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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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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수괴 윤석열’이 극단적 표현? 그래도 생활도서관은 계속된다

강민서 한국외대 생활도서관장 인터뷰
등록 2025-05-02 13:09 수정 2025-05-06 09:21
강민서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장(왼쪽에서 둘째)과 생도지기(운영위원)들.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 제공

강민서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장(왼쪽에서 둘째)과 생도지기(운영위원)들. 한국외대 생활자치도서관 제공


2025년 4월10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내란범·내란수괴 윤석열’이라는 표현이 화두에 올랐다. 총학생회 특별자치기구인 생활자치도서관(생활도서관)의 성명에 이 단어들이 포함된 것 때문이었다.

“지나친 정치 이념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ㄱ단과대 부학생회장) “극단적인 워딩 때문에 생활도서관이 어떻게 학우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우려된다.”(ㄴ단과대 학생회장)

생활도서관장은 총학생회 시국선언문과 헌법재판소 결정문에도 같은 취지로 비상계엄령이 불법·반헌법적이라는 내용이 명시됐다고 항변했다. 결국 회의에 참석한 128명 가운데 찬성 22명, 반대 35명, 기권 71명으로 생활도서관의 특별자치기구 지위 재인준이 부결됐다. 한 학기 동안 자치회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강민서 생활도서관장에게 총학생회의 결정과 내란 사태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생활도서관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생활도서관은 1990년대 중앙도서관의 도서 검열 및 학점과 취업 경쟁을 위한 열람실화를 반대하고, 진보적 담론의 대중화를 바라던 학생들이 세운 대안적 공간이다. 생활도서관은 모두에게 평등하고 열린 공간이자 학내 소수자를 위한 쉼터로서, 누구나 마음껏 드나들고, 떠들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또 평소 관심 있었던 의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도록 책모임, 상영회, 세미나 등 다양한 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2800권이 넘는 인문사회 분야의 장서, 학생 사회의 기록물과 학내외의 각종 간행물을 구비하고 있다.”


―한국외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재인준안이 부결됐다. 당시 회의에서 제기된 문제는 뭔가.

“‘총학생회 산하기구인데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고 극단적 단어를 사용해 여러 차례 성명문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지나치게 드러냈다’는 것이 지적의 뼈대였다. 내란 세력 비판은 아무리 강경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탄핵에 반대하거나 아예 생활도서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죽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의 내란 사태가 벌어진 뒤 성명서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내란의 전 과정에서 윤석열 일당은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모독하고 파괴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 담론이 모이는 열린 공간’인 생활도서관으로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생도지기(생활도서관 운영위원) 절반은 당장 국회로 달려갔다. 비상계엄 해제 이후 다른 학교 자치도서관의 성명문이 올라왔고, 자연스럽게 우리도 성명문을 내기로 결정했다.”

―어떤 이유로 성명서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 대표자들이 많았다고 생각하나.

“대학생들이 예전에 비해 보수화된 것은 맞지만, 내란수괴나 내란 옹호 세력을 단호히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학생 사회의 총의다. 우리 대학 대의원들도 총학생회 시국선언에 참여했거나 탄핵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생활도서관 재인준이 부결된 핵심적 이유는 총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던 것 같다. ‘탄핵에 찬성하면 진보 좌파, 민주당 지지자이고 반대하면 보수 우파’가 아니라,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민주주의는 당연히 수호해야 하는 가치라고 명확히 하지 않으면 이 내란을 결코 완전히 끝낼 수 없다.”

―재인준을 받지 못한 뒤 생활도서관에 생기는 변화는.

“기존에 학기마다 받던 자치회비 없이 기부금만으로 운영하게 된다. 인스타그램에 후원 요청 글을 올렸는데, 하루도 되지 않아 자치회비 없이도 족히 5년은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기부금이 모였다. 생활도서관을 응원하는 분들이 늘어나서 이제 생도지기만 열심히 하면 될 것 같다.”

―앞으로의 생활도서관 활동 계획은.

“당장 5월에는 노동절을 맞아 세계노동절대회 참가와 영화 ‘태일이’ 상영회, 광주 5·18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 가정의 달을 맞아 정상가족주의를 퀴어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모임 등을 진행하려고 한다. 다음달에는 연중 가장 즐거운 행사인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가자를 모아서 다녀올 예정이다. 시의적절한 의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강연 사업 등도 계획하고 있다. 많은 후원을 받은 만큼 신간도서도 잔뜩 구매하고, 낡은 기물도 바꾸려니 생도에 활기가 돌 것 같다.”

―한겨레21 등 언론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언론은 요즘 대학생들이 왜 탈정치화됐는지 교수를 찾아가 묻는다. 학생들이 탈정치화됐다고 ‘꾸짖는’ 태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무엇이 학생들이 정치적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는지 살피고, 개개인의 정치적 요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은 구석진 곳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고 스피커가 돼줘야 한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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