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인터뷰 특강-자존심] 평등해질수록 경제는 발전한다

등록 2007-04-06 00:00 수정 2020-05-03 04:24

하종강·안와르 후세인과 함께한 ‘이주노동자와 노동의 자존심’-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사회에 유익

제4회 인터뷰 특강- 자존심 ④

▣ 글 이윤주 12·13기 독자편집위원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필자가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본’ 영화다. 크게 기대하고 본 영화는 꼭 그만큼의 실망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경험으로 보아, 영화는 애초 예상보다 큰 여운이 남을 때, 감동적으로 기억된다. 이번 강연도 담담하게 들어보리라 마음먹었다. 강연자 하종강씨의 말처럼 “노동을 ‘내 문제’가 아닌 교양의 부분”으로 생각하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필자 역시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성 이주노동자의 12%가 성폭행을 당해

사회자 서해성씨는 한국의 뼈아픈 ‘이주’ 역사로 이야기를 열었다. ‘이주’ 역사는 ‘한국 이주노동자’의 역사이다. 외국으로 진출한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그는 “두 분 얼굴이 잘생겨서 노동자의 자존심을 세웠다”는 말로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안와르 후세인 전 이주노동자노동조합위원장을 소개했다.

서해성: 2월1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하종강: 상급법원으로 갈수록 보수적 판결이 내려진다. 고등법원의 판결은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하는 방향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노동자로서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이 세계사적 흐름이다.

서해성: 한국에서 현재 노동을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범주가 어디까지인가.

후세인: 전체 이주민은 80만 명이고, 그중에서 노동자는 40만 명이다. (국제결혼을 포함한) 나머지 40만 명은 아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앰네스티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전체 노동자 중 30%는 이주노동자다. 여성 이주노동자 중에서 12%가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 이 중에 15%는 임신이 된다.

사회자는 “후세인씨는 인간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것들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며 그에게 강연을 부탁했다. 후세인은 상기된 얼굴로 “말이 많이 부족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말해 방청객의 웃음을 이끌었다.

지난 2월11일 여수 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9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1명은 병원에서 사망했다. 18명은 크게 다쳤다. 2005년 4월24일 한국에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정부는 불법 체류자들의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초대 위원장인 나는 구속됐다. 두 사건은 이주노동자가 한국 땅에서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똑똑하게 보여준다.

전태일이 요구하던 그대로…

한국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온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정부는 91년에 투자법인 연수생 제도를 만들었다. 인도에서 노동자가 한국에 오면, 인도에서 받는 임금과 똑같은 금액을 받는 제도다. 94년에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산업기술연수제도를 시행했다. 두 제도에서 이주노동자는 연수생의 신분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98년에 산업연수제도를 취업연수제도로 전환했다. 2년 연수를 하고 1년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산업기술연수제도와 똑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기업주들이 여권과 통장을 압류하고 이탈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강제로 예금에 들게 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2003년 고용허가제가 통과됐다. 진보한 제도 같지만 이주노동자의 노동이 아니라 사용자의 고용을 허가한 법안이다. 이 제도는 임금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장 이동을 금지한다. 또 이주노동자 자녀는 한국에서 태어나더라도 30일 이내에 본국에 송환돼야 한다. 가족 초청이 금지돼 있다. 2003년 7월31일 법안이 통과되고 2004년 8월17일 시행되면서 합동 단속이 시작됐다. 그 이전인 2003년 11월 이주노동자 200명이 농성투쟁을 시작했다. 이주노동자 문제가 사회에 부각된 것도 이때쯤이다. 명동성당 농성을 380일 동안 진행했다. 2004년 11월28일 농성을 풀면서 2005년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설립했다.
1988년부터 시작됐으니 올해로 19년 됐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전태일이 요구했던 사항 그대로 21세기 이주노동자가 요구하고 있다. 보호소에서는 감시카메라가 24시간 작동하고, 조그만 방에 12~13명이 지낸다. 옷도 하나밖에 없다. 언어가 달라 자기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음식도 부족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체불 임금이다. 임금을 못 받으니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업자가 임금을 주지 않아도 한국 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고 본국 송환만 추진한다. 피부와 언어가 다르지만 똑같은 인간이고, 모든 노동자들은 원하는 것도 똑같다. 국적을 떠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앞으로 많은 관심을 보여주면 좋겠다. 연대를 부탁드린다.

이어 강연을 맡은 하종강씨는 범주를 넓혀 한국 사회 노동의 문제에 관해 설명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 노인, 장애인들의 권리에 대해 우리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선 어떤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노동은 ‘내 문제’가 아니라 교양의 문제, 지식의 문제다. 심지어 노동자조차 노동 문제를 교양이라 생각하는 이상한 사회다.
에 원숭이의 평등 개념에 관한 실험을 다룬 논문이 있다. 양쪽에 원숭이들이 있고 투명한 막이 쳐 있다. 서로 보이지만, 이동은 못한다. 한쪽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2개씩 주고, 다른 한쪽 원숭이들에게는 1개씩 준다. 먹이를 1개씩 받은 쪽의 소수는 자기 먹이를 내동댕이치면서 불평등에 저항한다. 학습 이전에 불평등에 저항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틀렸다

이런 것들을 경제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한 통계를 봐도, 한국에서는 투자, 수출을 기준으로 창출되는 부가가치보다 소비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더 크다. 기업이 얼마나 수출하느냐보다 노동자가 얼마나 소비하느냐가 경제에 더 크게 작용한다. 노동자 임금이 증가하면 경제에 유익한 측면이, 기업의 인건비를 가중시켜 경쟁력을 낮추는 해로움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영화 에서 보듯, 사회 공동체를 위한 행동은 개인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것이 수학적으로 증명된다.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틀렸다. 유리한 존재와 불리한 존재 간의 갈등에서 평등해질수록 유익해진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전체가 고민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적인 영향에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에 유익하다.

이어진 청중과의 대화에서 노동 문제에 관한 심도 깊은 질문이 쏟아졌다.

청중1: 노동 문제의 담론화를 위해서 노동계에서 설정한 로드맵은 있나.

하종강: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담론화 로드맵은 없다. 여러 방면에서 노력이 필요한데, 언론·교육자 등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제도권 교육 내에서 충분히 교육돼야 한다. 독일의 경우 초등학교 정규 수업 과정부터 1년 동안 6번의 모의 노사교섭을 진행한다. 중등 사회 교과서 340쪽 중에 93쪽이 노동 문제다. 프랑스 고등학교 사회법률 과목에는 단체교섭의 전략·전술이 들어 있다.

청중2: 구속 당시 방글라데시 정부의 반응과 대처는 어떠했나?

후세인: 방글라데시 정부 역시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다. 여권 기간 연장을 보류시키면서 본국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국적에 관계없이 노동자 간 사회 연대가 필요하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