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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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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쥐어짜 ‘서구의 맛’을 선보이다



월드컵은 ANC 정권이 사회통합 프로젝트로 추진해온 ‘스포츠 정치’의 절정,
빈부격차 갈등은 폭발하기 직전
등록 2010-06-11 21:49 수정 2020-05-03 04:26

13살의 피터 헥터슨은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1976년 6월16일 오전 9시, 피터는 누나와 함께,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소웨토의 거리로 나섰다. 총을 맞았다. 피 흘리는 피터를 안고 누나 앙투아넷은 울부짖었다. 피터는 백인 정권에 항거한 ‘소웨토 학생 봉기’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그 사진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아파르트헤이트 통치의 잔혹함을 고발했다. 소웨토 봉기는 이후 1년간 계속됐다. 봉기로 인한 사망자만 575명이었다.

경기장 신축에 쏟아부은 돈 13억달러

프리토리아 인근 소샹구베 마을 아이들이 천진한 표정으로 뛰어놀고 있다.

프리토리아 인근 소샹구베 마을 아이들이 천진한 표정으로 뛰어놀고 있다.

인종차별에 맞선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저항운동의 상징적·실질적 토대였던 소웨토는 남아공의 경제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서 자동차로 20분 떨어진 곳에 있다. 거대한 흑인 주거 지역이다. 줄잡아 100만 명이 산다. 1994년 ANC가 집권한 뒤 환경이 많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은디체니 치코시는 소웨토에서 16년째 살고 있다. 앞마당에 살구나무가 있고, 뒷마당엔 상추와 토마토를 심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은디체니의 집에서 생기가 흐르는 것은 별로 없다. 부모는 50살을 전후해 병으로 돌아가셨다. 사남매가 삼촌의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소웨토 사람들은 누구든 꿈을 갖고 있어요. 여기서 떠나는 거죠.”

요하네스버그대학 정치학과 1학년인 은디체니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시큰둥하다. “월드컵 때문에 관광객이 오고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단지 두 달뿐이에요. 월드컵이 끝나면 지금껏 살아온 방식대로 다시 살겠죠.” 같은 대학 대학원생인 은코시 나티가 거들었다. “월드컵 때문에 남아공 사람들이 잘살게 될 거라는 건 환상이에요. 남아공 사람들은 축구를 좋아하지만, 월드컵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을 거예요. 사실 ANC는 월드컵을 개최해도 좋겠느냐고 국민에게 물어보지도 않았죠.”

12살 밀라노 페트릭의 문제도 월드컵이 해결해주진 못할 것이다. 밀라노는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 환자다. 역시 에이즈 환자였던 아버지는 지난해에 죽었다. 35살의 엄마도 감염자다. 모자는 낡은 벽돌집 뒷마당에 세들어 산다. 양철로 대충 집을 지었다. 침대 2개, 화장대 그리고 라디오가 있다. 밀라노는 주인집 텔레비전으로 월드컵을 관람할 생각이다. 프리토리아 근처 흑인 마을에 사는 이들은 정부가 에이즈 환자에게 주는 1천랜드(약 15만원)를 받아 800랜드(약 12만원)를 월세로 내고, 200랜드(약 3만원)로 생활한다. 비가 오면 침대 밑까지 흙탕물이 차오른다. 모자의 꿈은 흙바닥에 장판을 까는 것이다.

밀라노의 엄마가 창가에 약병을 하나씩 올려놓았다. 모두 7개다. 밀라노는 그 가운데 4개를 먹고, 엄마는 6개를 먹는다. “생명 연장에 도움이 되는 약”이라고 밀라노의 엄마가 말했다. 밀라노는 그 약을 왜 매일 세 번씩 먹는지 알지 못한다. 남아공에서 미성년자의 에이즈 감염 사실은 오직 친부모만 전할 수 있다. 엄마는 밀라노가 친구들의 놀림을 받을까 두려워 12년 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임흥세 감독은 에이즈 환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남아공에 건너온 지 4년째다. 밀라노도 그에게서 축구를 배웠다. “남아공에서 에이즈는 질병이 아니라 가난과 무지예요. 건강하게 생활만 하면 아무 탈이 없을 텐데, 무지해서 병에 걸리고 가난해서 일찍 죽는 거죠.”

이방인의 눈에 그 상황은 역설적이다. 남아공 정부는 월드컵 경기장 신축에만 13억달러(약 1조4800억원)를 쏟아부었다. 흑인의 대다수가 절대 빈곤과 불치병으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왜 흑인 정권은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월드컵을 유치하는가. “영화 를 봤나요?” 리치 음콘도 남아공 월드컵 조직위원회(LOC) 대변인은 답을 주는 대신 오히려 기자에게 물었다.

에이즈 감염자인 밀라노 페트릭과 그 엄마가 프리토리아 인근 타운십에 있는 ‘깡통집’ 앞에 서 있다. 동네 친구들(오른쪽)한테 놀림을 받을까 두려워, 엄마는 에이즈 감염 사실을 밀라노에게 아직 말하지 못했다.

