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025년 9월21일 대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전문가인 사이토 다마키는 일단의 일본 고등학생들을 만나 인터뷰한 뒤 그들의 의사소통에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말은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강도’(세기)를 공유하며 강한 연대를 결성하고 유지한다는 것이다. 상대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강도를 공유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동료 자격’ 유무를 판단할 수 있다. 사이토는 그의 책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분석’에서 “의미나 감성으로 연대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이런 소통은 소통이라기보다는 서로 공감하기 위한 의식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도를 전달하는 발신’(일본어 원문에서는 ‘강도적 발신’으로 표현함)을 하는 역량이다.
의사소통 변화에 대한 사이토의 진단은 극우를 중심으로 정치가 극단화된 포퓰리즘 시대에 의사소통 변화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해 보인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의 언어 역시 의미와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강도를 전달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는 대중과 공명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대중이 기존 엘리트와 정치인을 ‘재수 없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자신들이 쓰는 언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포퓰리스트는 정치적 적합성과 상관없이 대중이 즐거워하는 ‘강도 높은’ 언어를 그대로 쓴다.
남자 청소년과 청년들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에게 호의적인 이유 중 하나도 그가 사용하는 말 때문이다. 한 청소년은 이렇게 말했다. “이준석은 우리가 쓰는 말로 이야기하잖아요.” 그들이 사용하는 은어와 킬킬거리는 언어는 이준석을 통해 ‘정치적 언어’로 격상됐다. 이런 점에서 이준석은 그들에게 진정한 ‘대표자’다. 자신들의 언어로 공론장에서 자신들의 이익이나 감정을 대변(representation)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말 자체를 대표(representation)한다. 그들이 이준석과 공유하는 것은 이익이 아니라 말로 지어지고 드러나는 ‘세계관’이다.
이 말의 특징은 의미나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도’에 있다. 지난 대선 말미에 물의를 일으켰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가 사용한 단어는 혐오감과 끔찍함의 강도가 매우 센 말이었다. 그 자신이야 이재명 대통령 아들의 행동을 부각하기 위해 그대로 썼다지만, 그것은 의미와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듣는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의도된 말이었다. 물론 공론장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비판을 강하게 받고 도리어 표를 까먹었지만, 이 말을 할지 말지를 두고 회의했을 때 개혁신당의 젊은 당직자들은 ‘하자’고 강하게 밀었다고 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장외와 장내를 가리지 않고 웅변하듯 말할 때 짓는 표정이다. 비장하고 격렬하다. 말의 내용보다 그 표정이 드러내는 감정의 ‘강도’가 그가 누구인지를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강력하게 주변에 모여들며 ‘극렬 지지자’가 된다. 장동혁은 사이토가 말한 것처럼 지지자들에게 ‘강도를 전달하는 발신’을 하는 데 능숙하고 이를 통해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소통이라기보다는 의식에 가깝다.
지지층과의 연대라는 측면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의 말 역시 다르지 않다. 강도를 공유하며 내가 당신들의 동료로서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말이나 감정의 강도가 다르면 결코 동료가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모든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지지자와의 ‘갈등’이다. 동료, 즉 열성 지지자들과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관계의 차단과 단절을 의미하며 관계가 한번 차단되고 단절되면 대부분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2025년 9월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추미애 법사위원장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등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감정의 강도를 공유하며 연대를 형성하고 그를 통해 동료 자격이 증명된다’는 것은 극단적 포퓰리즘 시대에 왜 혐오와 증오가 주된 정치 언어가 되는지를 설명해준다. 감정사회학자인 에바 일루즈는 그의 신작 ‘포퓰리즘의 감정’에서 포퓰리즘 정치의 중요한 감정으로 두려움, 혐오, 증오 그리고 사랑을 꼽는다. 그는 한겨레신문사가 여는 ‘아시아미래포럼’(2025년 10월23일 예정) 기조연설자로 방한을 앞두고 필자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치 무대에서 사용되는 감정들은 압도적인 것, 즉 강도가 높은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두려움과 혐오, 증오야말로 그에 가장 적합한 감정이다. 순식간에 촉발되며, 쉽게 전염되고 강화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극우 발흥의 기반이 되는 감정이 이주민에 대한 공포와 혐오, 그리고 증오라는 사실도 이를 나타낸다. 두려움의 기초가 되는 것은 주로 안전에 대한 위협감이다. 원래 ‘낯선’ 존재는 두려운 법이다.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문화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다만 이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따져볼 때 대처할 수 있다.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으면 이방인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문을 열어주는 ‘스승’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대중이 두려움의 실체를 직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증폭하고 확장한다. 김은혜 국민의힘 원내정책수석부대표가 “민주당이 지방선거 때 중국어로 선거운동을 하는 이유”를 “외국 국적이라도 영주권을 얻고 3년 지나면 우리나라에 거주하지 않아도 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 예다.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고라도 지방선거는 재외투표소가 없다.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 자가 한국 바깥에서 투표할 방법이 없다.
