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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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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에 3억만 쏘세요

한국팀과 기업의 동일시를 노리고 수백억원을 쏟아붓는 월드컵 광고경쟁…
묶음광고 합치면 한국전 방송광고 15초에 3억원
등록 2010-07-02 15:28 수정 2020-05-03 04:26
현대차와 SK텔레콤, KT 등 월드컵 마케팅에 집중한 기업들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를 월드컵 기간 내내 선보였다. 광고업계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로 광고 효과를 높였다고 평가하지만, 지나친 ‘애국 마케팅’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SK텔레콤, KT, 현대차의 방송광고 화면(왼쪽부터 SK텔레콤·KT·현대차 제공).

현대차와 SK텔레콤, KT 등 월드컵 마케팅에 집중한 기업들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를 월드컵 기간 내내 선보였다. 광고업계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로 광고 효과를 높였다고 평가하지만, 지나친 ‘애국 마케팅’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SK텔레콤, KT, 현대차의 방송광고 화면(왼쪽부터 SK텔레콤·KT·현대차 제공).

‘한마디로’ ‘(앙드레김 목소리로) 어~엄 스마트~’.

한국이 지난 6월23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면 경기 뒤 처음으로 나올 뻔했던 SK텔레콤 광고다. 월드컵과는 전혀 관계없는 SK텔레콤의 세 가지 스마트폰을 알리는 내용이다. 이는 사실상 SK텔레콤이 몇 달간 진행한 ‘월드컵 마케팅’의 종지부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날 한국이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겨 16강에 오르면서 이 광고는 전파를 타지 못했다. 대신 박지성이 힘차게 그라운드를 내달리는 화면이 담긴 광고가 등장했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 ‘이제 8강을 향해’라는 자막과 함께 성우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꿈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제 더 큰 꿈을 향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라고 외쳤다. SK텔레콤의 월드컵 마케팅도 다시 한번 이어진 것이다.

16강 진출로 ‘죽은’ 광고들

뒤이어 나오는 광고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자동차도 ‘원정 첫 16강 진출’이라는 자막과 함께 성우가 ‘더 힘껏 외쳐라. 이제 시작인 것처럼. 우리는 샤우팅 코리아다’라고 소리치는 광고를 내보냈다. 김연아와 그룹 빅뱅이 출연하는 이 광고는 16강 진출 덕택에 선보일 수 있었다. 광고를 제작한 이노션의 한 관계자는 “만약 16강에 탈락했다면 ‘비록 우리가 졌지만 남은 월드컵을 축제로 즐기자’ 등의 내용을 담은 광고가 방영될 계획이었다”며 “앞으로 16강, 8강 혹은 그 뒤 탈락할 경우 비슷한 내용이 방영될 예정이고, 만약 우승한다면 이 광고는 영원히 전파를 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을 맞아 월드컵 마케팅에 집중한 기업들은 경기마다 두 종류의 광고를 준비했다. 이길 때와 질 때를 구분했다. 이같은 노력은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로 빛을 발했다고 광고업계는 평가한다. 또 대표적인 수혜자로는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차를 비롯해 SK텔레콤, KT, 삼성전자 등을 꼽는다.

월드컵 마케팅을 위해 기업들은 비싼 돈을 지불했다. 이번 월드컵을 독점 방송하는 SBS는 월드컵 조별 예선 그리스전과 아르헨티나전에 15초 동안 등장하는 광고를 9200만원에 팔았다. 더욱이 이 광고 시간을 사기 위해서는 4천만원짜리 다른 예선전 경기 광고도 여러개 해야 했다. 결국 한국전에 광고 15초를 노출하려면 3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했다. 16강전에서는 광고 단가가 오른데다 여전히 ‘묶음 판매’가 이뤄져 최소 2억원이 필요했다. 이 밖에 다른 방송사와 신문 광고, 마케팅 비용 등을 감안하면 기업들은 많게는 수백억원을 월드컵 광고에 지불했다.

