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전주와 김제의 경계를 지키는 덕진구 도덕동 고잔마을. 행정동은 덕진구 조촌동이다. 본래 곡창지대로 유명한 김제에 속해 있다가 1994년 전주로 편입됐다. 이곳은 도심 외곽인 동시에 만경강 하천대지가 만나는 지리적 요건답게 관내 구역의 일부는 우뚝 늘어선 아파트촌이고, 나머지는 너른 논과 밭이 펼쳐지는 시골마을이다. 청명한 하늘 아래, 불과 5분 전까지도 이어지던 잿빛 도심의 풍경을 거침없이 지워버릴 황금 들녘이 펼쳐지는 곳. 그곳에 영농인 윤승기(50)씨가 있다.
기특하게 영글어준 귀한 쌀알들
누가 깨우지 않아도 새벽 5시면 눈을 뜬다. 가을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 이른 아침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추분도 훌쩍 지나 해 뜨는 시간이 점차 늦어지는 터라, 그가 일어나 옷을 입고 신발을 꿰찰 때는 사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짜증스러울 법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어둠을 뚫고 빛나는 새벽의 별빛이나 소와 돼지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일찍부터 부엌의 불을 밝힌 아내의 바스락거림, 코끝을 찌르는 진한 흙냄새 같은 편린들이 하나씩 모아져 ‘바지런한 시골의 아침’을 증명해주는 동시에, 자신이 하는 농업의 미래나 근심 따위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현재에 머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곧장 육묘장(모를 기르는 곳)으로 향한다. 추수철에 그곳은 싹을 틔우는 곳이 아니라 수확물을 말리고 포장하는 곳으로 쓰인다. 전날 수확한 이삭들을 넣어두고 간 참이었다. 이삭들은 건조 과정을 거치며 적당한 수분을 품고 마른다. 그것들은 보통 1천kg씩 포장돼 농협이나 정부로 수매될 것이다. 그는 이제 막 건조기를 빠져나온 이삭의 상태를 손끝의 촉각으로 테스트한다. 전등불 아래 그의 얼굴은 진지하고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수분 함량 상태가 추후 쌀의 품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검사 끝에 어떤 건조기는 다시 돌고, 어떤 건조기는 도정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쌀알을 우수수 쏟아놓는다. 1년은 족히 먹고도 남을 많은 양이다. 장정 10명이 들어서도 넉넉할 큰 자루에 그것을 담아 지게차로 옮기며 그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어린다. 1년의 정성과 투자, 노동이 결집된 수확물이자 그가 지난 1년을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표창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쁨을 마음 편히 누리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올해는 기상이변과 많이 내린 비로 작황이 좋지 않으리란 걱정을 내내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비가 내린 시점이 이삭이 맺히기 직전이어서 병충해가 심하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한번 잠겼던 논은 30%가량 생산량이 감소된다. 물이 빠지지 않은 다른 지역의 논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기특하게 영글어준 귀한 쌀알들을 바라다본다.
가산 털어 콤바인으로 시작한 농사
그는 1961년 김제군 백구면 도덕리(현재 전주시로 편입)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의 8남매 중 다섯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누나 넷을 두고 태어난 첫아들인 덕에, 물질적 풍요를 떠나 부모님의 사랑만으로도 언제나 즐거움이 차고도 넘치던 유년시절이었다. 경지정리도 없던 시절, 하천 둑에 심어놓은 보리를 베어 쌓아놓으면 그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놀고, 쟁기질하는 소를 약 올리며 뛰어다니던 기억이 남아 있는 마을. 그는 이곳을 군 입대를 제외하고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때 역시 청년이라면 누구나 도시를 꿈꿨다. 농사에는 비전이 없다는 절망은 오래전부터 농촌을 뒤덮었고, 도시의 위상은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그 역시 직업군인으로서 전국을 누비며 기상을 떨치고픈 꿈이 있었다. 그러나 25살, 제대를 하고 돌아와보니 급격히 일손이 부족해지는 열악한 농촌 상황 속에 연로하신 부모님은 못자리 하나 만드는 것도 나락을 베는 일에도 허덕이었다.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농사는 가업이었다. 장남인 자신이 부모님과 함께해나가며 지켜야겠다는 의지가 솟았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의 수동적 농업방식은 아니었다. 급격히 현대화되는 시대에 발맞춰 기계화·경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산을 털어 그때 막 보급된 콤바인을 구입했다. 콤바인은 장정 셋이 꼬박 하루를 매달려야 할 몫의 일을 단 40분 만에 끝내주었다.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집안뿐만 아니라 마을의 농사일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젊은 승기씨는 농업에 성공적으로 발을 디뎠다.
그의 성공적 입성과는 별개로, 고잔마을은 빠르게 노쇠해갔다. 젊은 청년들이 누구나 그처럼 투자와 도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고향을 등졌고, 남아 있는 어르신들도 불안정한 농산물 가격과 빠르게 상승하는 물가와 경영비용으로 재산을 늘리기보다는 부채를 짊어졌다. 그는 기울어가는 농업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모든 분야를 기계화·대량화했다. 목돈이라도 생기면 즉시 이앙기나 트랙터, 건조기 같은 기계나 새로운 품종, 신농작법에 투자하고, 마을의 대리경작도 도맡았다. 그렇게 차차 부모님의 논에서 벗어나 경작지를 늘려갔고, 지금은 마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농사를 짓게 되었다. 손으로 일일이 모를 심던 시절로 따지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아내와 일꾼들과 함께 바쁘게 해나갈 수 있는 정도다.
