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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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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하는 언니’ 함께 이 세계를 지켜요

2025년 기획서 라인업·‘우리 일의 미래’ 프로젝트 등으로 두근두근… 1인 출판사 ‘혜화1117’ 이현화 대표
등록 2025-02-21 21:13 수정 2025-02-26 08:55
이현화 혜화1117 대표. 본인 제공

이현화 혜화1117 대표. 본인 제공


이현화 혜화1117 대표는 2024년 여러 신선한 시도를 했다. 1인 출판사로서 ‘옛 그림으로 본 조선’(전 3권), ‘조선시대 궁중기록화, 옛 그림에 담긴 조선왕실의 특별한 순간들’ 같은 몸집이 큰 책을 연달아 출간했다. 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을 계기로 도서출판 가지, 메멘토, 목수책방, 에디토리얼 그리고 혜화1117까지 다섯 개 1인 출판사 대표들이 모여 만든 ‘출판하는 언니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독자들에게 많은 응원을 받기도 했다. 2025년 초엔 라이프스타일을 주로 다루는 여성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려 출판사 건물이자 살림집인 한옥도 새삼 다시 눈길을 받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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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조선시대 궁중기록화를 총집대성한 책을 출간할 때까지만 해도 당분간 조금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봄에 나올 새 책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엄과 탄핵 정국, 제주항공기 참사, 얼마 전 대전에서 일어난 어린 하늘이의 슬픈 죽음, 김새론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이어져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마음으로 겨울을 보내고 있어요. 계엄과 탄핵 정국은 집회에 나가서 소리라도 칠 수 있는데, 다른 일들은 그저 혼자 슬퍼할 수밖에 없어서 그 강도가 더 세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슬픔을 겪으신 모든 분께 위로를 먼저 전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일상은 또 이어지는 것이어서 봄에 나올 새 책을 준비하고 있고, 2025년 2월 초에는 제주에 내려가 자리를 비운 주인을 대신해서 보배책방을 지키기도 했어요. 원래 출판사가 아닌 책방 주인을 꿈꿨는데 출판계 후배인 책방 주인의 제안 덕분에 꿈을 이룬 며칠을 보내다 올라왔습니다.”

―올해 출간 예정작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일제강점기에 제작한 경성 지도를 바탕으로 실제 그 번지수에 어떤 건물이 있었는지, 누가 살았는지, 용도는 무엇이었는지 등등을 촘촘하게 밝힌 책이에요. 페이지가 지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이걸 또 어떻게 감당할까, 겁먹는 중입니다. 총집대성이라는 말을 또 달고 살게 생겼어요. 이어지는 책은 한국전쟁 이후 최근까지 서울의 한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발해왔는지를 살피는 내용이에요. 그 개발의 방향이 시대적 고민을 어떻게 담고 있고, 결과적으로 원형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 함께 아우르는 책이죠. 한강의 개발사이기도 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떤 행보를 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한강의 이야기면서 우리 사회가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큰 회사에서 독립해 주로 작은 집들을 설계하고 있는 젊은 건축가의 집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 혜화1117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파우저 선생님의 문자에 관한 새 책이 있어요. ‘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 저자 최지혜 선생님의 새 책 ‘경성주택 탐구생활’(가제)도 있고요.

여기에 더해 요즘 제일 꽂혀 있는 기획은 책과 책을 둘러싼 공간에 대한 책 네 권 동시 출간이에요. 동네책방에 관한 진일보한 내용을 담게 될 출판평론가 한미화 선생님의 ‘동네책방 생존탐구’ 개정판, 환갑의 나이에 책방을 시작한 뒤 햇수로 9년 동안 서촌에서 책방을 운영하면서 독서모임을 중심으로 소리 없이 강하게 독자 확산에 기여하고 있는 서촌그책방 하영남 대표님의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유명한 일본 책방 칼럼니스트 이시바시 다케후미 선생님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책이 있는 다양한 공간을 떠올리며 어떻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왔는가를 살피는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일본어판 번역본이 아닌 한국 독자들을 위해 최초 출간하는 책이라 그것도 의미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전국 곳곳의 동네 도서관들을 즐기며 탐구해온 박상준 여행작가의 도서관 탐구에 관한 책까지 모두 네 권을 어떻게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 것인가에 꽂혀 있죠. 하반기에 이 책들과 함께할 생각만으로도 두근두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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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 잡지에 등장한 이현화 대표와 혜화1117.

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 잡지에 등장한 이현화 대표와 혜화1117.


―출판사만큼이나 집도 유명한데, 인테리어 전문지와 인터뷰하셨어요.

