하는 일은 진지하다. 연구원은 모두 5명. 떡과 소스를 연구하는 이들은 ‘떡볶이 세계화’를 위한 초석을 놓게 된다. 매운맛의 표준화 작업, 떡볶이 요리 개발, 상품 가치를 끌어올릴 마케팅 연구 등이 이들이 할 일. 쌀 연구만 20년 넘게 해왔다는 이상효 소장은 “‘씻어 나온 쌀’ 등 다양한 쌀 제품을 만들어내며 주목을 받았지만 떡볶이 연구소만큼 반응이 뜨거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세간의 관심을 두고 웃었다. 그는 “그만큼 떡볶이의 세계화에 관심이 많은 것”이라며 “떡볶이는 떡과 소스, 몇 개의 부재료만 들어가지만 연구개발을 통해 이탈리아 스파게티, 타이 음식처럼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요리로 만들 수 있는 메뉴”라고 말했다.

50년대 이후 고추장 넣기 시작

주식도 아닌 간식이나 안줏거리 정도로만 여겨지던 떡볶이에 대한 평가가 이렇듯 달라진 건 떡볶이의 역사도 한몫했다. 이상효 소장은 “떡볶이가 궁중음식에서 길거리 음식으로 전락한 과정이나 지역 따라 다른 맛이 나는 사연 등이 재밌다”며 “이야기가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다양한 부가가치 사업도 연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사먹는 떡볶이는 원래 임금이 먹던 음식이다. 조선 말기인 1800년대에 쓰인 란 조리서를 보면 “다른 찜과 같이 하되 잘된 흰떡을 탕무처럼 썰어 잠깐 볶아서 한다”고 적고 있다. 고추가 없던 시절에 간장으로 양념한 궁중 떡볶이는 나물, 쇠고기, 참기를 등을 넣어 볶아 만들었다. 고기와 채소를 곁들여 영양적으로 완벽한 음식이다. 간장 떡볶이를 고추장 떡볶이로 먹기 시작한 시점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궁중음식이 대중화되고 매운 음식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라는 설이 유력하다.

죠스, 엄마손, 조폭, 먹쉬돈나…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임에도 떡볶이는 동네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음식으로 소문나 있다. 서울 지역만 봐도 안암동 ‘죠스 떡볶이’, 명지대 앞 ‘엄마손 떡볶이’, 홍익대 앞 ‘조폭 떡볶이’, 삼청동 ‘먹쉬돈나’, 압구정 ‘레드페퍼’, 효자동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 등 유명 떡볶이집이 많다. 국내 유일의 떡볶이 상가인 서울 신당동 떡볶이 타운도 빼놓을 수 없다. 즉석 떡볶이로 유명한 이곳은 “떡볶이 맛의 비결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고추장 광고를 한 마복림 할머니가 일군 곳이기도 하다. 춘장과 고추장을 섞은 소스에 어묵, 라면사리, 만두 등을 넣어 즉석에서 끓여주는 게 신당동의 맛이다.

1970년대에 조성된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시대 따라 맛도, 상가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 떡볶이를 너무 좋아해 찾아간 곳은 찾아간 곳은 신당동 떡볶이집”이란 노래가 만들어졌듯 음식과 함께 문화를 팔았던 이곳은 예전처럼 낭만이 없다. 디제이가 음악을 골라주는 뮤직박스가 있던 시절은 기억 속에 묻히고, 지금은 중형차와 외국인 관광객 단체버스가 드나든다. 1984년부터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는 ‘우리집’ 사장은 “떡볶이를 주로 팔다 1995년부터 상가들이 닭발 등의 메뉴를 추가해 팔면서 지금은 저녁에 술장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을 보면 더 재밌다. 부산은 ‘남천 할매 떡볶이’, 대구는 ‘신천 떡볶이’ 등이 유명하다. 남천 할매는 매운맛과 단맛이 강하다. 부산에서 떡볶이를 먹던 이들이 서울에서 먹으면 “싱겁다”는 평이 나온다. ‘신천 떡볶이’는 일명 ‘마약 떡볶이’로 불린다. 매운맛이 강해 주로 복숭아 음료수인 쿨피스와 세트로 먹는다. 마치 피자와 콜라 세트처럼 보인다. 호남 쪽엔 이름난 떡볶이집이 없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조상현 과장은 그 이유를 “전라도는 자연 재료를 이용한 식문화가 발달돼 떡볶이 같은 분식류는 끼지도 못한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매운맛의 깊이만으로도 여러 가지 맛을 내는 떡볶이는 다양한 요리로 변주될 수 있는 게 매력이다.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몇천원짜리 길거리 음식에서 몇만원짜리 호텔 음식으로도 변할 수 있다.

