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희망지하철·희망시내버스는 어때요?”

철탑에 온 종탑
등록 2013-07-31 10:46 수정 2020-05-03 04:27
이문영

이문영

철탑이 종탑과 만났다.

혹은 철탑에 종탑이 왔다. 서울 혜화동성당(동대문구) 종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재능교육 오수영·여민희씨의 동료 해고노동자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철탑에 모였다. 황창훈(사진 오른쪽 두 번째)·이현숙(세 번째)씨는 서울에서, 정순일(네 번째)씨와 김경은(첫 번째)씨는 각각 울산과 부산에서 도착했다. 두 고공이 만난 7월20일은 농성 277일째와 165일째 되는 날이었다.

김경은씨는 “솔직히 부럽다”고 했다. “두 철탑 노동자들을 위해 100여 대의 버스가 움직이는 모습도 부럽고, 철탑 앞에 수천명의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도 부러워요. 재능교육 싸움이 현대자동차 싸움처럼 전국적으로 이슈화되지 않아 안타깝고요.” 정순일씨는 “우리도 종탑 위 두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뭔가를 해야 하는데 뜻대로 안 돼 답답하다”고 했다.

네 사람은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주차장에서 다른 탑승자들과 함께 밤을 밝혔다. 이튿날 아침 식사는 라면과 즉석 누룽지로 해결했다. 장맛비가 서울 종탑의 텐트를 뒤흔들 때, 울산 철탑의 아침은 한 점 그늘이 아쉬운 찜통 뙤약볕이었다. (서울의 장마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7월22일 거센 비바람이 종탑의 허약한 텐트 기둥에 수십 개의 금을 새겼다. 여민희씨는 이틀 뒤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바람 따라 텐트는 계속 눕겠다고 덤빈다. 번개에 의한 전세계 사망자·부상자 수를 확인하며 최악은 아닐 거라 위로한다.”)

황창훈씨는 “종탑을 꾸준히 지원해준 분이 며칠 전에 한 이야기가 기억난다”고 했다. “종탑농성자들을 위해서도 ‘희망지하철’이나 ‘희망시내버스’ 타야 되는 것 아니냐며 펑펑 울더군요.”

원직 복직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싸워온 재능교육 투쟁이 2천 일(6월11일)을 넘긴 지 오래다. 이현숙씨는 “우리 싸움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고 했다.

“종탑 꼭대기 맞은편이 재능교육 본사 8~9층 높이예요.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으면 두 사람도 종탑에 오르지 못했겠지요. 우리 싸움은 마라톤입니다. 지쳐도 멈출 수 없습니다.”

종탑이 철탑을 떠나온 뒤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286일과 174일째(7월29일 기준)다.

울산=이문영 기자
7월20일 현대차 울산공장 철제 담장을 사이에 두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희망버스 참가자와 현대차 사 쪽 직원들이 충돌했다. 사 쪽이 사진을 찍는 기자를 향해 물을 쏘고 있다.

7월20일 현대차 울산공장 철제 담장을 사이에 두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희망버스 참가자와 현대차 사 쪽 직원들이 충돌했다. 사 쪽이 사진을 찍는 기자를 향해 물을 쏘고 있다.

소화기 분말이 하얗게 점령한 박승화 기자의 카메라.한겨레 김태형

소화기 분말이 하얗게 점령한 박승화 기자의 카메라.한겨레 김태형

현대차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정문 앞에 ‘컨테이너 산성’을 쌓았다.박승화

현대차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정문 앞에 ‘컨테이너 산성’을 쌓았다.박승화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