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취재팀이 2024년 7~8월까지 헌 옷을 의류수거함에 넣고 4개월 동안 이 옷들이 어디로 가는지 추적해봤다. 153개의 옷·신발·가방 등 12가지 품목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현장을 취재했다. 이 결과는 우리가 그동안 알 수 없었던, 버린 옷의 행선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줬다.
헌 옷 수거함에 넣은 옷들은 말레이시아, 인도,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볼리비아, 페루, 일본 등으로 수출됐다. 추적기 경로를 보면, 몇몇 물건은 특정한 나라로 가는 경향을 보였다. 먼저 인도로 스웨터가 많이 수출됐다. 인도로 간 옷 8벌 중 6벌이 스웨터다. 특히 6벌 중 5벌이 인도에서 섬유 재활용으로 유명한 북부의 파니파트로 이동했다. 나머지 한 벌 또한 파니파트에 있다가 인도 북부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다. 의류 수출업체 현대이아이 유영선 대표는 “인도로 간 것 중에 좋은 것들은 재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세척 과정을 거친 뒤 (올을) 풀어서 섬유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인도로 간 옷 8벌 중 6벌은 앞서 말했듯 스웨터였고, 1벌은 코트였다. 티셔츠 1벌을 제외하면 모두 겨울 의류다. 유 대표는 “인도는 북부 주변에 고산지대가 많다. 또 인도를 통해 인근 부탄과 네팔로도 겨울옷이 넘어간다”고 했다.
타이의 경우 신발이 주로 향했다. 추적된 물품 중 국외에서 발견된 신발은 2켤레인데, 모두 타이의 롱끌르아 시장에서 발견됐다. 이 시장은 신발을 재판매하는 곳이다. 하지만 다시 주인을 찾지 못한 신발은 폐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재팀이 보낸 헌 옷 중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옷은 없었다. 아프리카는 정장류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들어 수출 물량이 줄었다고 한다. 헌 옷 수출회사 ㄱ무역에서 일하는 ㅇ씨는 “국제정세 불안에 따라 홍해를 지나서 서아프리카로 가던 뱃길이 희망봉을 돌아서 가는 일도 벌어진다. 컨테이너 비용, 해상 운송비가 올라 아프리카 헌 옷 수출 상황이 안 좋다”고 했다.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자국 의류 산업 보호를 위해 중고의류 수입을 금지하는 나라로도 한국의 헌 옷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옷들은 어떻게 이동한 것일까?
■인도네시아
2024년 8월 서울 도봉구의 수거함에 넣은 티셔츠 한 벌이 3개월 뒤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됐다. 인도네시아는 2015년부터 중고의류 수입 금지를 선언했다. 이후 금지 선언이 잠정 해제된 적도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규제된다. 2023년 조코 위도도 당시 대통령도 “헌 옷 수입은 국내 섬유 산업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이에 한국 수출업체들은 인도네시아가 아닌, 인접국 말레이시아의 거래처와 거래한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에서 수입되는 중고의류 또한 규제하지만, 단속이 엄격하지는 않다. 무역통계 누리집 트레이드맵 데이터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20년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로 수출된 중고의류는 2만4040t이었는데, 2021년 2만7386t, 2022년 2만5808t으로 증가했다. 의류 수출업 관계자 ㅈ씨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옆 나라니, 밀거래식으로 넘기는 것”이라며 “단속이 확 심해지면 멈춘다”고 했다.
