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펄펄 끓는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2015년 12월13일)과 신당 추진(2016년 1월10일 국민의당 창당 발기인대회),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변경(2015년 12월28일 더불어민주당)과 잇단 탈당, 안철수-천정배(국민회의) 통합 선언(1월25일), 더민주-정의당 전략협의체 구성 합의(1월25일), 문재인 더민주 대표 사퇴(1월27일)…. 끓은 뒤 맛과 내용이 더 풍성해질지, 끓다 넘쳐 산산이 흩어질지는 시간이 설명할 것이다.
제1야당의 격동은 ‘분당’일 수도 있고 ‘창당’일 수도 있다. ‘분열’일 수도 있고 ‘분화’일 수도 있으며, ‘멸렬’일 수도 있고 ‘재건’일 수도 있다. 어느 쪽에서 보건 사태의 중핵엔 호남이 있다. 호남이란 단어는 한국 현대사에서 차별과 신화화라는 두 극단의 정념에 둘러싸여 요동해왔다. 호남을 희생양으로 만들거나 정치 동력으로 호명하는 용어들이 한국 정치사를 채우며 명멸했다.
오염된 언어와 권력의 ‘기획’1980년 5월의 광주는 참혹했다.
“공수대원이… 정조준하여 앞에 보이는 학생을 쏘았다. 순간 그 어린 고교생은 픽 쓰러졌고… M16 총탄이 목을 관통했는데 머리가 덜렁거리며 간신히 붙어 있을 뿐이었다.”
그 참혹의 경험과 기억은 곧바로 정치화됐다. 영남 정권은 그 참혹을 비틀어 호남을 정치적으로 철저하게 고립시켰고, 호남인들은 그 참혹을 매개로 정치적으로 강력하게 결속했다.
(풀빛·1985)는 “재난의 폐허 속에서 눈물을 씻으며 살림도구를 찾아 챙기는 심정으로 각종 자료와 체험담, 목격자들의 증언들을 그러모아” 출간됐다. 광주의 참상을 수록한 최초의 공식 출판물은 학살 5년 뒤에야 나왔다. ‘광주’가 금기어였던 학살자의 집권 시기였다.
집필자들의 구속을 우려해 소설가 황석영이 저자로 이름을 올렸으나 출간 뒤 그는 연행됐고 출판사 사장은 구속됐다. 언론 통제를 뚫고 전파된 광주의 참상처럼 도 비밀리에 유통돼 ‘지하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람들이 몰래 구해 벌벌 떨며 읽은 책에선 선거 때마다 발휘돼온 호남의 ‘기록적 몰표’를 단순 지역주의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글자마다 피처럼 배어올랐다.
오염된 언어는 사태의 인과를 감춘다. 언어의 의도적 오염은 권력의 ‘기획’인 경우가 많다. 지역감정과 지역갈등이란 용어는 차별하는 가해자와 차별받는 피해자를 한 꾸러미로 엮는다. 권력에 종속된 언론들이 차이를 섞고 경계를 지워 전파했다.
(개마고원)와 (개마고원)는 1995년 2월과 11월에 나왔다. 강준만은 ‘호남 차별’을 지역감정이란 말로 뭉뚱그리는 정치적 효과를 분석했다. ‘폭도들의 도시’ 광주가 ‘체제 전복 세력의 선봉’ 김대중과 짝지어져 반호남 정서의 밑불로 활용되는 메커니즘도 살폈다. 김대중 개인이 아니라 ‘김대중 현상’에 주목하며 김대중을 담론의 단계로 끌어올렸다.
경기도 평택이 고향인 정부투자기관의 한 과장은 를 읽고 편지를 썼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면 호남인들은 한풀이를 할 것이며… 나의 형수는 전남 여자인데 우리 형제들의 우애를 온갖 이간질로 토막토막 다 끊어놓았다. …직장에서도 전라도 사람들은 도대체 마음을 터놓고 상대할 수 없게 하는, 억지로 표현하자면 반쯤 ‘공개된 간첩집단’ 같다고나 할까?”
는 를 읽은 독자들의 편지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집필됐다. 실체가 규명되지 않는 ‘악마적 편견들’이 오랜 세월 호남을 옥죄었다. 광주·전남 출신 대학생들의 저조한 취업률에 광주시장이 100대 기업에 공문(1989년)을 보내 ‘제발 편견을 거둬달라’고 호소한 일도 있었다. ‘만들어진 호남 차별’이 일반 시민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는 양태를 책은 익지 않은 날고기째 내어놓는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남쪽 반만 통치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그 반쪽을 다시 동서로 나누어 통치했으며, 전두환 대통령은 그중 동쪽을 다시 경남북으로 나누어 경북만 통치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마침내 경북마저도 대구와 경북으로 갈라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에 언급된 1992년 2월 정주영 발언)
‘호남을 적으로 만들어 혐오토록 하고→문제의 원인을 호남의 탓으로 돌리며→호남을 배제한 분할통치로 비호남을 통합하는 방식’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승되는 통치 전략이다. 현 정권은 출범 이후 ‘국민-비국민’ 구도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정치적 위기를 타개해왔다.
