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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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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버디무비, 축구는 록음악, 축구는…

각 분야 평론가 5명이 말하는 축구의 아름다움…
“카타르시스가 폭발하고 육체적 에너지가 쏟아지는 축제”
등록 2010-07-02 16:05 수정 2020-05-03 04:26
축구는 육체적 에너지가 발산되는 축제의 장이다. 6월23일 오스트레일리아-세르비아 경기에서 선수들이 공을 다투고 있다. REUTERS/ DANIEL MUNOZ

축구는 육체적 에너지가 발산되는 축제의 장이다. 6월23일 오스트레일리아-세르비아 경기에서 선수들이 공을 다투고 있다. REUTERS/ DANIEL MUNOZ

축구 해설가는 많아도 축구 평론가는 드물다. 평론이 흥해야 작품이 빛난다. 여기 축구에 대한 짤막한 ‘횡단 평론’을 모았다. 문학·미술·영화·음악·스포츠 평론가에게 ‘축구라는 작품’에 대해 물었다. 축구는 아름다운가요? 왜 아름답다고 느끼나요?

“계획되고 정제된 것을 넘어서는 순간에 뿜어져나오는 미적 쾌감이다.”

● 이명원 문학평론가

이명원 문학평론가

이명원 문학평론가

축구의 아름다움은 골에서 나온다. 여기서 미적 카타르시스가 발생한다. 그런데 축구의 골은 여러 패스가 연결되는 오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카타르시스의 욕망이 즉각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돌발적으로 골이 터진다. 90분 동안 팽팽하게 유지되면서도 계속 지연되기만 하던 욕망이 갑작스레 실현되니까 그 쾌감의 강도가 훨씬 크다. 그것은 장엄함을 느끼는 숭고미에 가깝다. 계획되고 정제된 것을 넘어서는 순간에 뿜어져나오는 미적 쾌감이다. 오늘날 축구의 미적 쾌감에는 미디어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 월드컵이나 유럽 챔피언스리그 등의 경기를 보면 수십 대의 카메라가 찍어낸 장면에서 순간의 동작과 선수들의 표정까지 드러난다. 이제 사람들은 하나의 경기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축구를 즐기는 데 익숙해져 있다. 국내 경기에선 그런 카타르시스가 덜하다. 국내 K리그 경기 중계는 단순하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월드컵에 더 환호하는 것이다.

“육체적 에너지를 표현하면서 리비도(성충동)를 쏟아내는 장이다.”

● 황진미 영화평론가

황진미 영화평론가

황진미 영화평론가

축구는 근육과 폭력의 남성성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각적으로 훌륭한 텍스트다. 화면에 잡히는 여러 앵글에서 몸과 몸이 부딪치고 근육이 뒤틀리는 엄청난 활력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몸 좋은 경찰 두 명이 나와 서로 티격태격 싸우면서 우정을 드러내는 ‘버디 형사 영화’를 닮았다. 사실 축구는 섹슈얼리티 측면에서 굉장히 이상한 텍스트다. 남자들이 진흙탕에서 싸우다가 갑자기 셔츠를 벗어 서로 바꿔입고 웃으며 끌어안는다. 여성 동성애 영화를 보는 남자들의 느낌이 있듯이, 남성 동성애에 대한 여자들의 성적 쾌감이 있는데, 축구는 그런 즐거움을 준다. 과거 월드컵에 비해 긴박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지만, 텍스트를 즐긴다는 차원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여러 장면을 다시 보고, 편집하고, 소장할 수 있다. 더 많이 향유·전유할 수 있게 됐다. 월드컵 기간에 비키니 입은 ‘월드컵녀’가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육체적 에너지를 표현하면서 리비도(성충동)를 쏟아내는 장이 월드컵 기간에 마련되니까, 여성들도 (몸매에 대한) 시선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여러 스포츠 종목 가운데 축구가 미술과 가장 가깝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반이정 미술평론가

● 반이정 미술평론가

여러 스포츠 종목 가운데 축구가 미술과 가장 가깝다. 오랜 시간을 들여 특정 공간을 표현하는 게 미술이다. 축구의 시공간도 그것과 비슷하다. 다만 축구에서는 탁월한 개인의 순간이 너무 드물게 일어난다. 상대가 수비를 펼치면 탁월한 개인의 기량이 그냥 묻혀버리기도 한다. 오히려 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한다. 개인의 기예를 밀도 있게, 폭발적으로, 숨 막히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에도 그런 기예가 있지만, 드물게 나타난다. 굉장히 오랫동안 경기를 하다가 겨우 한두 골을 만든다. 높은 밀도의 카타르시스가 지속되는 미적 쾌감이 중요한데, 적어도 나에겐 오늘날의 축구가 그런 매력을 주진 못한다.


“계산되고 연출된 것이 아니라 라이브 중심의 현장성에 기초해 있다.”

● 김작가 음악평론가

김작가 음악평론가

김작가 음악평론가

축구 문화가 흥한 나라일수록 록음악이 발달돼 있다. 한국에서도 월드컵 시즌이 되면 발라드 가수나 아이돌 댄스그룹이 아니라 록밴드가 등장한다. 록과 축구는 대단히 비슷하다. 댄스그룹의 음악은 초 단위로 사전에 계획된다. 반면 록은 ‘몸의 음악’이다. 계산되고 연출된 것이 아니라 라이브 중심의 현장성, 예측 불가능성에 기초해 있다. 록은 곡만 정해져 있을 뿐 애드리브나 즉흥적 액션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 점에서 축구와 일치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유럽이 몰락하고 남미와 아시아가 약진하는 것도 이와 연관해 설명할 수 있다. 음악 세계에서 미국·유럽의 백인 음악은 몰락하고 있다. 록·댄스 등은 서구 백인의 장르지만,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뒤집으면서 혁신하는 것은 제3세계 출신 뮤지션이다. 축구 역시 유럽의 서구 문명이 만들어냈지만, 이제 전형적인 유럽 축구에서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고, 오히려 제3세계가 축구의 혁신을 이루고 있다.


“축구의 아름다움은 게임이 규칙을 초월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축구의 아름다움은 게임이 규칙과 물리학의 법칙을 초월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규칙을 그냥 무시하거나 깨는 것이 아니라, 규칙 안에서 그 규칙을 확장해간다. 날카로운 패스, 현란한 드리블 등을 보면서 사람들은 현실에서 결코 실현할 수 없는 ‘규칙의 초월성’에 대한 미적 쾌감을 느끼고 매료된다. 게다가 축구의 이런 초월성은 ‘내러티브’(이야기) 안에서 진행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등장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축구를 보는 관객은 골을 먹고, 만회하고, 다시 뒤집는 선수들이 펼치는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 몰입한다. 마라톤은 숭고한 스포츠지만 이봉주 선수에게 몰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차두리를 봐라. 그가 표상하는 어떤 자유분방함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된다. 박주영의 섬세함과 날렵함은 또 어떤가. 이를 미학적으로 수용자의 ‘감정 리얼리즘’이라고 한다. 축구의 초월성은 캐릭터와 내러티브를 만나 감정 리얼리즘을 극대화한다. 사람들은 패스·태클·슛 등의 과정에서 대단히 역동적으로 축구 선수들과 감정 교감을 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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