■필리핀
필리핀도 마찬가지로 법으로 중고의류 수입을 금지하는 나라인데, 한국 헌 옷이 수출된다. 취재팀이 전국 헌 옷 수거함에 넣은 옷 중 의류 5벌이 필리핀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필리핀은 ‘우카이우카이’라 불리는 중고의류품 거래상이 존재한다. 2019년 영국문화원이 발간한 ‘중고의류 수입이 필리핀 산업에 미치는 영향’(필리핀 패션 혁명)을 보면, 옷들은 다른 물품으로 신고되거나 기부받은 물품으로 가장해 필리핀으로 수입된다. 또한 통관 담당자에 따라 중고의류 통과를 허용하는 경우도 있어, 사실상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출업체 관계자는 “필리핀은 수입 금지국인데도 컨테이너째로 헌 옷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필리핀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는 나라다. 2018년 7월 민다나오섬으로 6500t의 한국발 쓰레기가 불법으로 수출됐다가 이후 반송돼 논란이 일었다. 필리핀은 해양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 세계 최대 배출 국가라는 오명(2021년·디오션클린업)을 쓴 바 있다.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의류도 강과 바다를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시키는 등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한국의 중고의류가 버려질 경우 필리핀 플라스틱 쓰레기를 증가시키는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남미와 아프리카
볼리비아에서는 배우 김석훈씨가 보낸 신발, 그리고 셔츠 한 벌이 발견됐다. 페루에서도 베레모가 발견됐다. 두 나라를 포함해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남미 국가 대부분이 중고의류 수입을 금지하는데도, 역시 옷이 이동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추적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리카도 중고의류에 대한 거래 규제 움직임이 있다. 르완다, 탄자니아, 우간다 등 동아프리카공동체(EAC)는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중고의류 수입 금지 조처를 추진했다. 현재는 중고의류 최대 수출국인 미국의 압력으로 대부분 철회했지만, 규제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의 금지·규제 국가로 이동하는 중고 옷들은 ‘묻지마 물류’인 경우가 많다는 게 수출업자의 말이다. 수출업자 김아무개씨는 “개발도상국들은 물품을 분류해서 통관하는 게 아닌 ‘이삿짐’ 개념으로 컨테이너를 통관해주는 곳도 많다. ‘개인 물건’이라는 식으로 신고하고 실제로는 중고의류를 실어서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버려진 지역별로 헌 옷의 이동은 어떻게 달랐을까. 먼저 서울 강남에서 버려진 옷이 일반적인 옷과 행선지에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봤다.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에 넣은 옷 10벌 중 3벌이 인도, 말레이시아로 수출됐고, 4벌은 수출업체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절반가량이 수출되거나 국내에서 수출 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평균보다 다소 높은 수치지만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강남 3구에서 출발한 옷 중 개인이 옷을 사 간 것으로 보이는 것도 없었다.
다만 수출업자들은 수출과 국내 구제 도매상에서 강남 3구 등과 같은 부유층 거주지의 헌 옷이 선호되는 편이라고 했다. 유 대표는 “확실히 서울 일부 지역의 헌 옷은 품질이 좋은 편”이라며 “구제 가게 하는 분들이나 수입해가는 분도 헌 옷 한 꾸러미(50~100㎏)를 사서, 그 꾸러미에서 명품이 나오면 그 명품 하나를 파는 것으로도 꾸러미 가격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도 있으니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대도시와 비수도권·중소도시에 넣은 옷의 처리 결과에는 차이가 있을까. 최종 행선지에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수거 속도는 다르다. 서울과 수도권, 부산 등 대도시의 의류수거함에 넣은 옷들은 10일 안에 수거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실제로 인구 10만 명인 충남의 한 소도시 헌 옷 수거함에 넣었던 스웨터는 첫 수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인구가 적은 곳일수록 수거업체가 자주 찾아오지 않아서다. ㅇ씨는 “소도시는 아예 민간업체가 아닌 부녀회나 새마을회 등이 관리를 맡는다. 1년에 몇 번 정도만 수거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소도시의 옷도 수출업체에 오면 서울·수도권의 옷과 같은 기준으로 수출 여부를 정한다.
헌 옷 수거업자들은 헌 옷이 자주 나오는 시기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우선 여름에 더 많은 헌 옷이 수거된다. 겨울에는 평소보다 30% 정도 옷 배출량이 줄어든다. 환절기에도 사람들이 옷장 정리를 하기 때문에, 옷이 평상시보다 많이 배출된다.
수출하지 않고 국내에서 소각하는 옷과 잡화는 어떤 것일까. 유 대표는 인조가죽으로 된 제품은 수출하기 어려워 국내 폐기(주로 소각)된다고 했다. “(인조가죽은) 조금 쓰다 보면 벗겨지잖아요. 가방하고 신발은 쓰레기가 옷보다 많이 나와요. 가방과 신발 30~40%가 쓰레기로 나와요. 이게 인조가죽 때문이거든요. 수출을 보내면, 동남아는 3주, 아프리카는 두 달까지 걸리거든요. 그 과정에서 더운데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 있으니까 인조가죽이 다른 물품에 붙어서, 나머지 것까지 쓰레기로 만들어요. 그래서 수출을 못하는 거죠.”
유 대표의 말처럼, 취재팀이 추적기를 단 물품 중에 인조가죽으로 된 검은색 부츠가 있었는데, 이 부츠는 보낸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2024년 8월 국내에서 소각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서로 다른 재질이 붙어 있는 의류도 소각된다. 예를 들어 상의는 면 재질로, 하의는 폴리에스테르로 이뤄진 옷의 경우다. 유 대표는 “면을 분리해내야 산업용 걸레·헝겊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데, 인건비가 들기 때문에 어렵다”며 “이런 옷들은 재활용되지 않는다. 재활용을 위해서는 생산업체가 단일 재질로 옷을 만들어주면 좋다”고 했다.
글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사진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겨레21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보도는 12월27일부터 2025년 1월2일까지 매일 이어집니다. 한겨레21 통권호(1545호)로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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