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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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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피그말리온

김건희씨, 주로 남초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특정한 유형의 여성 표상
등록 2025-09-04 22:02 수정 2025-09-12 15:24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양손으로 세기도 어려울 만큼 숱한 범죄 의혹으로 구속된 피의자 김건희씨가 ‘어두운 밤에 달빛이 밝게 빛나듯’ 지금의 시련을 견디겠다고 한다. 제기된 의혹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내용 또한 지극히 심각하고 위법 수위가 상당하다. 파면된 대통령이기는 해도 전 영부인이라는 공적 지위를 존중해서인지 언론에서는 반성 없는 태도를 개탄한다는 정도로 점잖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은 김건희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부글부글하고 이 상황을 도통 ‘견디기’ 어렵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짜증 나는 지점은 불법이 아니므로 공식적으로 단죄할 수 없는 그의 치명적인 잘못이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인생을 바쳐 여성혐오를 완성했다.

생을 바쳐 여성혐오를 조장하다니

지금 김건희씨는 주로 남초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특정한 유형의 여성을 표상하는데, 이 유형의 여성들은 혐오와 질시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한국의 ‘마녀’들이다. 이들은 성형을 밥 먹듯이 하고 학벌을 세탁하는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신경 쓴다. 명품을 좋아하고 사치를 일삼는데다 무속인에게 엄청난 돈을 바쳐가며 주술 따위를 신봉한다. 혼자서는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무지하기 때문이다. 또 남편의 지위를 이용해 호가호위하면서도 남편을 존중하거나 내조할 줄 모른다. 출산율 저하로 나라가 망할 지경인데 아이는 갖지 않고 강아지, 고양이만 여러 마리 키운다. 이들은 남성들에게 일찍이 된장녀였고 유행에 따라 김치녀, 김여사, 맘충, 퐁퐁부인이 되기도 한다.

이 여성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특성을 모두 공유하는 한국인 여성 집단은 실재하지 않는다. 김건희씨가 저 모든 행태를 보여줬다 해도 부도덕한 개인의 비행일 뿐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러 명을 묶어서 호명하려면 카페에서 공부하는 카공족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처럼 상대의 성별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명확하고 단일한 행동 특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과 성별은 무관하다. 무속신앙에서 위안을 얻는 노인도 있고 정치인도 많다. 가족구성이 어떻든 이제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운다. 이렇듯 혐오의 대상이 실재하지 않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한 여성혐오는 비약이고 오류다.

 

영부인·여성 아닌 ‘피의자’로 직시해야

그런데 현실을 부정하는 남성들이 오랫동안 상상하고 혐오해왔던 바로 그 여성의 형상이 마침내 현실에 나타났다. 작은 공격에도 파괴될 정도로 기초가 부실하고 모습도 투박하던 석상이 살아 움직이는 정교한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것이다. 그것도 전 국민이 다 아는 여성의 위치, 대통령의 부인으로 말이다. 혐오의 피그말리온들이 이 세계로 불러낸 완벽한 갈라테이아는 여성혐오가 세계를 인식하는 틀로 당연하다는 듯 자리 잡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김건희씨에게 이 죗값을 물을 수는 없다. 파산한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경영진의 사례처럼 그 악영향은 크나 불법이 아니거니와 애초에 석상을 만들고 기어이 깨운 것은 피그말리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김건희씨를 영부인이나 여성이 아니라 피의자로만 바라보자. 그와 그의 일가를 둘러싼 모든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고, 온정이든 혐오든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법적 처벌을 지체 없이 단행하도록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란세력, 그리고 혐오세력과 단절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성아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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