‘기계화가 아니었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는 새삼 이렇게 생각하며 동터오는 논을 바라본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는 기계화가 가져온 득실을 생각하며 씁쓸함이 어렸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농기계를 대여하거나 그 농기계에 딸린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다른 경작비용도 마찬가지다.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는 직업이 아니라서 할부를 이용할 수도 없다. 일단은 부채를 지고 그것을 갚아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과정에서 재해나 흉작을 버티지 못하고 마을을 떠났다. 이제는 어르신들만 남은 허전한 마을을 떠올리며 그는 괜한 나뭇가지 하나를 ‘탁’ 하고 밟았다. 누렇게 익은 탐스러운 벼들이 아침 햇살 아래 일제히 일어나 위로하듯 춤을 추었다.
상대적으로 매우 특별한 성공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추수가 시작됐다. ‘착착착∼’ 경쾌한 소음을 내며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 볏단은 우수수 쌀알을 떨어뜨린 뒤 빈 볏짚이 되어 눕는다. 그 시간이 고작 몇 초 되지 않을 만큼 빠르다. 여러 차례 돌며 기계 안 곡물탱크가 가득 차면 더듬이처럼 기다란 곡물 출구를 들어올려 ‘톤백’이라 불리는 대형 자루에 쏟아붓는다. 그것을 싣고 건조기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이모작인 보리를 심는 작업까지 끝나면 대략 스무 날이 걸린다. 이제는 마을의 일꾼을 구하기도 어렵고 삯도 많이 올라, 그는 웬만한 일은 기계에 의지해 스스로 한다. 아내 또한 남편을 도와 논들을 오가고, 지게차도 운전하며 쌀이 담긴 자루를 옮긴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앞둔 아들도 마찬가지다. 한 손이라도 더하려고 분주히 건조장과 아버지의 일터를 오간다. 그렇게 수확한 벼와 보리 등의 일부는 미리 계약한 농협과 기업 등에 납품하고, 남은 것은 정부수매를 한다. 일부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쌀은 모두 학교 급식용으로 나간다. 친환경 마크를 획득한 약제만 뿌려야 하기에 생산량은 저조하지만, 농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일정 부분은 계속해가며 더 나은 방법을 시험해보고픈 그다.
그렇게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면 보통 월급쟁이의 연봉보다는 약간 상회하는 매출액이 나온다. 그러나 모두 순수익은 아니다. 농기계의 부채를 갚고, 경작비용을 내고, 일꾼들의 삯과 자신과 함께 일해준 가족들의 일일 노동비를 가산해 제외하고 나면 풍족한 소득은 아닌 셈이다. 문제는, 마을에서 손꼽히는 대농인 그의 이런 상황이 도심의 소득에 비해 ‘특별히 풍족’한 것이 아님에도, 상대적으로 매우 특별하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농업에서 성공한 사례임을 잘 안다. 그러나 자신과 같이 소수의 농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세농민으로 직불금에 의지하거나 빚으로 빚을 갚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대북 쌀지원 중단 등으로 급락한 쌀 가격은 지난해 같은 흉작에 많은 고통을 가중했고, 올해 평작을 예상하고는 있으나 급등하는 경영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수입으로 많은 농민들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며, 강도 높은 노동량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생명을 낳는 땅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살아왔다. ‘합리적 경작’을 추구하며 일정 수준의 수익도 올렸다. 그러나 결코 아들에게 이 일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놓은 자신의 농업 방식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으리라 믿지만, 결국 소수의 농민만 살아남을 농업은 그 자체로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까닭이다.
생각만 해도 목이 잠기는 FTA
그가 잠시 쉬는 사이, 라디오에서는 생각만 해도 목이 잠기는 뉴스를 들려준다.
“미국 상·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법안을 최종 처리해 최종 발효까지 사실상 한국 내 절차만 남게 되었습니다.”
라디오의 정지 버튼을 꾹 눌러버린다. 스물다섯, 청춘을 농업에 바쳤다. 기계화·대량화한 농법으로 제법 성공을 했다지만, 만약 쌀시장이 개방되면 이는 모래 위에 성을 쌓은 것처럼 위태로운 것이다.
‘가꾸면 가꿀수록 더 많은 것을 돌려주는 게 땅이다.’ 자신이 농업인으로 자부하며 늘 되뇌던 말이다. 제발 그럴 수 있도록 생명이 자라나는 논과 밭이 더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그 땅에서 자란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이 계속될 수 있기를, 그는 빈 볏짚이 줄지어 누워 있는 너른 논을 바라보며 간절히 바란다.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아내가 창문을 두들기며 음료수를 내밀었다. 젊은 시절 부부의 연을 맺어, 어려운 농업의 길을 군말 없이 함께 해온 아내다. 때론 동료로, 때론 친구로, 때론 든든한 지원군이 돼준 아내가 흔들리는 이 땅의 위기 앞에서도 여전히 곱다란 것이 새삼 고마워진다. 일렁이는 오후의 햇살에 비친 창살이 그의 반듯한 얼굴에 볏단 모양의 그늘을 만들었다.
전주=글 김소윤 제2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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