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권OTL] 기륭에서 보낸 한철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거리의 시인’으로 투쟁에 함께 나선 송경동씨, 시보다 더 시 같았던 날들의 기록

▣ 송경동 시인

[인권 OTL 30개의 시선 17]

여름이다. 이제 막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 초봄에 시작했으니 벌써 5개월여다. 그간 하루도 쉴 틈이 없었다.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투쟁에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것은 뉴코아·이랜드 투쟁 300일 집회 때였다. 어쩌다 보니 ‘거리의 시인’이 되었다. 그게 나의 운명이라고 흔쾌히 쫓아다녔다. 그러면서 쓴 시는 거의 대부분이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추도시였다. 레미콘에 깔려 죽은 김태환 열사, 울산 형산강 로터리에서 대낮에 공권력에 뒤통수를 얻어맞아 죽어간 하중근 열사,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또 그렇게 맞아 죽은 전농의 전용철·홍덕표 열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유서를 남기고 분신해 간 허세욱 열사, 인천 비정규직 전기원노동자 정해진 열사, 첫 비정규직 열사였던 이용석 열사 등등 억울하게 죽어간 분들의 원혼을 달래는 시였다. 시 낭송이 끝나고 난 뒤에는 늘 며칠씩 홍역을 앓았다. 죽은 이의 넋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폭음이거나 나도 이해 못할 기행이거나 살풀이가 한 번씩 있어야 했다.

죽음 앞에 창백한 지식인을 벗다

두 번째로는 문학 장르에 포함돼 있지 않은 천덕꾸러기 투쟁시였다. 투쟁시라니, 이런 세상에서? 하지만 나는 썼다. 자본과 노동이 격돌하는 현장에서, 차별과 차이가 대결하는 현장에서, 평화와 공권력이 맞부딪치는 거리에서, 어디에서건 부르면 가장 편파적이고 가장 당파적인 시를 써서 들고 가 노골적으로 약자를, 탄압받는 자들을 옹호하고 고무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때로는 연행도 되고, 머리가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어떤 시보다 내 머리에서 흐르는 그 피 한 방울이 더 시답다고 생각했다. 870만 비정규직 인생들이 아메바처럼 흐물거리며 살아야 하는 이 사회에서, 내 시가 왜 더 붉어지지 않는지, 날카로워지지 않는지를 고민했다. 왜 나의 실천이 거리에서 멀어져 있는지를 반성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열심히 했다는 마음보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늘 이렇게 글로만 쓰고 읽고 말 것인가? 왜 몸을 그곳으로 더 깊숙이 들이밀지 못하는지, 어느새 창백한 지식인의 형상을 띠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마침 서울 구로동에 있는 기륭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이 투쟁 1천 일을 맞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불법 파견으로 한 달에 64만1850원을 받던 노동자들이다. 3개월 계약, 6개월 계약으로 가슴 졸이던 이들이었다. 그 1천 일은 기륭 비정규 여성노동자들만의 1천 일이 아니었다.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악몽과 같은 1천 일이었다. 설움의 1천 일이었다. 그 1천 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륭여성비정규직 1000일 투쟁 기획단’에 함께했다.

비가 많이 왔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들이 지나가고, 길가에 핀 봄꽃들이, 여름꽃들이 불쑥 인사를 건네고 지나가는 날들이 있었다. 회사 쪽은 그들이 이젠 착한 근로자들이 아니라 ‘투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고용을 해줄 수 없다고 한다. 그 위험한 ‘투사’들과 함께 거리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함께 웃고 웃으며 봄 한철과 여름 한철을 꼬박 보내고 있다. 그들을 닮아 이젠 나도 시시때때로 눈물주머니가 터진다. 동지들이 서울시청 앞 조명탑에서 내려와 다시 구로역 30m 철탑을 오를 때, 무기한 단식을 선포하고 철조망을 넘어 공장 옥상으로 올라갈 때, 40일이 넘은 단식장에서 끊겨버린 교섭 상황에 먹먹해 모두가 눈물방울을 찍을 때, 단식 50일이 되던 날 빗속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관을 옥상으로 올릴 때, 60일이 지나 소금과 효소마저 끊겠다는 호소문을 내려보내곤 눈시울이 붉어진 김소연 분회장을 볼 때 나도 따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렇게 울면서 싸워왔건만 아직도 기륭 여성 비정규직들의 사회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언론·보건·문화예술·법조·교육·종교계를 넘어 이젠 2008년 광화문 촛불투쟁의 주역인 네티즌들까지 기륭으로 오고 있다. 광화문 촛불과 비정규직 운동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다. 모두 새로운 경험들이다. 이 투쟁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무엇을 얻게 될지 아직은 모른다.

네티즌의 촛불까지 모인 새로운 경험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거리의 역사, 민주주의 역사를 구로동의 작은 공장 기륭에서 쓰고 싶다. 새로운 만남들을 기록하고 싶다. 1987년 7~9월과 같은 노동자 대투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드는 작은 불꽃이 되고 싶다. 870만 비정규 세상을 철폐해나가는 순정한 마음들이, 평화로운 마음들이 되고 싶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