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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OTL] 아이가 굶는다, 당장 무엇이 필요한가

등록 2008-08-01 00:00 수정 2020-05-03 04:25

원진 레이온 노동자와 연대하던 대학생에서 ‘기아 퇴치’ 활동가 김여진으로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인권OTL-30개의 시선 ⑭]

정순왕후의 세 번째 수업은 진행되지 못했다. 7월22일은 원래 드라마 에서 정순왕후로 나왔던 김여진씨가 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시아의 기근과 북한의 굶주림에 대한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금강산 피격 사건이 터져서 수업은 미뤄졌다. 김씨는 이미 서울 봉은초등학교, 성미산학교에서 ‘공감’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날 김씨와 만난 긴급구호단체 JTS 활동가 오태양씨가 한 뭉치의 글을 전했다. 김씨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제출한 소감문이다. 김씨는 “제가 김여진을 주인공으로 한 미완성 소설을 읽어주고 아이들에게 완성해보라고 한다”며 “아이들이 미완성 소설을 이어 쓰면서 스스로 북녘 친구들의 굶주림에 공감하지 않을까”라고 희망했다.

단식 중인 법륜스님 보며 ‘떼메일’ 호소

수업의 서두에 그가 먼저 묻는다. “북한하면 무엇이 생각나니?” 아이들은 답한다. “핵이요! 빨갱이요!” 그리고 또다시 묻는다. “어떤 아이들이 가장 밉니?” “고자질하는 아이요. 잘난 척하는 아이요. 싸가지 없는 아이요.” 마지막 질문은 “그런데 잘난 척하고 고자질하는 친구가 일주일째 밥을 굶는다면 어떻게 할래?” 아이들은 갑자기 숙연해지면서 “먹을 것을 준다”고 답한다. 그러면 그는 “네가 방금 봤던 동영상의 굶주리는 북한 아이가 핵을 알까?”라고 인지상정에 호소한다.

그는 교실에서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동포를 돕자고 호소한다. 지난해부터 JTS 거리모금 캠페인에 참여해 이제는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횟수가 많아졌다. 선뜻 도와주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다가가면 외면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기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북한을 돕느냐’ ‘내가 더 불쌍해’ 하면서 외면하는 분들이 있어요. 처음엔 당황스럽고 민망했지만 이제는 눈을 딱 맞추고 ‘근데요’ 하면서 오히려 대화를 더 하려고 애써요.” 돈에 앞서 인식을 바꾸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뜻 내는 1만원도 소중하지만, 어렵게 설득해 모금한 1천원은 더욱 소중하다.

지난해 JTS에서 여는 명상수련 프로그램에 다녀오며 기아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당시에도 북녘 동포의 굶주림을 생각하며 단식 중이던 법륜 스님을 보면서 절절함이 마음에 닿았다. 집으로 돌아와 다급한 마음에 평생 처음 ‘떼메일’을 돌렸다. “북한 동포를 돕자고 무조건 그랬죠. 남들한테 부탁도 잘 못하고 거리를 좁히기도 어려워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누군가 욕하면 어쩌나, 이런 마음도 없었어요. 너무 절실하니까 그냥 보내게 되던데요.” 다행히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의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오랜 침묵이 깨졌다. 1990년대 초·중반 원진 레이온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청량리 철거민과 이웃하던 대학생 김여진이 아니었던가. 그는 “예전엔 무엇이 옳은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종교를 초월해 거리에 나선 이들

마침내 30대 중반의 김여진에게 꿈이 생겼다. 좀처럼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던 그는 “기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덧붙이길 “북한 아니, 요 근방 아시아라도”. 전이라면 까마득한 일이라 생각했을 것을 요즘엔 한번 해보자고 꿈꾼다. 그렇게 북녘 동포를 돕는 일은 결국엔 자신을 돕는 일이 됐다. 조금은 더 마음의 평화도 얻었으니. 참, 김여진·한고은·배종옥씨는 법륜 스님이 이끄는 JTS와 함께 북한을 돕지만 불교신자는 아니다. 오히려 김씨는 “종교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말하자면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이고, 배씨는 “무슨 일이 생기면 부처님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찾고”, 한씨도 “우리의 성금이 아이들에게 전해지길 주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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