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면 ‘당연’, 지면 ‘부정선거’… 중간선거 앞둔 트럼프의 자세

2026년 7월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러더퍼드에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꺾은 스페인 대표팀이 우승 축하 행사를 하는 동안 무대에서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불과 2년 전만 해도 전세계가 미국을 비웃었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2년 전 미국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나라가 됐다. 이전엔 경험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7월16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카메라 앞에 섰다. 25분41초간 이어진 대국민 연설의 시작은 전형적인 ‘트럼프식’ 자화자찬이었다. 연설이 4분45초로 접어들었을 때 ‘본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급히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떤 나라도 공정하고 정직한 선거 없이는 위대할 수 없다. 자기 나라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신뢰할 수 없다면, 위대함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말이다. 신뢰가 없으면, 위대함도 없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미국 선거제도의 완결성을 지키기 위해 단호하고 신속하고 결정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미국민은 자신이 행사한 투표가 안전하고 정확하게 개표·집계된다는 점을 보장받아야 마땅하다. 부정선거와 선거개입은 어려울 뿐 아니라 아예 불가능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 미국의 선거제도는 재난적인 수준에서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상태며….”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꺼내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11월 재선 도전에 실패한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 조작 △투·개표기 오류 △외세 개입 등 음모론을 내세워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했다. 2021년 1월6일 미국 사상 초유의 의사당 난입 사건이 벌어진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음모론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과 함께 백악관 쪽은 누리집에 ‘전자 투·개표 제도의 취약성’이란 제목으로 8건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한 베네수엘라 전자투표(6쪽)와 중국의 미국 선거정보 수집 활동(2쪽) 관련 보고서 △국토안보부에 딸린 사이버 보안 및 인프라 보안국(CISA)이 작성한 2020년 선거 보고서(6쪽)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작성한 중국의 선거개입 관련 보고서 3건(각 1쪽, 2쪽, 7쪽)과 2020년 선거 외국 위협(6쪽), 미국 선거 인프라의 취약점(5쪽) 등이다.
CIA는 보고서에서 “중국 쪽이 차기 미국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2020년 선거 판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이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건 당연하다. CIA 쪽은 ‘중국이 불법적 선거개입에 나섰다’는 주장을 내놓지 않았다. CISA의 보고서는 미국의 선거 관리용 소프트웨어가 여타 연방기관의 소프트웨어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으니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중국 등 특정 국가의 ‘위협’은 등장하지 않는 일반론이다.
NIC가 작성한 문서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2020년 선거개입 문제를 다룬 문서 3건에서 NIC는 “근거 없는 주장”이란 결론을 내렸다. 2020년 선거 당시 외국의 개입 위협을 다룬 보고서에선 러시아·중국·이란과 함께 우방국인 독일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정보 활동도 소개했다. NIC는 보고서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개인적 성향 차이 탓에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부정적”이라고 썼다. 이어 “메르켈 총리는 2020년 7월 공개 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두고 ‘독일·유럽·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지정학적 입장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해 6월엔 유럽연합(EU) 지도자들과 한 화상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유럽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고 덧붙였다.
NIC는 미국 선거 인프라의 취약점을 검토한 보고서에선 “러시아·중국·이란·북한 등이 미국 선거 시스템을 해킹할 가능성이 있다. 해당 국가에 엄중한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정보 보고서 8건 어디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부정선거’와 ‘선거개입’의 근거는 등장하지 않는다. 백악관 쪽은 △중국의 미국 유권자 정보 탈취 △미시간주 유권자 등록 현황 △비시민권자 유권자 등록 자료 등도 아울러 공개했다. 이들 문서 어디에도 ‘부정선거’와 ‘선거개입’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7월16일 저녁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왜, 갑자기, 지금 음모론을 꺼내든 걸까? 극우 성향인 폭스뉴스가 7월22일 공개한 최신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9%를 기록했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68%가 ‘11월 중간선거에서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는데, 공화당 지지자 중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57%에 그쳤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4명은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중간선거가 오늘 실시된다면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란 응답은 53%,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란 응답은 46%였다. 폭스뉴스는 “4월 실시한 같은 조사와 견줘, 민주당에 표를 주겠다는 응답이 5%포인트 높아졌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급한 상황이란 뜻이다.
노림수는 세 가지다. 첫째,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 참여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주도의 의회는 이른바 ‘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 ’ (미국 유권자 보호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유권자 등록 때 미국 여권이나 출생증명서와 같은 시민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고, 투표소에서 정부가 발행한 사진이 포함된 신분증 제시를 강제하는 내용이 뼈대다. 메릴랜드대학에 딸린 ‘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센터 ’ 가 2024년 6월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유권자 10명 가운데 1명(약 2130만 명)꼴로 “ 출생증명서나 여권, 귀화증명서, 시민권증명서 등이 없거나 어디에 뒀는지 알지 못한다 ” 고 답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마가) 세력의 결집을 유도해야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유고브가 6월17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믿는 응답자는 전체의 28%였다. 공화당 지지층의 50%, 민주당 지지층의 9%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었다. 특히 마가 지지층에서 부정선거란 응답이 66%나 됐다.
셋째, 선거 불복의 명분을 쌓아야 한다. 선거제도를 신뢰할 수 없다면, 결과도 받아들일 필요가 없어진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당연’한 것이고, 패배하면 ‘부정선거’ 탓이다. 짐 하임스 하원의원(민주당, 코네티컷주)은 7월17일 엠에스나우와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온통 ‘내가 그럴 거라고 했잖아’ 식의 주장으로 가득 찼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유권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실패한 정책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묻게 되면, 그는 이를 부정선거로 몰아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민주주의가 위태롭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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