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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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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는 축구를 향하여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자신감과 경험으로 무장한 한국팀… 새로운 도전의 장이 열린다
등록 2010-06-24 22:54 수정 2020-05-03 04:26
6월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 리그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도중 만회골을 넣은 이청용 선수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REUTERS/ LEE JAEWON

6월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 리그 2차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도중 만회골을 넣은 이청용 선수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REUTERS/ LEE JAEWON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도 어느덧 8년 전 일이다. 뜻밖의 성공은 달콤했지만, 축제가 남긴 그림자는 길고 짙었다. 전세계의 찬사와 갖가지 혜택은 선수들을 구름 위로 밀어올렸고, 히딩크 감독이 떠난 뒤론 누구도 그들을 지상 위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히딩크의 자리를 대신한 코엘류 감독 체제는 연속된 부진 속에 서둘러 막을 내렸고, 뒤이어 자리잡은 네덜란드 감독 3인(본프레러·베어벡·아드보카트) 역시 이렇다 할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 쓸쓸히 한국 땅을 떠났다.

<font color="#00847C">2009년 20살 이하 월드컵, 희망의 시작</font>

그사이, 2002년의 유쾌한 기적은 자국 개최 대회에서 운 좋게 이룬 성과로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할 수 있다”고 자신하며 세계로 눈을 돌린 팬들의 기대감은 실제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지점 저 너머로 건너가버린 뒤였기에 실망과 좌절감은 이전보다 더욱 컸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이 소리 없이 지나갔고 한국은 이제 아시아 내에서도 정상을 자신할 수 없는 위치로 복귀하고 말았다.

하지만 기나긴 겨울에도 새싹은 돋았다. 2002년의 성공은 한파 속에도 꿈을 품었고 그 열매는 이제 서서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축구 변화의 첫 번째 키워드는 ‘자신감’이다. 이전과 달리 넘치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세대의 출현으로 기성세대의 벽을 단숨에 넘어선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 축구는 늘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있었다. 유럽과 남미 앞에 스스로 ‘한 수 접고’ 들어갔던 기성세대의 열패감은, 한국 축구가 큰 대회 때면 가진 기량도 다 발휘하지 못한 채 쓸쓸히 뒤돌아섰던 과거를 요약한다. 하지만 2002년은 새로운 세대가 내면의 패배 의식을 180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비록 안방에서 열린 대회였지만 이전까지는 절대 넘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유럽 팀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4강까지 오른 것이 자극제가 됐다.

조별 리그에서 꺾은 포르투갈과 16강·8강·4강에서 만난 이탈리아·스페인·독일은 모두 유럽 최고 수준의 팀들로, 우리가 월드컵에서 만나면 승리를 기대하지 않던 상대였다. 하지만 한국은 이들과의 정면 승부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고, 실시간으로 전파된 연전연승의 과정은 이전까지 우리를 옭아매던 열등감을 단숨에 벗겨냈다. 이제 ‘포스트 2002’ 세대는 이전 세대가 막연하게 갖고 있던 서구·남미 축구에 대한 패배의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공을 찰 수 있게 된 것이다.

2009년 20살 이하 월드컵의 성과는 이같은 전망이 구체화된 시발점으로 볼 만하다. 2002년의 주역인 홍명보 감독의 지휘 아래 모인 선수들은 패배의식에 젖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확신에 찬 플레이를 앞세워 상대와 당당히 맞섰다. 비록 8강에서 멈췄지만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매 경기를 ‘즐긴’ 신세대의 등장은 팬들의 박수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이전 세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신인류의 출현은 2002년 이후 짧지 않은 과도기를 거치며 일궈낸 세대교체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들이 앞장설 한국 축구는 이제까지 채워내지 못했던 세계 무대를 향한 허기를 점차 해소해줄 것이다.