에이즈 감염자인 밀라노 페트릭과 그 엄마가 프리토리아 인근 타운십에 있는 ‘깡통집’ 앞에 서 있다. 동네 친구들(오른쪽)한테 놀림을 받을까 두려워, 엄마는 에이즈 감염 사실을 밀라노에게 아직 말하지 못했다.

사커시티에서 석방된 만델라를 맞다

지난 3월 전세계에서 개봉한 는 1995년 남아공이 주최한 럭비 월드컵의 실화를 다뤘다. 당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흑인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인 위주로 구성된 럭비 대표팀을 적극 후원했다. 백인 주장의 유니폼을 입고 결승전을 관람했다. 남아공은 극적으로 우승했다. “럭비 월드컵 때문에 남아공의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어울렸어요. 이번 월드컵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 통합을 이루는 거죠.”

1994년 집권한 ANC 정부는 정치의 전면에 스포츠를 내세웠다. 30년에 걸친 수감 생활을 마치고 1990년 만델라가 석방됐을 때, 이를 환영하는 첫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린 곳은 ‘사커시티’였다. 2010 월드컵의 주경기장이기도 하다. 소웨토 인근에 자리한 9만5천 석 규모의 거대한 축구장은 백인 통치 시기에 흑인이 모여 환호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근처 금광에서 일을 마친 흑인들은 광부의 안전모에 형형색색의 장식을 한 ‘마카라파’를 쓰고 경기장을 찾았다. 귀를 찢을 듯 소리 높은 전통 나팔 ‘부부젤라’는 백인 지배에 대한 아우성이었다. 오늘날 남아공 축구팀 서포터스의 대표 상징이 된 ‘마카라파’와 ‘부부젤라’에는 남아공 흑인의 저항과 울분이 담겨 있다. 만델라를 환영하는 남아공 흑인이 사커시티에 모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만델라 석방 한 달 뒤, 공영방송 가 남아공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을 전국에 생중계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만델라 스스로 소웨토를 근거지로 한 프로축구팀 ‘올랜도 파이어리츠’의 서포터스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지켜본 남아공 흑인은 바야흐로 그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을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2년이 되던 1996년, ANC 정부는 기존 흑인 축구리그를 확대 개편한 프로리그 PSL을 출범시켰다. 만델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축구대회를 유치했고, 남아공 대표팀은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에는 세계육상선수권, 2003년에는 크리켓월드컵도 개최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은 ANC 정권이 추진해온 ‘스포츠 정치’의 절정인 셈이다.
남아공에서 럭비는 아프리칸스(네덜란드에서 건너와 토착화된 백인), 크리켓은 영국계, 축구는 흑인의 스포츠로 통용된다. 축구를 좋아하는 백인이 있다 해도 그 바탕은 조금 다르다. 2008년 영국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남아공을 방문해 친선 경기를 열었다. 소웨토를 근거지로 하는 남아공의 ‘카이저 치프스’와 맞붙었다. 카이저 치프스는 1400만 명의 등록 서포터스를 거느리고 있다. 남아공 사람 3.5명 가운데 1명은 카이저의 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당시 경기장에는 백인이 더 많았다. 그들은 맨유를 응원했다. 지역 신문인 는 “(남아공의) 백인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영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것은 유럽의 것이 더 좋다는 (잘못된) 정신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요하네스버그대학 대학원생 은코시도 그때의 일을 기억한다. “백인들은 월 520랜드(약 7만8천원)씩 내는 위성방송을 보거든요. 위성방송으로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봤으니, 맨유와 친숙하겠죠. 그들은 PSL 경기장에는 오지도 않아요.” 남아공 백인들의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는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 유럽 출신이다. 그들에겐 유럽의 ‘모국’을 향한 유대감이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축구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다. 남아공 축구 대표팀 ‘바파나 바파나’의 주전 11명 가운데 백인은 골키퍼뿐이다.