물량: 현대차 > SK텔레콤

높은 비용에도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제품 홍보’를 위해 기업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특히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월드컵은 절호의 기회다. 한국팀과 기업이 ‘동일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현대차와 SK텔레콤, KT 등은 국가를 내세웠다. ‘샤우팅 코리아’를 내세운 현대차 광고는 단순하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샤우팅’을 ‘샤우팅’한다. 고함에 다른 나라 선수나 동물들은 모두 귀를 막는다. 특히 이번 월드컵을 맞아 현대차는 ‘월드컵 하면 현대차’를 떠올릴 수 있도록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광고업체 관계자는 “현대차가 SBS 광고에만 SK텔레콤의 3배 정도인 100억원가량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업체인 SK텔레콤과 KT도 크게 다르지 않다. SK텔레콤은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얘기한다. 4강 신화 재현을 꺼내든 것은 당시 ‘앰부시 마케팅’(Ambush Marketing)으로 톡톡히 홍보 효과를 누린 것을 재현해보겠다는 것과 같다. KT는 ‘황선홍 밴드’를 내세워 2002년의 ‘태극전사’를 다시 불러들였다. 이마가 깨져 피가 흐르고 붕대를 감은 모습으로 ‘대한민국이 이름을 불러주면 태극전사는 일어났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거리응원까지 직접 조직했다. 서울광장뿐만 아니라 한강시민공원, 경기 과천 서울경마공원 등에서 거리응원을 주도했다. 서울여대 주창윤 교수(언론영상학)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 스포츠가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기업들은 국가를 내세워 상업주의와 연결시킨다”고 말했다.

이 밖에 광고비는 더 비싸도 주목도가 높은 가상광고를 택한 곳도 있다. 지난 3월부터 등장한 가상광고는 기존 방송화면에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광고를 덧붙이는 것이다.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친 현대차·SK텔레콤과 함께 신한은행도 이를 이용했다. 현대차가 6월12일 그리스와의 후반전이 시작되기 직전 김연아를 등장시켜 내보낸 가상광고는 시청률이 40.7%에 달할 정도로 주목도가 높았다. 신한은행 역시 경기장을 배경으로 ‘주식, 채권, CMA 신한금융투자’라는 가상광고를 노출시켜 효과를 보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실속을 위해 제품을 앞세웠다. 3D TV를 사면 선수들과 현장에서 함께 뛰는 것처럼 느낄 수 있고, 그 감동을 안방에서 텔레비전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홍보했다. 특히 박지성·박주영·이청용 등 대표팀 간판 선수를 모델로 쓴 삼성전자는 이들이 예선전에서 득점을 함으로써 광고 효과를 배가했다. 덕분에 6월 들어서만 8천 대 이상의 3D TV를 팔았고, 이달 말까지 국내에서 3만 대 판매를 예상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4천여 대를 팔았고, 6월 판매량이 7천 대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일부 기업은 수개월 동안만 대형 모델을 써 월드컵 기간에 반짝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GS칼텍스, 질레트, 위스키 임페리얼, 롯데백화점 등은 박지성을, 홈플러스는 김연아를 채택해 월드컵 기간 홍보효과를 기대했다. KB금융그룹은 김연아와 가수 이승기를 등장시켜 월드컵 응원가인 를 듀엣으로 부르는 광고를 만들었다.

이같은 광고들이 16강 진출로 인해 더 큰 효과를 볼 것으로 광고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월드컵과 같은 국제 경기는 기업이 소비자와 하나가 돼 응원하면서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호감도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한국팀이 이기면 이길수록 월드컵 후원 광고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은 더 증폭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가 얼마나 올랐는지, 이것이 구매와 어떻게 연결됐는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경기장에 놓인 A보드가 TV 중계에 노출되면 광고비로 따졌을 때 수조원 대의 효과가 난다는 계량적인 측정은 가능하지만, 이미지 광고를 통한 브랜드 개선 효과나 구매와 직접 연결되는 효과는 증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 통신사 관계자 역시 “월드컵 때마다 대대적인 광고를 하지만 구매자가 그 마케팅으로 휴대전화 가입 회사를 옮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효과: SK텔레콤 > 현대차

다만 설문조사에서 그 효과가 간접적으로 증명된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직장인 635명을 대상으로 월드컵 마케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월드컵 하면 먼저 연상되는 기업으로 SK텔레콤(28.5%)이 가장 많이 꼽혔다. 현대자동차가 17.5%로 뒤를 이었고, 삼성전자(17.3%), KT(12.8%) 등의 순이었다. 주로 월드컵 마케팅에 적극적인 기업들이다. 이들의 월드컵 마케팅에 대해서는 ‘매우 효과적’(38.3%) 혹은 ‘다소 효과적’(40.6%) 등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지나친 ‘애국 마케팅’에 대한 비판도 있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스포츠과학)는 “국제 경기에서 게임을 즐기는 대신 이기는 것을 즐기고, 승리가 곧 국가의 승리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들이 이를 이용함으로써 실제 도덕성이나 사회적 책임 수행과는 무관하게 긍정적 이미지로 포장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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