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탑이 종탑과 만났다.
혹은 철탑에 종탑이 왔다. 서울 혜화동성당(동대문구) 종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재능교육 오수영·여민희씨의 동료 해고노동자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철탑에 모였다. 황창훈(사진 오른쪽 두 번째)·이현숙(세 번째)씨는 서울에서, 정순일(네 번째)씨와 김경은(첫 번째)씨는 각각 울산과 부산에서 도착했다. 두 고공이 만난 7월20일은 농성 277일째와 165일째 되는 날이었다.
김경은씨는 “솔직히 부럽다”고 했다. “두 철탑 노동자들을 위해 100여 대의 버스가 움직이는 모습도 부럽고, 철탑 앞에 수천명의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도 부러워요. 재능교육 싸움이 현대자동차 싸움처럼 전국적으로 이슈화되지 않아 안타깝고요.” 정순일씨는 “우리도 종탑 위 두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뭔가를 해야 하는데 뜻대로 안 돼 답답하다”고 했다.
네 사람은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주차장에서 다른 탑승자들과 함께 밤을 밝혔다. 이튿날 아침 식사는 라면과 즉석 누룽지로 해결했다. 장맛비가 서울 종탑의 텐트를 뒤흔들 때, 울산 철탑의 아침은 한 점 그늘이 아쉬운 찜통 뙤약볕이었다. (서울의 장마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7월22일 거센 비바람이 종탑의 허약한 텐트 기둥에 수십 개의 금을 새겼다. 여민희씨는 이틀 뒤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바람 따라 텐트는 계속 눕겠다고 덤빈다. 번개에 의한 전세계 사망자·부상자 수를 확인하며 최악은 아닐 거라 위로한다.”)
황창훈씨는 “종탑을 꾸준히 지원해준 분이 며칠 전에 한 이야기가 기억난다”고 했다. “종탑농성자들을 위해서도 ‘희망지하철’이나 ‘희망시내버스’ 타야 되는 것 아니냐며 펑펑 울더군요.”
원직 복직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싸워온 재능교육 투쟁이 2천 일(6월11일)을 넘긴 지 오래다. 이현숙씨는 “우리 싸움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고 했다.
“종탑 꼭대기 맞은편이 재능교육 본사 8~9층 높이예요.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으면 두 사람도 종탑에 오르지 못했겠지요. 우리 싸움은 마라톤입니다. 지쳐도 멈출 수 없습니다.”
종탑이 철탑을 떠나온 뒤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286일과 174일째(7월29일 기준)다.
울산=이문영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김건희 취임식 초대장, 정권 흔드는 리스트 되다
정우성 “친자 맞다”…모델 문가비 출산한 아들 친부 인정
이재명 오늘 오후 ‘위증교사 의혹’ 1심 선고…사법 리스크 분수령
세계 5번째 긴 ‘해저터널 특수’ 극과 극…보령 ‘북적’, 태안 ‘썰렁’
민주 “국힘 조은희 공천은 ‘윤 장모 무죄’ 성공보수 의혹…명태균 관여”
[사설] 의혹만 더 키운 대통령 관저 ‘유령 건물’ 해명
러 외무차관 “한국, 우크라에 무기 공급시 한-러 관계 완전 파괴”
[단독] 김건희 라인, 용산 권력 양분…“여사 몫 보고서까지 달라 해”
“총선 때 써야하니 짐 옮기라고”…명태균, 미래한국연구소 실소유주에 ‘무게’
[단독] 북파공작에 납치돼 남한서 간첩활동…법원 “국가가 18억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