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1월6일 전북 익산시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을 모두 숨지게 한 40대 아버지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집중치료를 받고 살아남았다. 한국방송(KBS) 뉴스 영상 갈무리
2020년 11월6일, 전북 익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43살 ㄱ씨는 14살 중학생 아들, 10살 초등학생 딸, 43살 아내를 숨지게 했다. 이후 ㄱ씨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해 네 가족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신고가 접수됐지만, ㄱ씨는 집중치료를 받고 살아남았다.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 사건, 그중에서도 가해자인 아버지가 살아남은 사건이다.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사건이 일어난 2020년 11월6일부터 ㄱ씨에 대한 징역 15년형의 항소심 판결이 이뤄진 2021년 8월11일까지 언론은 120여 건의 기사를 쏟아냈다. 언론은 아동학대의 극단적 양상인 ‘자녀 살해’ 사건을 여느 사건사고 보도와 유사하게 수사·재판 절차를 따라가며 중계식으로 보도했다. 2020년 11월6~8일 ‘일가족 3명 사망, 1명 중태로 발견, 남편은 위중’이라는 유사한 제목을 단 발생 기사 16건이 보도된 뒤, 11월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전북경찰청 발표에 기반해 ‘40대 아빠 소행 추정’ ‘생활고 이기지 못해 극단 선택’ ‘체포영장 발부’ 등의 내용을 담은 기사 50여 건이 이어졌다.
11월11일 ㄱ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11월12일 ㄱ씨 구속, 11월16일 검찰 송치, 12월11일 구속기소를 알리는 데 이어,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24일에는 첫 공판에서 ㄱ씨가 모든 혐의를 인정했음을 여러 매체가 간략하게 보도했다. 사건 발생 9개월 뒤인 2021년 8월11일, ㄱ씨의 살인 등 혐의를 판단하는 항소심 재판부가 “부모의 양육 책임을 저버리고 자녀들과 아내의 생명까지 앗아간 피고인의 범행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부모에 의해 자녀들은 스스로 삶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선고 이유와 함께 징역 15년형을 선고할 때까지 언론은 해당 사건의 진행 상황을 ‘채무가 있다’ ‘유서가 있다’는 경찰 발표에 기반해 중계하기만 했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들을 살해한 이유는 ‘채무’ 하나로 납작하게 보도됐다.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범행을 저지르기 전 지방자치단체 등이 구축한 사회복지체계가 이 일가족을 구조할 수는 없었는지, 구멍은 어디에 있고 어디를 메우면 되는지 등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보도는 단 한 곳에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2020년 언론이 보도한 13건의 ‘자녀 살해 후 자살’ 기사 전반이 그랬다. 최미경 서강대 박사(신문방송학)가 2020년 6월~2021년 5월 11개 신문에 보도된 465건의 아동학대 기사 전반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6.9%가 스트레이트(사실 보도) 기사이고, 기획·분석·심층 기사는 2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 보도가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부모의 소유물처럼 다루거나, 자극적인 내용으로 피해 아동과 가족에게 2차 피해를 주는 사례가 반복해서 지적되면서 한국기자협회,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은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을 제정·발표했다. 권고기준은 아동 권익과 인권, 2차 피해 예방, 사실 기반 보도, 대응 체계 안내 등 4개의 기본원칙과 △부모의 ‘아동 살해 뒤 자살’을 ‘일가족 동반 자살’로 표현하지 않고 △아동학대 장면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상·사진 사용을 피하고 △인적사항이 드러나지 않도록 유의 △추정·추측을 자제할 것 등 세칙을 세웠다. 권고 기준 마련 이후 ‘일가족 동반 자살’ 같은 표현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사건 중심 중계식 보도는 바뀌지 않았다. 2020년 11월 전북 익산 사건 발생 5년 뒤인 2025년 6월1일,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전남 진도에서 49살 ㄴ씨가 차를 몰고 바다로 돌진해 아내와 고등학생 아들 두 명을 숨지게 했다. ㄴ씨 본인은 살아 나왔다.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 사건, 가해자인 아버지는 살아남은 사건이다.
언론은 물에 빠진 승용차가 인양된 6월2일부터 6월10일까지 64건의 기사를 쏟아냈다. 모두 ㄴ씨가 도주하다 긴급체포되고, 영장이 신청되고, 구속된 수사 흐름을 중계하는 데 바빴다. 범행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도 초점이었다. 경찰 발표에 따라 ‘체불임금·카드빚 2억’ 등을 범행 이유로 보도했다.
일어난 시점과 세부 내용이 다르지만 언론이 보도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천편일률적이다. ‘경제적 문제’에 시달리다 아이들을 죽이는 데 이르렀다. 정말 그럴까. 김지혜 남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의 원인을 ‘경제적 원인’ 하나로 단편적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2024년 8월 발표한 ‘아동학대 사건 중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신문기사 분석’ 연구를 위해 자녀 살해 후 자살 관련 국내 선행 연구 4건을 분석했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기반으로 가해 원인을 분석한 연구와 경찰 수사기록을 통한 자살 사망자 전수 조사 자료를 통해 분석한 연구를 비교한 결과, 가해 원인이나 가해자 유형이 확연히 다르게 나타났다.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을 파악한 연구 3건의 경우 각각 가해 원인의 31.5%, 46.6%, 37.7%가 경제적 문제로 나타났지만, 경찰 수사기록을 통해 살펴본 연구의 경우 가해 원인으로는 가족 갈등이 36.6%, 정신적 문제가 35.4%로 가장 지배적이고, 경제적 문제는 19.5%인 것으로 분석됐다. 해당 사건을 사건 초기 경찰 발표 등에만 의존해 자녀 살해에 대해 피상적 접근만 이뤄지는 셈이다.
김지혜 교수는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사건의 경우, 언론이나 연구자의 접근이 어렵고 남아 있는 자료도 많지 않다. 그러나 사건 초기 경찰이 브리핑하는 몇 개의 사실만으로 ‘경제적 원인’ 한 가지만 자녀 살해의 원인으로 지목될 경우, 더 큰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가족들이 ‘자녀 살해 뒤 죽음 선택’이라는 방법을 문제 해결의 돌파구로 생각하고 모방할 가능성이 있다. 단편적인 보도들이 그 보도를 접하는 대중·시민을 의도치 않게 학습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우재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언론이 자녀 살해 사건을 보도할 때 ‘솔루션(해법) 저널리즘’으로서 사건 실체를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범죄가 한순간에 저질러지지만, 범죄에 이르기까지 개인은 많은 단계를 거칠 것이다. 파산 신청을 한다거나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한다거나 하는 징후적 행동이 있을 수 있고, 심리적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도 있고 이례적으로 아동 체험학습 신청을 할 수도 있다. 그런 과정에 대한 보도가, 사회가 예방적 조치를 찾아나가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언론 보도의 변화를 주문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민법이 개정돼 부모라도 아동을 체벌할 권리는 없으며,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등을 하면 최대 10년 이하 징역 등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112에 신고하고, 아동 양육·지원 등에 어려움이 있으면 129(보건복지상담센터)와 상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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