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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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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천국에서 책 천만권을 팔기로 했다

온몸으로 춤추며 “책 보세요” 외치는 남자… 도서담 김도형 대표의 플레이리스트
등록 2025-12-05 19:25 수정 2025-12-11 16:38
김도형 제공

김도형 제공


 

15초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숏폼 제국에서 뇌를 풀가동해야 읽을 수 있는 300쪽짜리 책을 팔겠다고 춤추는 20대가 있다. 도서담 김도형 대표다.

도파민 위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알고리즘에 맞서 “제발 책을 읽어보세요!”라고 외치는 그의 인스타그램 릴스는 처절해서 스크롤을 멈추게 한다. 그 틈을 타서 사유의 공간을 여는 카드뉴스 ‘글’을 해독제처럼 밀어넣는다. ‘트로이 목마’에 책을 숨겨 숨 가쁜 SNS 세상 한가운데로 기꺼이 뛰어든 김도형 대표를 만났다.

—외교관을 준비하다 출판을 한다고요.

“어릴 적 꿈은 문인이었어요. 전공이 국문학이었는데 ‘글만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에 도망가듯 외무고시를 선택했어요. 고시 공부 1년 만에 찾아온 건 합격 통지서가 아닌 우울증이었습니다. 그때 무너져가던 저를 일으켜 세운 건 제 곁을 지키던 책들이었어요. 돌이켜보니 책은 저한테 친구였고, 부모였고, 스승이었죠. 돈을 잘 못 벌어도 이걸 하면 행복하겠다 싶어 ‘먹물의 삶’을 택했습니다.”

—마트 계산대에서 책을 팔고, 릴스에서 춤도 춥니다.

“점잖게 해서는 승산이 없으니까요. 신생 1인 출판사에 누가 선뜻 원고를 주겠어요. 원고를 더 잘 팔기 위해 충남 천안에 있는 한 마트 계산대 앞을 지켰어요. 독자가 식당 사장님들이었거든요. 고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죠.

릴스에서 춤추는 것도 책을 팔기 위해 제 얼굴을 간판으로 건 겁니다. 책은 광고비를 펑펑 태울 수가 없어요. 어제 산 책을 오늘 또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모델료 0원인 대표가 나가서 관절이라도 꺾어보는 게 가장 저렴한 마케팅인 셈입니다. 물론 제가 박정민 배우 같은 출판사 대표라면 춤까지 출 필요는 없었겠죠.(웃음)”

—한때는 투자받고 ‘스타트업’ 방식으로 출판업계를 뒤집겠다 했더라고요.

“맞아요.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페이지’(PAYGE)를 만들었죠. 책의 저작권(IP)을 주식처럼 쪼개서 사고파는 ‘조각 투자’ 모델이었어요. 그렇게 65만 명 가까운 사용자를 모았고, 투자도 받았습니다. 근데 ‘스타트업은 이래야 해'라는 강박에 갇혀 정작 나다운 방식을 잃어가더라고요. 오히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볼펜으로 투박하게 메모하며 직관으로 밀어붙였던 창업 첫해에 책을 더 잘 팔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출판의 본질로 돌아가려 합니다. 결국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을 팔아야죠.”

—다들 사양산업이라는 출판업계를 고집할 이유가 있나요? 지금의 실행력이면 다른 상품도 잘 팔 것 같은데요.

“1만원짜리 접시 1천만 개를 파는 것과 책 1천만 권을 파는 것을 비교하면 마진은 접시가 더 높을 거예요. 그럼에도 책에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잖아요. 책이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는 ‘문'을 열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산업은 여전히 국내 기준 4조원 이상의 거대한 시장입니다. 제 목표는 시대정신을 담은 1천만 권의 책을 파는 것. 남들은 그 바다가 좁다고 떠나지만, 저는 춤을 춰서라도 끝내 독자와 연결될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제목에 끌려 책 한 권을 샀다. 김 대표의 표현대로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는 입장권을 산 셈이다. 당장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진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은 그 자리에서 기다려준다. 2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것 중, 유통기한 없이 기다려주는 건 아마 책밖에 없을 것이다.

 

김수진 컬처디렉터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김도형(@kimdohyungg)의 플레이리스트

① Every

기술과 철학의 경계에서 지금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미디어. 빠른 뉴스보다 ‘생각의 깊이’를 선물해준다.

 

② 셰프 안성재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털어놓는 진짜 이야기. 장인의 내공과 삶의 철학을 자연스럽게 듣게 된다.

 

③ 인생84

압도적 재미 속에 의외로 옹골찬 깨달음이 숨어 있다. 웃다가도 삶의 본질을 툭 건드리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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