“처음 집을 짓고 난 뒤 여러 매체에 소개되긴 했어요. 8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저는 이 집과 친해지는 과정이거든요. 이런 과정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반가웠어요. 이 집은 출판사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공교롭게도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 역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독립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려던 분이었어요. 혜화1117 한옥이 그런 분의 첫 프로젝트였죠. 포트폴리오는 없었지만 저는 막연히 그 처음이라는 점이 좋았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시공사와 관련해 별별 일을 다 겪으면서 일종의 전우애 비슷한 게 형성됐어요. 그래서 집을 지으면서 생각했어요. 이 집이 나에게는 물론이고 이 건축가에게도 앞으로 일을 해나가는 데 작지만 조금이라도 비빌 언덕이 되어주면 좋겠다고요. 그러자면 제가 제 일을 열심히 해서 이 공간의 의미를 잘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혜화1117 한옥을 설계했다는 사실이 그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아울러 그분이 더 일을 많이 해서 우리 집을 지어준 분이 바로 그분이라는 걸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둘이 서로 그렇게 집 한 채를 매개로 힘이 돼준다면 얼마나 동화 같은 일일까, 꿈을 꿨어요. 몇 년 동안 저는 저대로, 그분은 그분대로 각자 열심히 일해왔고, 그사이 저는 이곳에서 서른 권 넘게 책을 만들고 그분도 집 프로젝트 30여 개를 완성하고, 대학에서 전통 건축을 가르치며 건축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혜화1117 한옥이 서로에게 각별한 의미와 비빌 언덕이 돼준 것은 물론이고요. 이런 소박하지만 동화 같은 이야기를 어디서든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겠다 싶어 정말 반가웠어요.”

―삶을 위한 모험을 계속하고 있는 분들께 작은 팁을 알려주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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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학교에 입학하는 조카와 밥을 먹었는데요. 그 친구가 엄마랑 무슨 이유로 싸웠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에게 그 싸움의 본질이 뭔지를 보라는 말을 해줬어요.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뭔가 뜻대로 안 될 때는 마음을 차분히 하고 지금 여기에서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고 해줬어요. 어른인 저도 잘 못하지만 가급적 그러려고 노력하거든요. 주변의 것 때문에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꽤 많았어요. 순간순간 어렵게 하는 것들이 아주 많아 보이지만 그게 정작 본질인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나를 일하게 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그 본질은 건강한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정말 나를 뒤흔들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생각하면서 곁가지를 쳐내다보면 의외로 고민의 가짓수가 꽤 줄어들어요.

요새 다른 무엇보다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을 묻는 분들이 부쩍 많아졌어요. 1994년부터 이 일을 해오고 있으니 30여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 세계에서 봐왔겠어요. 좁게는 편집자 가운데 베스트셀러를 기획해서 이름을 날리던 분도 많고, 어떤 이유로든 조직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 분들도 많아요. 그렇게 보면 저는 크게 눈에 띈 적도 없고 대단한 성과를 만들어낸 적도 없어요. 이른바 스타 편집자 축에 들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도 어쩌다보니 지금까지 일해오고 있어요. 이런 분들이 의외로 꽤 많아요. 이 일을 하는 제게 가장 중요한 본질은 그냥 어제 하던 일을 오늘도 하면서, 오늘 하는 일을 내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전부였어요. 돌아보면 저는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냥 이 일이 좋았던 거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 먹고 살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해왔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직업인으로서의 윤리의식도 꽤 컸어요. 밥값은 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 책임감이라는 것도 썩 대단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내가 만든 책이 어디에 내놓을 때 부끄럽지는 않아야 한다는 정도였죠. 거창한 성공의 비결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저로 하여금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건 원대한 꿈과 포부가 아니라 이런 책임감에서 비롯한 항상성과 성실성이 전부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진짜 많이 들었던 말이죠. 그걸 무슨 팁이랍시고 말하고 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진부한 말이지만 살수록 어른들 말씀이 틀리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1인 출판사 대표 5명이 모여 만든 '출판하는 언니들'. 2025년 2월 '우리 일의 미래'라는 주제로 릴레이 강연회를 하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박숙희 메멘토 대표,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 이현화 혜화1117 대표, 박희선 도서출판 가지 대표. 

1인 출판사 대표 5명이 모여 만든 '출판하는 언니들'. 2025년 2월 '우리 일의 미래'라는 주제로 릴레이 강연회를 하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전은정 목수책방 대표, 박숙희 메멘토 대표, 최지영 에디토리얼 대표, 이현화 혜화1117 대표, 박희선 도서출판 가지 대표. 


―‘출판하는 언니들’ 프로젝트를 하시잖아요.

“2025년 2월 각 출판사 저자분들 한 분씩,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저자 한 분을 더해서 ‘우리 일의 미래’라는 주제로 릴레이 강연회를 준비했어요. 이 강연을 바탕으로 함께 책을 출간해서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최초 공개할 예정이에요.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 부스 참가 신청도 했는데요.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출판하는 언니들’이 서울국제도서전에 못 나가면 어쩌나, 떨고 있어요. 그런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올해 진짜 이루고 싶은 목표입니다. 이 언니들과 뭔가를 계속 도모하는 일이 진짜로 정말 즐겁거든요. 우리 계속 함께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한겨레21에 하실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시장 상황이 어렵다’는 말에 너무 함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출판사 처음 시작할 때 시장이 어렵다며 만류하는 분이 무척 많았어요. 만약 그때 출판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하는데, 아찔해요. 한쪽 발은 분명 불안을 딛고 서 있지만 다른 한쪽 발은 즐거움과 만족을 딛고 서 있는 것도 분명하거든요. 어렵다는 말을 되뇌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지 않겠어요?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쪽으로 모드를 변환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흔히들 저물어가는 종이매체로 한 묶음으로 거론되는 대표 주자로서 우리 함께 으쌰으쌰 해서 오래오래 이 세계를 지키고 가꿔나가기로 해요!”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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