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7돌을 맞이해서 열린 제8회 인터뷰 특강이 4월4일 서울 서강대 컨벤션센터에서 만화가 강풀과 3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시작됐다. 열쇳말은 ‘청춘’, 그가 들고 나온 주제는 ‘이야기 만들기’였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란 “캐릭터가 어떤 사건을 만나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잘 만든 이야기는 한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며 캐릭터가 확실하다고도 말했다. 그는 때때로 이야기 속 캐릭터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스스로 풀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단다. 그가 처음 그린 장편 만화 에서 그랬다고 한다. 남녀 캐릭터가 확실하니 그들의 대화가 살아 있는 듯 서로를 향해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것이다.
만화가 강풀은 ‘이야기 만들기’란 주제로 특강에 나섰으나, 특강에 참석한 청중이란 캐릭터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청춘=고민이 많은 세대’란 등식이 성립하는 시절이어서 그런지 강연은 자연스럽게 고민 상담 형식으로 흘러갔다.
“즐기고, 경험하고, 열망으로 현실을 이길 것”
김용민(사회) ‘20대는 희망이 없다, 10대에게 판돈을 다 걸겠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풀: 나는 20대가 (희망이 없다기보다는) 안 됐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사회에 나오자마자 빚쟁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나왔겠나. 20대에게 미안하다. 강연을 하러 와서 보니 서강대에서도 새 건물을 계속 짓고 있더라. 요즘 가보는 대학마다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걸 보며 ‘아, 새 건물이라서 좋겠다’는 생각보다 등록금이 오를까 걱정됐다.
김용민: 만화가 강풀이 말하는 청춘이란 무엇인가.
강풀: 청춘! 청춘은 고민이 많은 시절이다. 가장 큰 고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인 것 같다. 생각을 복잡하게 하면 고민이 되고, 간단하게 하면 계획이 된다. 내가 만화가이다 보니 많은 만화가 지망생이 고민과 관련한 전자우편을 보낸다. 나는 그들에게 한 가지를 강조한다. 100번의 습작보다 한 번의 실전작이 낫다는 것이다. 청춘 때가 아니면 실전에 부딪쳐 볼 기회가 없다. 습작은 쉽게 포기할 수 있다. 스스로 한계선을 긋고 타협하게 된다. ‘내 스펙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 수 있을까’ 두려워하며 고민하지 말고 그냥 바로 실전으로 뛰어들라는 것이다.
당신이 청춘이라면, 꿈과 직업을 두고 헷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대학교 졸업 뒤 만화가를 꿈꿨다. 내 청춘의 꿈은 만화가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만화가는 내 꿈이 아니라 직업이었다. 직업은 그냥 내가 하는 일이다. 꿈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현재 내 꿈은 내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만화가가 되었다고 꿈을 이룬 게 아니다. 청춘들이 특정 직업을 꿈이라 생각하지 않고 좋은 꿈을 꾸면 좋겠다.
청중1: 현재 20살이다. 어떻게 하면 20대를 잘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강풀: 나는 20대 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만화가는 대학을 졸업할 때쯤 만화가 너무 좋아서 결정한 것이다. 20대 때 벌써부터 진로를 정하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해보면 좋겠다. 이것저것 해보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정확히 알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많이 경험해보자.
청중2: 꿈이 방송작가인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방송작가가 돈을 별로 못 번다고 들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옳을까, 편안한 삶을 위해 돈 많이 버는 직장을 찾는 게 옳을까?
강풀: 답은 간단하다. 행복한 일을 찾는 것이다. 돈 때문에 행복하다면 돈 버는 일을, 방송작가가 행복하다면 방송작가를 하면 된다. 본인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김용민: 먹고사는 문제에 관해 청춘들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꿈을 위해 올인하라는 말은 너무 당연하게 들리지 않나.
강풀: 내 청춘도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나긴 힘들었다. 아버지가 목사셨는데, 매체에서 흔히 보는 대형 교회 목사가 아닌 그냥 작은 교회의 목사라 집안 형편이 좋지 못했다. 아, 정확히 말하면 항상 자식을 믿어주셔서 집안 환경은 좋고 형편은 좋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웃음)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집안 사정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무작정 만화만 그리고 있을 수 없으니 이력서를 썼다. 만화로 먹고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다음, 전화번호부를 한 권 가지고 집에 들어왔다. 출판사, 잡지사, 신문사라 이름 적힌 곳에 400여 장의 이력서를 냈다. 아무데서도 써주지 않았다. 다음으로 서점에 갔다. 만화잡지를 다 뒤졌다. 거기 적힌 편집장 이름, 잡지사 주소를 찾아 또 6개월간 이력서를 냈다. 그래도 안 됐다. 그때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 이러다 돈은 못 벌 것 같고, 집안 형편은 생각 않고 너무 철없이 지내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만화를 안 그리면 못 살겠다 싶었다. 그러다 기회를 얻었다. 처음엔 오프라인 만화만 생각했는데, 조금 방향을 틀어 웹툰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결국 이렇게 만화가가 되지 않았나. 자신의 욕구가 현실과 부딪혔을 때 현실을 이기는 방법은 그 욕구가 현실보다 더 강할 때다.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현실의 문제를 이겨냈다.
청중3: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풀: 내 학창 시절과 비슷하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만화가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꿈도 없었다. 학생 때 장래 희망을 써서 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진로를 꼭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벌써부터 미리 진로를 정해놓으면 그 외의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치게 되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을 많이 하고 즐기다 보면 그것과 연관된 일이 생길 것이다. 억지로 진로를 설정해 거기에 맞춰 가지 말고 그냥 즐기길!
“힘내라, 청춘”
청중4: 고등학생이다. 현재 애니메이션과에 다니고 있는데, 좋아서 시작한 만화인데도 너무 힘들다 보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강풀: 생각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좋아하는 일을 해도 매너리즘에 빠지는데,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더 심할 거라고. 나도 만화를 그릴 때 힘든 적이 참 많다. 그런 과정은 누구나 겪는다. 조금 있으면 다시 좋아질 것이다.
어느덧 ‘고민상담소’가 되어버린 강연장에서 그는 사실 청춘에게 긴 얘기보다 ‘힘내라!’는 말밖에 할 게 없다고 했다. 만화가 강풀은 이날 강연을 끝으로 상반기 공식적인 일정을 마친다 했다. 강연이 끝난 다음날부터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단다. 먼 걸음을 한 청중에 대한 배려인지 강풀은 그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예고편’을 들려줬다. 조명 가게에 대한 이야기인데, 진짜 무서운 이야기가 될 거란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귀신은 여자귀신, 그중에서도 처녀귀신이 가장 무서운데, 그런 서늘한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라고 했다. 강풀은 글 작업을 모두 마치고, 결말까지 다 정한 다음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일련의 작업을 마치고 만화로 선보일 수 있는 시간은 여름께가 될 듯하다. 강풀은, 올여름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는 이야기를 들고 나와 다시 청춘에게 ‘힘내라’는 인사를 건넬 것이다.
글 염은비 21기 독자편집위원
사진 박승화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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