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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강박 그만…탈성장, 노동조합과 함께

등록 2025-08-07 23:14 수정 2025-08-14 16:4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몇 달간 ‘뜻밖의상담소’에서 기후활동가 대상 마음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새 일터에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아팠고, 그 이유를 몰라 더 우울했다. 내가 인지하는 힘듦과 내 몸이 경험하는 힘듦 사이에 불일치가 있는 것만 같았다.

당일 취소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이 나는데도 상담소에 간 적이 있다. “아픈데 왜 왔어요?”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당황했다.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늘어뜨리고(바르게 앉을 힘이 없어서였지만 편안하게 앉았다며 칭찬받았다) 왜 자꾸 아픈 걸까 이야기 나눴다. 선생님은 물었다. 자연을 착취하지 말자면서 왜 자기 몸은 착취하느냐고.

 

말로는 탈성장 사회, 내 몸엔 성장 강박

말로는 탈성장 사회를 지향하면서 스스로는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걸까?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상태에서 벗어나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자는 제안은 고마웠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지? 숨이 얕고 가빠지는 것도 모른 채 일하는 게 일상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일터에서 자기 호흡을 느끼며 지낼 수 있을까?

비슷한 시기, 내가 일하는 녹색전환연구소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입사 전부터 논의가 있었지만 새로운 구성원들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뒤 모여 김밥을 먹으며 총회, 임원 선출, 규약 만들기 같은 절차를 준비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갈 때면 마음이 두근거렸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이제야 실감하는 듯했다. 머리로만 알던 권리를 삶에서 구체화하는 일은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초보 노조원인 나는 모르는 게 많았고, 그래서 더 알고 싶어졌다. 노동조합법을 처음 검색해봤다.

법보다 복잡한 건 마음이었다. 각자의 바람을 공동의 요구안으로 만들려면 먼저 나 자신을 돌아봐야 했다. 나는 어떤 일터에서,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무엇으로 평가받고,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가? 결국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닿아 있었다.

가장 기쁜 건 이 질문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생겼다는 점이다. 설립 총회 날, 각자의 삶에서 노동조합과 마주쳤던 경험을 들으며 가슴속에 조용한 소용돌이가 쳤다. 대학 내 비정규노조 연대 활동을 했던 사람, 규모가 큰 노조에 가입만 했던 사람, 프레카리아트(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일상적인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저숙련·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 등을 총칭) 노조를 만드는 운동을 했던 사람, 노조를 글로만 접했던 사람까지 다양했다. 서로 다른 경로를 지나 여기 모인 우리에게 이 조합은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까?

기꺼이 실무를 맡은 동료들 덕분에 지방고용노동청에 서류를 제출했고, 얼마 뒤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된다는 건, 일터와 나 사이에 새로운 관계의 층위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그건 또 하나의 돌봄 관계망이다. 내가 꿈꾸는 일터와 사회를 함께 만들 수 있는 공동체를 생각하면 마음이 목화솜처럼 포근히 부푸는데 아, 이건 정말 모두가 경험해보면 좋겠다.

 

노조 만들며 눈뜬 ‘탈성장 노동’

디자인 스튜디오 ‘오늘의풍경’은 이렇게 말한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스킬보다, 일이 되게 하는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역량을 키웁시다.”

내가 노력하고 싶은 방향이 바로 이것이다. 탈성장은 나 혼자의 결심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나의 노동조건, 일터의 문화, 동료와의 관계를 바꾸는 일과 연결돼 있다. 무한성장과 능력주의가 아니라 돌봄과 연대, 협동의 가치를 중심에 놓는 일터. 그것이 곧 나의 노동권을 지키는 길이자,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탈성장의 실천이다. 그렇게 기대며 나아갈 조직 밖 동료들도 늘어날 수 있기를.

 

김주온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활동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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