‘정책’을 담당하면서도 기본적인 내용을 확인하지 않는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일루즈는 앞의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의견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걱정과 불안에 맞춘 서사로 변형”시킨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서사’는 사실일 필요가 없고, 사실에 근거할 필요도 없으며 단지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게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두려움이나 혐오, 증오 같은 감정은 이런 “서사를 통해 이해하게 된 사회에 대한 반응”이라고 일루즈는 말한다.
혐오와 증오는 격렬한 사랑으로 정당화된다. 혐오를 혐오로만 정당화하는 쪽은 존재하지 않는다. 혐오는 그것이 사랑을 위한 혐오일 때 정당화된다. 이주민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는 내가 속한 위대한 국가와 문화/정신에 대한 숭고한 사랑일 때 합리화되고 정당화된다. 최근 스스로를 우파라고 정체화하는 청년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우리가 애국하는 게, 그것이 극우라면 우리가 극우입니다”라고 표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극우’라는 말이 혐오와 동일시됐다면, 그것을 ‘사랑’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포퓰리즘 정치 언어의 진화 과정으로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아니야, 너넨 그저 혐오세력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거의 아무런 타격감이 없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의 진화를 통해 자신들의 혐오에는 정당성이 있고, 그 정당성의 뿌리가 ‘사랑’이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반문한다. 너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말이다. 좀더 똑똑하다면 “너희는 혐오 없이 사랑하냐?”고 반문할 것이다. 또한 사랑이 얼마나 격렬한지를 토대로 동료를 감별한다는 비난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즉, 민주당 쪽에서 번번이 나오는 ‘수박’ 감별) 아니냐는 냉소가 덤으로 따라올 테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혐오’뿐만이 아니라 극우의 ‘사랑’에 대해 진지해져야 한다. 그 사랑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며 세계를 ‘붕괴’시키는지를 분명히 말하고 경고해야 한다. 이미 아돌프 히틀러를 통해 파괴적으로 드러난 것처럼, 저 사랑은 자신(=국가 혹은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 세계를 붕괴시키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자민족국가 중심주의는 세계가 붕괴하더라도 우리만 살아나면 된다는 사상이다. 세계를 향해 크게 울타리를 치는 대민족주의/국가주의를 표방하고 이것이 필연적으로 이웃과의 전쟁을 일으키며 세계를 붕괴시킨다.(이런 점에서 지금 중국에 대한 혐오가 아닌 경계는 이웃 국가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계에 대한 사랑 없이,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한 사랑/연대는 불가능함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개인적이건, 국가적/민족적이건 자아만 비대해진 시대에 필요한 것은 세계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다. 자기 집단 내에서 텐션(=강도)을 높이며 정체감을 부여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아니라, 타자로 이뤄진 세계로 향하고 의미를 찾는 여행과 독서가 여전히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다.
지금 이 시대에 구원의 가능성은 맹렬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활동적 삶을 살고 있는, 그러나 ‘의미의 소통’에 별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에 실망한 나머지 방에 틀어박혀 세계로부터 물러난 자들에게 있는지 모른다. 적어도 의미와 소통의 차원에서 본다면 말이다. 이들은 소통에 절망한 사람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강렬하게 소통을 희망하며 소통 가능성이 출현하기를 기다리고 의미를 보존하는 현대의 ‘수도자’일 수도 있다.(물론 정신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은둔형 외톨이를 문화적 수준에서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가끔 문화주의적 비평에 의해 정신의학적 문제가 낭만화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이 ‘수도자’들이 완전히 사회와 유리되고 고립돼 고사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 공간이 다름 아닌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전세계 극우들이 가장 미워하고 없애려는 것이 공교육과 공공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사람들은 세계로부터 한발 물러나 지금 당장의 감정 격류에 휩쓸리지 않으며 낯선 타자의 이야기를 듣고 더 나은 선택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 내내 도서관은 극단적인 종교주의자들의 공격으로 도서 전시와 열람을 방해받았고 예산 삭감 등 탄압의 대상이 됐다.
세계로부터 한발 물러나 ‘의미’와 ‘토론’을 지키려는 이 ‘도서관의 수도사’들은 극우와의 싸움에서 한발 물러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최전선 중 한 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어린이책시민연대’와 같이 윤석열 정권에서 검열에 맞서던 독서와 도서관 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계엄 기간에 열심히 거리로 나왔다. 도서관은 세계에 대한 감각과 이해를 넓히며 더 긴 호흡으로 세계를 보기 위해 지금과 감정으로부터 물러날 수 있는 공간이다. 포퓰리즘 이후의 민주주의와 정치를 위해 반드시 보존하고 지켜야 할 또 하나의 최전선이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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