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대학의 초청강의를 끝내고, ‘월드컵 투어’를 시작했다. 개막전부터 결승전까지 10여 개 경기를 부부젤라가 웅웅대는 경기장에서 직접 관람하기로 했다. 나머지 경기는 ‘거리 응원’을 통해 소화할 계획이었다. 지난 6월12일 한국-그리스전에서 애초 구상이 틀어졌다. 요하네스버그 도심의 ‘팬파크’는 남아공이 지정한 공식 거리 응원 장소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그날 오후, 팬파크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전날 열린 남아공 개막전 때 시설이 망가져 공사 중이라고 했다. 한국-그리스전은 오후 1시30분(현지시각)부터 시작하는데, 팬파크는 오후 3시에 개장할 것이라 했다. “도대체 어디서 경기를 보란 말이냐”는 항의에 주최 쪽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font color="#00847C">“독재국가를 어떻게 응원할 수 있어?”</font>
요하네스버그 시내에는 대중교통 수단이 거의 없다. 마피아 조직과도 같은 민영 택시회사들의 압력 때문에 버스 노선의 확장은 더디기만 하다. 시내 곳곳에서는 아직도 시뻘건 흙을 파내며 길을 닦고 있다. 월드컵 때문이라면, 정말이지 때늦은 공사다. 월드컵 주경기장인 사커시티로 향하는 인도에는 곳곳에 철근이 튀어나와 위험하고 또한 혼란스럽다. 사커시티의 여자 화장실은 개막전 전반전이 끝난 직후 대부분 고장나버렸다고 아내가 증언했다. 경기장 출입을 위한 경비 검문에는 무려 40분이 걸린다. 경비용역 업체가 파업에 들어가 경찰이 검문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 남아공에서도 한국은 널리 알려졌다. 시민들도 택시 운전사들도 “한국팀은 강하다”고 말했다. 한국인 응원단을 보면 먼저 “코리아”를 외치며 인사한다. 그들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기술력이 뛰어난 나라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이기도 하다.
북한은 사뭇 다르다. 북한이 월드컵에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를 상당수 남아공 사람들은 모른다. ‘코리아’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것은 알지만, 당연히 ‘사우스 코리아’만 남아공에 온 것으로 이해한다. 한국과 북한이 동반 출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왜 따로 참여하느냐”고 묻는다. 어떤 이는 영국이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로 구분해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알고 있다. 내가 북한을 응원하러 경기장에 간다고 하자, 남아공 친구는 고개를 내저었다. “도대체 독재국가를 어떻게 응원할 수 있어?”
남아공 사회학회에서 만난 어느 백인 학자의 질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북한 정부는 북한 축구팀을 지원하나요?” 왠지 기분이 상한 나는 비꼬아 말했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을 지원하지 않는 정부도 있나요?” 그 역시 지지 않았다.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가 어떻게 월드컵에 선수들을 보낼 수 있습니까?” 뭐라 답할까 고민하는데 곁에 있던 흑인 여성 학자가 곤혹을 덜어줬다. “도대체 그런 무지와 편견이 어디 있어요?”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에게 쏘아붙였다.
북한이 첫 경기를 치르기 전까지, 북한 대표팀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가장 만만한 농담과 냉소의 대상이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여러 잡지의 월드컵 특별판은 북한팀을 “감독 나이 미상. 정말 미스터리하고 엉뚱한 팀”이라는 우스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각종 동물을 선물했다는 에피소드도 ‘농담과 냉소’의 하나로 등장한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없다기보다 관심조차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font color="#C21A8D">월드컵 기념품에 북한 국기만 없어 </font>브라질과의 경기 전날, 남아공 공영방송 <sabc>에 나온 축구해설자들이 북한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번 월드컵에서 북한은 엔트리 23명에 골키퍼 2명만 포함시켰다. 3명의 골키퍼가 있어야 한다는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대해 북한은 “중앙공격수가 골키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 일을 화제로 올린 방송출연자들은 “북한은 국제 축구의 기본 규칙조차 모른다”며 웃었다.
1966년 월드컵 때도 북한의 처지는 비슷했다. 당시 북한의 월드컵 참가에 대해 영국 정부는 “골칫거리만을 안겨준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당시 영국 월드컵에서 북한 국가는 연주되지 않았다. 북한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북한의 ‘국가적 상징’을 발견하는 것은 희귀하다. 지난 6월15일 북한-브라질전이 열린 엘리스파크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여러 기념품을 파는 행상으로 가득 찼다. 여러 기념품 가운데 오직 북한 국기만 없었다. 단 하나의 북한 국기도, 북한 관련 기념품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상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간단하다. “한 명도 찾지 않거든요.” 또 다른 상인은 “구하고 싶지만 도저히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장 앞에 이르러 비로소 제법 큰 북한 국기를 흔들고 있는 백인을 만났다. 이곳에 오는 북한 사람들 때문에 국기를 흔들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예수’라고 쓰인 DVD를 나눠주고 있었다. 백인 선교사인 그는 북한 사람들을 만나 선교하려고 어렵게 북한 국기를 구한 것이다. 남아공의 한인 교회들도 북한 선교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북한팀 목도리를 맨 또 다른 백인 남자는 “북한이 ‘절대 약자’이기 때문에 응원한다”고 말했다. 목도리를 사겠다고 하자, “수집 가치가 있기 때문에” 나한테 넘겨주진 않겠단다.
엘리스파크 본부석 옆에는 100여 명의 북한 응원단이 있었다. 어느 여성은 골대 뒤쪽에 중국어로 ‘주체사상의 항전’이라 적힌 펼침막을 들고 인공기를 1시간30분 내내 흔들었다. 북한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손을 들어 박수를 치며 관중에게 인사하는 여유를 보여줬다. 정대세는 못내 아쉬운지 경기장에 주저앉아 주먹으로 땅을 몇 번 쳤다. 그는 북한의 월드컵 진출이 확정된 날에도 울면서 땅을 쳤고, 브라질에 진 뒤에도 땅을 쳤다.
<font color="#008ABD">‘축구의 시민권’을 얻다</font>
그날 저녁, 요하네스버그 최대 일간지 의 스포츠면 머리기사 헤드라인은 이랬다. “배짱 좋은 코리아는 브라질이 깨부수기에 너무 단단한 땅콩이었다.” 그들이 말한 ‘코리아’가 한국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음날, 요하네스버그 중산층 동네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탈리아계 2세인 웨이터는 북한의 경기력에 크게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브라질이 아주 어렵게 승리했지요.”
44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한 북한은 세계 최강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단 한 골만 넣었다. 그러나 그 한 골은 세계 축구의 냉소와 농담에 대한 북한팀의 당당한 대답이었다. 기아에 허덕이는 독재국가라는 이유로 축구팀까지 비난당하는 나라는 없다. 축구의 세계에서 이란도 리비아도 이스라엘도 그런 대접을 받지 않는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북한은 ‘축구의 시민권’을 얻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세계적 냉소와 농담의 대상이 되는 북한에 위안이 될 것이다.
요하네스버그(남아프리카공화국)=강재호 미국 뉴스쿨 교수·사회학</s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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