경기장에는 노점 대신 FIFA 파트너 회사 상품만

그러나 축구를 둘러싼 흑백의 미묘한 차이가 이번 월드컵의 중대한 문제는 아닌 듯 보였다. 남아공 도심에는 국기를 매단 자동차가 즐비했는데, 상당수는 백인이 몰고 있었다. 로렌스 해밀턴 요하네스버그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영국 명문 토트넘 홋스퍼를 응원한다. 그리고 얼마 전, 자신의 자동차에 국기를 내걸었다. 그는 아프리칸스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백인이다. “이번 월드컵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경기장에 쏟아부은 정부 예산이 쓸모없다는 점에 동의해요. 다만 아프리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서구를 향해 우리가 나라를 통합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치러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자는 취지 또한 동의해요. 그래서 국기를 내걸었죠.”
‘축구 정치’의 중대한 균열은 오히려 흑백이 아닌 빈부의 문제에 있다. 2009년 12월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은 “남아공 정부가 월드컵 준비를 위해 2만여 명의 빈민을 거주지에서 몰아내고, 수십만 채의 저렴한 주택에 대한 예산을 삭감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남아공 정부는 음봄벨라시에 월드컵 경기장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초등학교를 헐었다. 학생들은 가건물에서 공부하게 됐다. 2008년 10월, 학생·학부모·교사들이 학교 가건물을 불태우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2009년 6월, 음봄벨라시 대변인인 지미 모흘라라가 자택에서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는 경기장 건설을 둘러싼 모종의 내부 고발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상찮은 사건이 이어졌지만, 남아공 언론과 정부는 이 문제를 더이상 거론하지 않는다. 이런 내용을 고발하는 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최근 제작됐지만, 극장이나 방송에서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
남아공 시민단체는 월드컵 경기장을 증축하거나 새로 짓는 데 들어간 예산으로 4년 동안 연간 9만여 개 서민주택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반에는 5만5천명 수용 규모의 럭비 구장 바로 옆에 7만5천 명을 수용하는 축구 경기장이 새로 들어섰다. 케이프타운도 6만4천 명 수용 규모의 럭비 구장을 고쳐 쓰는 대신 7만4천 명이 들어오는 축구 경기장을 새로 지었다. 이 과정에서 경기장 주변의 빈민과 노점상도 몰아냈다. 2007년 9월, 더반시 당국은 1200여 명의 노점상을 도심에서 몰아냈는데, 당시 시장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월드컵 개최는) 좋지 않은 환경을 정리할 좋은 기회”라고 말해 더 큰 논란을 자초했다.
남아공에서 노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가난한 흑인들은 과일·빵·잡화 등을 내다 팔아 생활한다. 남아공 어디를 가도 노점과 행상을 하는 무수한 흑인을 만날 수 있다. 남아공 정부의 노점 단속은 소수 빈민의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흑인 다수의 문제다. 단속의 뒤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있다. 월드컵 기간 경기장 안팎에선 맥도널드·코카콜라 등 이른바 ‘FIFA 파트너 회사’들의 상품만 판매된다. 경기장 밖에서 간단한 음식을 팔려 해도 월드컵 조직위원회에 6만랜드(약 900만원)를 내야 한다. 가난한 흑인들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남아공 흑인들이 축구장 앞에서 언제나 사먹는 ‘팹 앤 블레’(고기를 곁들인 죽)는 이번 월드컵에선 절대로 맛볼 수 없게 됐다. 에슈윈 데자이 요하네스버그대학 인문연구소 연구원은 “경기는 남아공에서 열리지만, 그 체험은 ‘서구’의 것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남아공 당국은 FIFA 규정에 따르는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음파니세니 파나 위트대학 교수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 행사를 도대체 왜 유치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럭비·크리켓 월드컵 등을 개최했을 때, 남아공 흑인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렌스 해밀턴 교수는 “과거 럭비 월드컵 때는 FIFA처럼 모든 일을 뜻대로 관철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중앙통제 조직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국적기업 FIFA’를 불러들여 앞마당에 잔치판을 열어준 것은 ANC 정부다.

요하네스버그 인근 소웨토의 한 노점. 남아공 서민 경제에서 노점, 행상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요하네스버그 인근 소웨토의 한 노점. 남아공 서민 경제에서 노점, 행상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월드컵을 준비한 만큼의 노력으로…

글렌 파레드는 세계적 반빈곤 단체인 ‘GCAP’(Global Call to Action against Poverty)의 남아공 지부 사무국장이다. 그는 이번 월드컵이 ANC 정권에 중대한 기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집권 직후, 만델라 정부는 과거 백인 정권이 흑인 억압에 쏟아부은 막대한 예산만 활용하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뒤이은 타보 음베키 정부는 시장 개방을 시도했다. 자발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시장 규율을 수용했다. “한국은 억지로 한 거잖아요. 그걸 스스로 했으니,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실권했지요.” 지금은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 ANC 정권을 이끌고 있다. “그의 계획은 뭔가요?” 파레드 사무국장은 웃었다. “주마 대통령이 뭘 하려 하느냐…. 남아공 사람들 모두 그걸 알고 싶어하지요.”
결국 1994년 이후 16년 동안 장기 집권에 성공했음에도 ANC 정부는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미 공산당 등 남아공 좌파 세력은 백인이 소유한 금과 다이아몬드 광산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온건파는 이른바 ‘아파르트헤이트 세금’을 만들어, 과거 백인 통치기에 막대한 이득을 거둔 기업에 ‘과거 이익에 대한 소급 징세’를 하자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어느 쪽이든 막강한 경제력을 틀어쥔 남아공 백인의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010 월드컵은 임계점에 도달한 빈부 격차의 갈등과 긴장이 폭발하기 직전의 시기에 열리게 됐다. 파레드 사무국장은 “그토록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막대한 돈을 들여 월드컵을 준비했다면, 이제부터 그만큼의 노력으로 빈부 격차 문제를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게 남아공 시민사회의 여론”이라고 말했다.
1962년 백인 정부에 체포된 만델라는 법정에서 말했다. “나는 백인 통치에도, 흑인 통치에도 반대합니다. 나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이상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가지며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갈 것입니다.” 만델라가 정초한 ANC 정권이 그 이상을 향해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월드컵이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이다.



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케이프타운(남아프리카공화국)=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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