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문상객이 갖춰야 할 예의 중 하나가 함부로 호상(好喪)이라 말하지 않는 것이라 배웠다. 죽음의 가치를 함부로 재지 말라는 소리다. 아무리 천수를 누리고 간 사람이라도 사별자 처지에선 떠나보내는 게 아쉽고 애끓기만 하다. 저마다의 사정을 모르니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지금 산재 말고도 시급한 국가 현안 많지 않나’(조선일보 2025년 8월11일치 사설 제목).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직업병에 관해 기록할 때면, 유독 주변에서 힘들겠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아픈 사람을 만나거나 사별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 그리 보이나보다. 안 힘든 것도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거나 그러고 마는데, 정말 힘든 순간이 있긴 하다. 산업재해로 자식을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줘야 할 때다.
출간이나 발행을 앞두고 취재한 이들에게 사실관계 등 내용을 검토받기 위해 원고를 보낸다. 그가 이런저런 의견을 주면 그걸 가져와 글을 고친다. 이 절차를 자식 잃은 부모들과 해야 한다. 원고에 기업의 행태, 산재의 구조적 원인만 적혀 있는 게 아니다. 그 아이가 떠난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을 보내기 몇 시간 전부터 나는 끙끙댄다. 차마 못할 짓을 하고 마는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래도 마감 시간이란 것이 있으니 결국은 원고를 보낸다. 보내며 별말을 하지 않는다. 대체로 그렇다. 위로하는 말도, 죄송하다는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사무적으로 ‘글 검토를 바란다’고 말한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드러내며 원고를 받는 사람은 드물다. 다들 이게 ‘일’임을 이해한다는 듯, 겪어 보내야 하는 순간임을 체념한 듯. 그도 나도 일에 집중한다. 이걸 이리 고쳤으면 좋겠고, 이건 확인해봐야 할 거 같고, 오타까지 발견해 보내주면 그제야 긴 머뭇거림과 부채감을 뒤로하고, 하나의 단계가 끝난다. 글을 정리해 편집팀에 보내며, 누군가에게 소중한 이가 세상을 떠났고,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이 순간을 감내하는 사람이 있음을 기억한다. 그들에게 다른 시급함이 있을 거라곤 생각해본 적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한 사람의 세상이 공익입니까? 드라마 ‘서초동’에서 로펌 변호사 두 사람이 나눈 대사를 빌려온다.
“왜 그쪽 세상만 봐요? 집을 잃고 나앉으면 그 한 사람의 세상은 송두리째 다 무너지는 건데.”
“한 사람의 세상이 공익입니까?”
한 사람의 세상이 공익이 될 수 없는 세상에서도, 오늘이 마지막 날일 거라고 생각하고 일터로 가는 사람은 없다. 오늘이 마지막 날일 거라고 생각하고 수학여행을 가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삶이 세상의 공익을 위해 감수돼야 하는 하나의 세상이라 생각하지 않으니까.
살아갈수록 점점, 무엇을 이뤄내겠다는 말에 끌리지 않는다. 대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산업안전도 중요하고 “안보, 경제성장, 산업경쟁력”도 중요하다던 그 언론이 실제 ‘무엇을 감수하라’ 요구하는지는 그간의 행태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산업안전을 외치는 이의 목소리도 쉬이 믿지 않는다. 기록하며 만난 사별자들은 사고의 원인을 알아야겠다고 했다. 진상을 밝히고, 처벌받게 하여, 더는 같은 죽음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 일을 이루기 위해 감수하는 숱한 순간을 보며, 믿을 수밖에 없던 게다.
희정 기록노동자·‘죽은 다음’ 저자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트럼프가 이겼다…대미 3500억불 투자 손해, 자동차관세 절감 효과 2배

‘소년범 의혹’ 조진웅, 배우 은퇴 선언…“질책 겸허히 수용”

박나래, 상해 등 혐의로 입건돼…매니저에 갑질 의혹

법원장들 ‘내란재판부 위헌’ 우려에 민주 “국민 겁박” 국힘 “귀기울여야”

유시민 “통화·메시지 도청된다, 조선일보에 다 들어간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바다를 달리다 보면…어느새 숲이 되는 길

서울고검, ‘쌍방울 대북송금’ 증인 안부수 구속영장 청구

‘갑질 의혹’ 박나래, 전 매니저들 공갈 혐의로 맞고소

‘쿠팡 외압 의혹’ 당사자, 상설특검 문 연 날 “폭로한 문지석 검사 처벌해달라”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5/53_17649329847862_20251205502464.jpg)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