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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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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강] 지금 여기 유쾌한 혼란을!


제7회 인터뷰 특강 다섯 번째 강사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가 친구와 근거지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마”
등록 2010-04-15 11:38 수정 2020-05-03 04:26

한가한 사람은 이길 수밖에 없다. 왜? 바쁜 사람은 바쁘니까. 가난뱅이는 이길 수밖에 없다. 부자는 경쟁해야 하는데, 할 일 없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 뭐하는지 모르겠는 인간들은 함께할 수밖에 없으니까. 제7회 인터뷰 특강의 다섯 번째 강사는 ‘가난뱅이의 별’ 마쓰모토 하지메였다. 찌개를 끓이거나 꽁치를 구워 데모를 파티로 만들고, 구의원에 출마한 뒤 선거운동을 난장으로 만든 ‘스트리트 게릴라’다. 지금은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 고엔지에서 ‘나쁜 놈한테 돈이 안 돌아가게 하는’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운영하고 있다. 강연은 젊은 가난뱅이들이 유쾌하게 어울리는 자리였다.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회장은 백조 머리를 쓰고 나타났고, ‘지속가능한 청년모임’ 박희정씨는 청년들이 꾸려가는 모임을 정리한 전단을 나눠주었다. 마쓰모토는 강연을 통해 ‘혼란을 일으키는 매뉴얼’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마쓰모토 하지메는 ‘가난뱅이의 별’ 이다. 그는 한가하고 가난한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마쓰모토 하지메는 ‘가난뱅이의 별’ 이다. 그는 한가하고 가난한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마쓰모토 하지메(이하 마쓰모토): 이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제멋대로 상식을 만드는 것이다. 나의 목표는 혼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상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해야 한다. “이거 농담 아니거든. 진짜 싫거든”이라고.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혼란을 만드느냐고. “그냥 자유롭게 하면 돼”라고 대답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할지 난감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을 위한 매뉴얼을 마련해왔다.

먼저 가난뱅이는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친구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친구를 만든다. “부자 덤벼라, 이거 장난 아니거든”이라는 문구와 내 전화번호를 적은 전단을 길거리 한복판에 뿌린다. “이런 곳까지?” 싶은 곳까지 전단을 뿌린다. 자판기 음료 나오는 곳에도 넣고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책 사이에도 꽂는다. 그러면 전화가 많이 온다. “도대체 이게 뭐냐?”는 반응에서부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동감하는 사람까지 각양각색이다. 이 중 뜻이 맞는 사람과 술 한잔하며 친해진다. 한국의 지하철에서 친구를 만드는 ‘죽이는’ 영감을 얻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더라. 달리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안 들을 수 없다. 지하철 광고를 떼고 거기다 전단을 넣는 방법도 있다. 꼼짝할 수 없는 출근 시간이면 좋겠다. 역무원이 뻔히 보면서도 움직일 수 없어 어쩌지 못할 테니까.

두 번째, 근거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재활용 가게가 있는 고엔지는 연극·음악하는 친구들의 극장도 있고, 친구들끼리 하는 가게도 많다. 일본 시골 동네 샐러리맨 셋의 사례가 있다. 세 명이 피자집을 차리고는 매일같이 놀다가 장사도 그럭저럭 되어 회사를 그만두더라. 한국에도 서울 마포구의 타이 술집 ‘두리반’이라든지 아티스트가 모이는 문래동 등 재밌는 장소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한가하다. 자신의 일을 하느라 바쁜 사람은 네트워크를 형성할 여력이 없다. 가난뱅이와 부자의 싸움에서 한가한 가난뱅이가 이길 수밖에 없다. 여유 있고 한가한 사람끼리 모여서 같이 잘해보자.

청중1 : 가난뱅이 강의인데 왜 이렇게 비싼가.

사회 : 가난뱅이 신문사가 하는 거라 그렇다.

청중2 : 당신이 다닌 호세대학은 꽤 좋은 학교라고 알고 있는데, 취업할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나.

마쓰모토 :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도쿄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호세대학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입학하게 됐다. 대학 생활하면서 노숙 동호회 같은 네트워크에서 친구를 많이 만났다. 이 멋진 친구들이 한결같이 “취직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취직은 생각하지 않았다. 졸업할 때쯤에는 소란을 일으키는 유명인이 되어 있었는데, 학교 쪽이 수업을 안 들어간 과목의 학점도 다 챙겨줘서 ‘강제로’ 졸업할 수 있었다.

청중3 : 세탁기를 개인적으로 소유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그 밖에도 소유할 필요가 없는 물건에는 또 뭐가 있나.

마쓰모토 : 엄청나게 많다. 전자제품은 다 그렇다. 차도 그렇다. 솔직히 집도 그렇다. 가구도 옷도 그렇다. 뭐든지 공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청중4 : 길 가다가 학교를 땡땡이친 초딩들과 만났다. 그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마쓰모토 : 대단한데! 학교 같은 데는 안 가도 돼!

청중5 : 즐거운 혼란을 함께 즐기고 싶다. 그런데 혼란의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지 않나.

마쓰모토: 물론 여기저기서 사고가 일어나면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의 책임이다. 하지만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싸움 속에서 선이 만들어지고,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타협선이 정해진다. 이런 대립이 없으면 자치는 불가능하다. 미리 자기들만의 룰을 만들어 혼란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이다.

청중6: 등록금 투쟁, 이거 어떡하면 좋겠나.

마쓰모토: 모두 대학을 그만두는 것이다. 그만두되 학교를 매일 간다. 그러면 대학은 수입이 없어 곤란해진다.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간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도 있다.

마쓰모토는 강연 뒤 일을 꾸몄다. 자신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눈 게 억울해서다. 다음날 인터뷰 특강 장소인 서강대 곤자가컨벤션 앞에서 꽁치를 구웠다. 고소한 꽁치 냄새가 교정을 떠다녔고, 100여 명의 가난뱅이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모여들었다. 경비의 제지도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꽁치는 (먹은 사람 말에 따르면) “정말 맛있었는데 소금이 조금 부족했다”. 모임을 알리는, 도움을 받아 한국어로 꾹꾹 눌러쓴 전단은 이랬다. “지금 서울 대혼란! 가난뱅이 다 모여! 돈 내놔! 김치 내놔! 막걸리 내놔! 거리를 걸어봐도 대학 캠퍼스를 걸어봐도 어디를 가도 답답해 죽겠어. 우린 즐길 거야! 축제다! 지금 바로 전화 주세요. 010-○○○-○○○○, 마쓰모토 하지메 저녁 9시30분 곤자가컨벤션 앞으로.” 술판은 밤 12시를 넘겨 이어졌고, 20여 명은 자리를 옮긴 술집에서 새벽을 보고야 말았다, 한다.

정유진 19기 독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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