서울 명동과 종로, 이태원 등에서는 떡볶이 맛에 반한 대만과 중국, 일본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종로에서 떡볶이 노점상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는 한 아주머니는 “아이들과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느라 예전처럼 맵게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2월에 종영한 SBS 에서 최지우가 떡볶이를 먹었던 한 떡볶이집이 일본인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떡볶이 연구소 이상효 소장은 “매운맛에 익숙해진 동양인들과 달리 서양인들은 매운맛과 이에 붙는 떡의 쫄깃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떡과 소스를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연구해 각 국가에 접목시켜 현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길거리 음식의 고급화를 선언한 떡볶이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메뉴 개발과 포장 용지 개발에 나섰다. 크림소스나 올리브 오일, 향신료 등을 이용한 떡볶이 메뉴를 이미 선보이고 있다. 비비큐(BBQ) ‘올리브 떡볶이’ 체인점을 운영하는 제너시스의 김유리씨는 “궁중 떡볶이, 매운 떡볶이, 화이트 떡볶이 등을 다양하게 판매하면서 순대나 맛탕 등 어울리는 사이드 메뉴도 함께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음식 포장 때 검정 비닐봉지 대신 고급스러운 종이 포장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가 최지우가 왔던 ‘토포키’집”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 적극적인 홍보에도 나서고 있다. 떡볶이 연구소는 떡볶이의 영어명을 ‘토포키’(topokki)로 만들고, 떡볶이의 재료를 형상화한 캐릭터로 애니메이션 등을 만들 계획이다. 벌써부터 미국 〈ABC방송〉에서 취재 요청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는 음식축제에 참가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내년에는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서양인의 입맛을 시험해볼 수 있는 러시아 연해주에 떡볶이 숍을 열 계획이다.

정부의 쌀 소비 촉진 계획도 떡볶이 붐에 일조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11월 ‘쌀 가공식품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쌀 수입까지 이뤄지면서 공급량은 늘었는데 소비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침이다. 정부가 떡볶이, 주류 등 쌀 가공식품 산업의 시장 확대를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떡볶이 산업은 급성장 중이다. 떡볶이 완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2009년 떡볶이 시장 규모는 약 9천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떡볶이 붐을 지속적으로 조성해 2013년까지 시장 규모를 1조6천억원까지 신장시킬 계획이다. 떡볶이 ‘장사’를 부가가치가 큰 ‘산업’으로 판단한 결과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떡볶이 산업 육성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조상현 과장은 “떡볶이 거리 조성을 통해 노점상 떡볶이부터 프랜차이즈 떡볶이까지 국내외 사람들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떡볶이로 음식 한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빵’ 터지는 떡볶이 UCC
‘악마는 떡볶이만 먹는다’가 1위


“안녕하세요,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온 영주예요. 떡볶이 페스티벌을 맞아 세계에 있는 친구들에게 떡볶이 음식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만든 맵지 않은 떡볶이를 단호박에 담아봤어요.”
3월26일과 27일 이틀 동안 서울 양재동에서 열린 ‘떡볶이 페스티벌’에서는 떡볶이 사용자제작콘텐츠(UCC) 공모전 결과를 발표했다. 풀빵닷컴(event.pullbbang.com)을 통해 지난 2월25일부터 3월23일까지 공모된 떡볶이 동영상은 모두 48개. 미국 루이지애나의 영주씨처럼 영어로 떡볶이 요리 과정을 설명한 동영상부터 영화 패러디, 떡볶이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영상이 공개됐다.
이 중 추천 1위는 ‘악마는 떡볶이만 먹는다’편. 영화 를 패러디한 영상은 패션잡지계의 거물인 미란다(메릴 스트립)를 떡볶이연합회 회장인 김떡순 회장으로, 비서인 앤디(앤 해서웨이)를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보려는 신참으로 설정해 대결 구도를 그린다. “고추장 100인분을 가져오라”는 미란다의 주문에 앤디는 “순창이냐, 태양초냐?”고 물었다가 답변도 구하지 못한 채 고추장을 구하러 뉴욕을 뛰어다닌다.
추천 2위는 ‘집에서 만들어 먹는 신당동 떡볶이’편. 춘장과 고추장을 섞어 만드는 서울 신당동만의 떡볶이에 도전하는 요리 과정이 자세하고 맛있게 그려진다. 추천 3위는 ‘세종대왕이 떡볶이를 먹었대’ 뮤직비디오. 빠른 비트의 음악과 사진을 편집한 솜씨가 수준급인 작품이다. 떡볶이가 궁중음식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세종대왕도 떡볶이를 먹었대”라는 가사가 익살맞다. 순위 밖으로 떨어진 동영상들도 유익하고 재밌다. 마요네즈 간장 떡볶이, 고구마 크림 불떡볶이 같은 보기만 해도 침 넘어가는 떡볶이 요리들은 직접 만들어 먹어볼 만하다.
한국방송 을 패러디한 ‘짝퉁 스펀지’도 걸작이다. 실험 주제는 ‘쌀 떡볶이는 호떡보다 칼로리가 낫다’. 호떡을 먹고 “기름지다”며 인상을 쓰던 실험맨이 떡볶이를 먹고 소녀시대 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에서 웃음이 빵빵 터진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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