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현지 취재를 떠나기 전, 가장 걱정한 것은 치안이었다. 남아공은 한국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 유의 국가’다. 인터넷에 떠도는 남아공 관련 글은 무시무시했다. 살인·강도·성폭행 등이 한국보다 6~40배까지 많이 일어난다는 내용이었다.
첫날, 요하네스버그 공항에 도착하자, 한국인 교민이 마중 나왔다. 숙소로 이동하는데, 그가 자꾸 백미러를 쳐다봤다. 바로 뒤에 흑인 서너 명이 올라탄 밴이 따라오고 있었다. “잠시 (샛길로) 빠졌다 갑시다.” 뒤차는 가던 길을 그대로 달려갔다. 공항에서부터 따라붙는 ‘노상강도’를 염려한 듯했다. 그들이 실제 강도였는지, 그냥 따라온 것뿐인지는 영영 알 수 없다.
<font color="#00847C">한낮에도 절대 가지 말라던 곳인데…</font>중산층 이상이 모여사는 주택가에는 거의 예외 없이 담장 위에 전기선이 설치돼 있었다. 사설경비회사가 지키고 있다는 경고 표지도 대문마다 붙어 있다. 경비회사의 순찰차는 5분에 한 번씩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가방을 차에 두고 내려선 안 된다. 카메라는 보이는 곳에 두면 안 된다. 사람들 앞에서 돈을 주고받아선 안 된다….’ 교민들은 항상 주의를 줬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남아공 치안 상황이 실제보다 너무 나쁘게 부풀려 전해진다”는 걱정도 했다. 어느 게 사실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백인 정권이 흑인들을 강제로 집단 이주시킨 ‘소웨토’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100만여 명이 모여사는 광대한 소웨토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사는 골목이 있었다. 현지 안내인은 “여기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요하네스버그대학 정치학과 대학원생인 은코시는 “아주 가끔 이웃의 차를 씻어주는 게 이들의 유일한 돈벌이”라며 “바로 그런 가난이 범죄의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웨토의 다른 지역은 아무렇지 않게 거닐 수 있었다. 흑인들은 이방인을 기꺼이 반기며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
요하네스버그대학 로렌스 해밀턴 교수는 남아공에서 자랐다. 30대 후반의 중산층 백인이라면 범죄의 표적이 됐을 법도 했다. “아니, 한 번도 그런 일 겪은 적 없어요.” 그의 집 담장 위에는 전기선도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재즈 카페’를 안내해줬다. 좋은 음악을 듣고, 50여m쯤 걸어나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길 가던 낯선 이와 대화도 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다음날 보니 그 카페는 요하네스버그 중앙역 부근에 있었다. 한국의 네티즌들이 한결같이 “한낮에도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경고한 바로 그 지역이었다.
범죄보다 더 자주 접한 것은 빈곤이었다. 도심 복판 신호등 주변에는 항상 걸인이 있었다. 어느 날엔 맹인 아버지가 10대의 딸을 앞세우고 구걸을 했다. 소녀는 짧고 붉은 치마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저러다 가끔 차를 세워 성매매를 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font color="#C21A8D">미국의 사흘, 남아공의 열하루</font>
10년 전, 미국 뉴욕에 사흘을 머무는 동안 대낮 도심에서 강도를 당해 100달러를 뺏긴 적이 있다. 남아공의 도심, 흑인 거주지역, 빈민가 등을 돌아다닌 열하루 동안,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흑인과 백인이 다수를 이룬 남아공에서 동양인은 ‘눈에 띄는’ 존재다. 게다가 동양인은 흑인에 비해 부자다. 현지 사정을 모르고 우범지대에 들어간다면 불의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교민들은 그런 일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없는 나라가 지구상에 있긴 한가. 남아공의 역사학자 루츠 판 다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흑인들은) 부유함에서 아주 작은 한 조각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들은 가족을 끝도 없이 돕고, 대신 다른 사람은 누구든 속인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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