<font color="#C21A8D">누가 박지성과 이청용을 예상했을까</font>

한국 축구의 긍정적 변화를 가능케 한 두 번째 키워드는 ‘경험’이다. 2002년 이전에도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 명맥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1980년대 유럽 최고 리그이던 독일 분데스리가를 호령한 차범근을 필두로 네덜란드의 허정무, 벨기에의 설기현, 이탈리아의 안정환 등이 유럽에 꾸준하게 한국 축구의 발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시작은 2002년 월드컵 이후다. 당시 본선 무대에서 맹활약한 송종국이 네덜란드 명문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데 이어, 이을용·이영표·박지성·김남일·이천수·이청용·기성용 등 많은 선수들이 시차를 두고 유럽 본토에 진출했다.

사실,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 무대는 ‘격차’를 의미했다. 비록 작은 리그의 작은 클럽이더라도 한국 선수들이 주전으로 뛰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의 자신감을 안고 유럽 무대에 진출한 선수들은 한국에서 갈고닦은 기량에 유럽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얹어 유럽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 선수들은 개인 기량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축구 문화와 각종 정보의 중심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됐다. 또한 매주 일상적으로 만나는 유럽 정상급 선수들과의 대결을 통해 세계 상위 클래스 축구와 한국 축구의 간격이 예상처럼 크지 않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이 개별적으로 획득한 경험은 한국 축구 전체로 골고루 퍼졌다.

물론 가장 큰 전환점은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일 것이다. 박지성의 입단은 우리 안에 잠재된 일종의 ‘금기’를 깨는 사건이었다. 한국 축구에 ‘맨유’로 상징되는 최상위 클럽은 미지의 영역이자 금단의 열매였다. 종종 스포츠신문이 한국 대표 선수의 유럽 명문 클럽 이적설을 보도할 때, 이를 비웃고 외면하는 것은 ‘그들’이 아닌 ‘우리’였던 게 그 징표 가운데 하나다. 겸손함 혹은 일종의 자괴감 속에서 우리 능력을 스스로 폄훼했던 것이다. 그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인 박지성은 모두를 비웃듯 엄청난 활약으로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몸소 입증해 보였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한국식’ 토양과 훈련이 만들어낸 박지성은 선진 축구의 경험을 한 계단 한 계단씩 쌓아올리며 마침내 정상권에 우뚝 섰다.

<font color="#008ABD">아르헨티나전에 실망할 필요 없다</font>

박지성의 경험이 깨뜨린 자괴감의 벽은 지난해 잉글랜드 볼턴 원더러스에 진출한 이청용으로 인해 또 한 번 부서졌다. 학원 축구를 거쳐 K리그에서 완성된 이청용은 선진 축구에서 뭔가를 배웠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빠른 적응 속도를 보이며 데뷔와 동시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안착했다. 이들의 경험은 한국 선수 모두가 유럽 축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제거하는 계기가 되었고, 누구나 한 발 더 내밀면 정상권에 다가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스와 아르헨티나, 그리고 나이지리아를 상대하는 대한민국 축구는 이전 월드컵과는 분명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16강 진출 여부나 상대 골문에 꽂아넣은 골 수보다 중요한 것은 매 경기 준비한 플레이를 유감없이 펼쳐냈다는 데 있다. 1-4로 대패한 아르헨티나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많은 골을 내주고 패했지만 몇 차례 공격을 통해 성장한 기량의 일면을 세계 앞에 펼쳐 보였다. 사실 모자란 게 많지만, 여전히 미래가 밝다는 점에서 전망은 긍정적이다. 2002년의 성공을 경험한 이들이 지도자의 길에 들어서고 그들이 국내외에서 쌓은 경험이 폭넓게 이 땅에 전파된다면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표는 훨씬 더 개선될 것이다. 이렇게 위아래에서 서로 밀고 끌어주는 과정에서 한국 축구는 더욱 무서운 존재로 상대에게 각인될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 전의 환희가 짧게 끝났다며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이제 우리는 그런 장면을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므로.

서형욱 문화방송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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