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칸의 도살자’로 악명을 떨친 라트코 믈라디치가 옥중 사망한 후인 2026년 9월2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 그를 추모하는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AP 연합뉴스
1990년대 중반 라도반 카라지치와 함께 ‘발칸의 도살자’로 악명을 떨친 라트코 믈라디치가 2026년 8월27일 옥중에서 사망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이 일제히 전했다. 향년 84.
1942년 3월 나치의 괴뢰정권이 들어선 옛 크로아티아의 보자노비치에서 태어난 믈라디치는 20대 초반 일찌감치 군문에 들어섰다. 그는 군사학교를 졸업한 1965년 9월 유고슬라비아 연방군 장교로 임관해 1992년 유고 연방이 해체될 때까지 복무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한 직후인 1992년 5월 그는 수하들과 함께 향후 4년 가까이 이어지며 민간인 54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갈 ‘사라예보 봉쇄 작전’의 첫발을 뗐다. 내전의 불길이 발칸반도 전역으로 번지던 때다.
그 무렵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정치인들은 스릅스카공화국 군대를 창설하고, 믈라디치를 총사령관에 앉혔다. 참혹한 전쟁범죄의 서막이 열렸다. 갖은 악행을 일삼던 믈라디치가 이끈 세르비아계 병력은 내전이 막바지로 다가서던 1995년 7월 유엔이 ‘안전지대’로 지정한 도시 스레브레니차를 장악했다. 곧장 피란민 4만여 명이 추방됐고, 믈라디치의 명령에 따라 무슬림을 중심으로 8300여 명이 집단 살해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설립된 ‘옛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는 믈라디치를 △집단살해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등 11가지 혐의로 1995년 궐석 기소했다. 퇴역 뒤 연금생활자로 살아가던 믈라디치는 2011년 5월 체포돼 재판소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추방됐다. 재판소는 2017년 11월 믈라디치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해 종신형을 선고했다. 2021년 6월 항소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됐다. 믈라디치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후회도, 반성도 하지 않았다. 일부는 그를 추모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예능 방송인 조나단이 만든 ‘KBS’…‘대한흑인협회’ 화제 만발
![[단독] 이 대통령, ‘연임 불출마 선언’ 요구에 “도둑질 안 한다 굳이 말해야 하나” [단독] 이 대통령, ‘연임 불출마 선언’ 요구에 “도둑질 안 한다 굳이 말해야 하나”](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904/53_17885278631452_20260904502610.jpg)
[단독] 이 대통령, ‘연임 불출마 선언’ 요구에 “도둑질 안 한다 굳이 말해야 하나”

네팔 터널서 중국인 1명 또 구조…‘연락두절’ 한국인 9명 근무지

6일 청명한 초가을 날씨, 나들이 딱!…큰 일교차는 주의를

국방 강신철 후보자 11억원 재산 신고…장남 육군 장교 전역

박철언 처남 “노태우 300억·박 전 의원 800억, 비자금들 뿌리 같아”

이란 “미군, 이란 유조선 공격”…원유 수출 하르그섬 인근 폭발음

민주, ‘김승원 녹취 공개’ 한동훈에 “수사비밀 누설 판단돼” 역공

“인사라인이 김현지잖아” 핫 마이크 생중계…‘김현지 실세설’ 재점화

“경찰이 수갑 채우고 목 눌러 제압”…방송의 날, 과잉 진압·체포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