분할통치의 전승지역주의 폐해론은 선거 때마다 호출됐다.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며 3당 합당 합리화 논리로까지 활용했다. 야권도 1987년 전후 지역주의를 내세워 합치거나 쪼개졌다. 공격·수비와 통합·분열을 되풀이하며 호남을 둘러싼 지역주의 논의도 가지를 쳤다.
3당 합당의 충격으로 ‘지역 할거’를 비판하는 3김 청산론이 확산됐다. 호남 지식인들 중심으론 저항적 지역주의 담론이 제기됐다. ‘영남 출신들이 국가 운영을 장악하기 위해 배타적·독점적 권력을 유지·강화하는 정치 전략 혹은 이념’을 비판하며 영남패권주의란 말도 사용됐다. 호남지역주의나 3김 청산론이 영남지역주의와 피해자의 저항을 동일 잣대로 평가하는 양비론이란 견해도 생겨났다. 영남의 패권에 책임을 묻는 의견과 호남의 몰표가 원인이란 주장, 영·호남 지역주의 모두가 문제란 시각이 난마처럼 얽혀들었다.
1992년 대선 패배 뒤 정계 은퇴한 김대중이 복귀(1995년 7월)했다.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1997년 대선에 출마한 그는 지역등권론을 정치적 이론으로 삼았다. 10년 전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섰을 땐 4자 필승론을 앞세웠다. 그와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모두 출마해 각각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충청의 표를 가져가면 호남과 수도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자신이 당선된다는 논리였다.
10년 뒤 김대중은 ‘지역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재무장했다. 동국대 교수 황태연이 논리를 뒷받침했다. 그는 대선 7개월 전에 낸 (무당미디어·1997)에서 내부식민지론을 펼쳤다. 한국은 경상도 재벌자본주의가 전라·충청·경기·강원·제주를 내부식민지로 삼아 지배하는 나라란 뜻이었다. 그의 이론은 DJP연대에 ‘패권적 지역주의’에 맞서는 ‘저항적 지역연합’이란 의미를 부여했다.
지역을 불러들이는 김대중의 전략은 1987년에 실패했고 1997년엔 성공했다. ‘지역 호출’의 성패를 둘러싼 예측도 때론 맞고 때로 틀렸다.
유시민은 황태연보다 한 달 앞서 (돌베개·1997)을 냈다. 그는 책에서 지역등권론으로 호남표를 일으키는 김대중의 전략을 “만병통치약”이자 “극약”이라고 했다. 그는 DJP연대의 패배를 전했다. 정확히는 김대중 필패론이었다. “반김대중 정서는 정면 돌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김대중으로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었다. 김대중보다 ‘김대중을 대리한 제3후보(조순)’의 득표 효과가 높을 것으로 유시민은 봤다. 예측은 어긋났고 김대중은 대통령이 됐다.
‘망국적 지역주의’를 둘러싼 진단과 해법의 차이는 현재 야권 재편 사태를 둘러싼 논쟁에까지 투영되고 있다. 지역주의 타파를 필생의 업으로 삼아온 노무현이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호남에 지지 기반을 둔 호남 정치인 김대중을 거쳐 호남에 지지 기반을 둔 영남 정치인 노무현과 연결되자 호남의 ‘호남 담론’은 다른 옷을 입게 된다. 노무현은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과 2005년 대연정 제안 등도 지역주의 극복이란 명분 아래 추진했다.
새천년민주당이 쪼개지면서 노무현을 압도적 지지로 당선시켰던 호남의 민심도 분화했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영남패권주의자로 보는 해석이 등장했다. 이 해석을 따르면 영남 보수정권이 동원했던 패권주의가 영남 개혁세력에게까지 스펙트럼을 넓힌다. 분당→대연정→‘부산 정권’ 발언(2006년 5월16일 문재인) 등을 호남의 몰표를 바탕으로 창출된 정권이 영남 표를 얻기 위해 추진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 행태라고 규정한다. 최근 야권의 분당·탈당 과정에서 등장하는 ‘패권’이란 용어도 이 쓰임새와 닿아 있다.
이 주장의 맨 앞에 서남대 교수 김욱의 책 (개마고원·2015)이 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가 노무현 이데올로기에 지배된 결과라고 말한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란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남에서 득표력이 있는 영남 후보를 내세워 호남 몰표를 뒷받침해야 하고, 그렇게 당선된 영남 대통령은 ‘민주 성지’ 호남의 정신적 양해 속에서 세속적인 영남을 물질적으로 유혹해 지역주의를 구조적으로 타파해야 한다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지배받는 사람이 바로 친노다.”
찬반이 극명하게 나뉘는 주장이면서 현재 호남 민심(‘선거 때만 우리를 이용한다’)의 일단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의 산파였으나 현재 친노와 거리를 두고 있는 천정배의 호남정치론도 그 민심을 호명하며 나왔다.
2012년부터 호남 담론엔 안철수가 들어왔다. 2015~2016년 그는 ‘친노 패권’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호남의 정치 지형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정책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세력들이 이합집산해 ‘반문·비노’ 구호를 공유한다.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갈린다. 2012년 강준만은 그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인물과사상사·2010))했다. 유시민은 안철수의 창당을 평민당 프로젝트(1987~88년의 김대중처럼 대선엔 실패해도 호남과 수도권에서 제1야당 지위 획득)라고 불렀다(2015년 12월22일 팟캐스트 ). ‘낡은 진보와의 결별’을 외치며 또 다른 낡은 세력과 뭉쳤다는 비판도 많다. 반영남패권주의 관점에선 비난할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이 호남에 표를 호소하며 경쟁하는 일은 호남의 이익을 실현하는 상식적인 길이다.
‘세속 호남’이 되라?“선주 누나와 은숙 누나는 베니어합판이나 스티로폼 판에 미리 비닐을 깔아놓고 그 위에 죽은 몸들을 눕혔다. …그 사이 너는 그들의 성별과 어림잡은 나이, 입은 옷과 신발의 종류를 장부에 기록하고 번호를 매겼다. …네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을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이기 위해서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너는 흰 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신원이 확인되면 멀찍이 물러서서 오열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한강·창비·2014))
겹쳐졌다. 1980년 5월 광주의 주검들을 묘사한 문장에서 34년 뒤 가라앉은 배를 빠져나오지 못한 죽음들이 어른거렸다. 낡고 무거운 배가 맹골의 바다에 침몰한 첫날도 그랬다. 진도실내체육관(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도착한 가족들은 입구에 붙은 구조자 명단부터 확인했다.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그들은 ‘실종자 가족’으로 명명되며 통곡하고 실신했다.
어떤 이들에게 세계는 2014년 4월16일 전과 후로 나뉜다. 호남엔 1980년 5월18일 이전의 호남과 이후의 호남이 있다. 학살이 결속한 호남 땅에서 학문적 개념 하나가 싹텄다. 한국사에서 다시 없을 도시 차원의 학살이 구성원들을 전에 없던 공동체적 경험으로 묶어냈다. (최정운·오월의봄·개정판 2012)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절대공동체란 말로 정의(초판 1999년)했다.
“시민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어깨를 끼어 스크럼을 짜고 같이 죽기로 하고 싸웠다. 시민들은 몸과 몸으로 하나가 되었다. …생명의 나눔은 헌혈을 통해 피를 나눔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이곳에는 사유재산도 없고, 생명도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다. 물론 이곳에는 계급도 없었다.”
절대공동체론은 5·18 연구의 독보적 연구 성과로 평가받는다. 항쟁 참가자들의 증언과 언어를 연구 전면에 끌어들여 울림을 키웠다. 절대공동체론을 토대로 조지 카치아피카스(미국 웬트워스공대 교수)는 광주 5·18이 파리코뮨보다 세계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이 더 크다((오월의봄·2015))고 썼다. 광주에 부여된 절대적 가치는 ‘광주 정신’을 드높이는 깃발이지만 한편 굴레가 되기도 했다. 절대공동체가 호남 정치의 세속적 선택을 제한하는 ‘반정치의 신화’란 지적((김정환·소명출판·2013))도 따랐다.
김욱은 절대공동체의 무게가 광주의 욕망을 거세했다()고 본다. 그는 광주가 성스러운 책임감에서 놓여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남의 욕망을 배신하는 정치인들을 “철저하고 가혹하게 응징”하는 것에서부터 호남의 민주정치는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유시민은 김욱의 호남세속화론을 “지역등권론의 21세기 버전”이라고 평했다.
(후마니타스·2009)은 한국 현대 ‘지역주의 망국론’의 시원을 1971년 대선 직후로 잡는다. 선거 부정을 통해 집권을 연장해야 할 만큼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김대중을 박정희 정권은 지역감정을 끌어들여 견제했다.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김문수가 이념적 거리를 훌쩍 뛰어넘어 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내건 알리바이도 ‘3김 청산’이었다. 저자 박상훈은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는 필요에 따라 이용되고 동원되는 이데올로기가 됐다고 했다.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도 그 틀로 바라봤다.
“누구든 국면 전환 내지 인위적 정계 개편의 욕구를 강하게 가질수록 지역주의 망국론을 동원하고자 하는 정치적 유혹은 앞으로도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지역주의는 차별의 마르지 않는 샘이었고 차별의 주체는 영남 정권의 패권주의였다. 누군가에겐 망국적 지역주의가 영남 세력에 정치권력을 떼어줘서라도 극복해야 하는 숙제였고 호남지역주의도 예외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저항해야 할 지역주의는 모든 지역주의가 아니라 영남패권주의이며 영남 개혁세력도 패권주의자다. 김대중 정부의 탄생 역정과 노무현 정부의 명과 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야권의 소용돌이는 모두 ‘호남’과 ‘지역주의’라는 두 단어의 자장 속에 있다. 그 자력의 밀고 당김 속에서 더 이상 호남에 ‘단일대오’는 없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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