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조선 산수화는 중국풍의 ‘관념산수화’가 지배적이라는 이론이 팽배했다. 2020년 미술사학자 최열이 현전하는 서울의 실경화를 집대성한 <옛 그림으로 본 서울>(혜화1117 펴냄)을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실제 조선의 풍광을 그린 그림이 가진 다채로움에 놀랐다. 책은 16세기 알 수 없는 작가부터 19세기 심전 안중식까지 화가 41명의 작품 125점을 담았다. 200자 원고지 약 2천 장에 이르는 대작이었다.
당시 현직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모처럼 좋은 책 한 권 읽었다” “저자로서도, 출판사로서도 역작”이라며 상찬해 이 책은 더욱 유명해졌다. 그 뒤 최열은 제주를 그린 옛 그림을 총망라해 <옛 그림으로 본 제주>(2021)를 같은 출판사에서 펴냈고, 2022년 12월 제4회 혜곡최순우상을 받았다. 수상 기념 강연은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을 다뤘다.
2024년 봄, 최열과 출판사는 다시금 놀라운 기개를 보여줬다. <옛 그림으로 본 조선 1: 금강> <옛 그림으로 본 조선 2: 강원> <옛 그림으로 본 조선 3: 경기·충청·전라·경상>을 한꺼번에 발간한 것이다. 이 3권은 총 1520쪽이었고 수록 그림은 1천 장이 훨씬 넘었다. 이로써 ‘옛 그림으로 본’ 시리즈가 마무리됐다. 30년 동안 연구한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저자를 2024년 6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1117 출판사에서 만났다.
―어떻게 조선 실경을 연구하게 됐나.
“우리는 기록이 없는 민족, 조선 실경이 없는 민족, 리얼리즘이 없는 민족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스스로 ‘중국 그림 흉내나 내는 사대 민족’이고, 조선에는 ‘관념산수화’만 있다는 교육을 했다. 서양의 여러 방법론을 공부하면서 한국의 미술 해석을 훌륭하게 하는 꿈을 꾸었다. (조선시대 그림 연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꾼 꿈이었다.”
―독학자로서 집요하게 공부한 것 같다.
“돈을 벌어야 해서 학부 때는 응용미술을 전공했고 아카데미 안에서 미술사학 수련 과정을 밟지 않았다. 독학으로 공부하기에 조선시대는 부담이었고 작품에 접근할 통로가 없었다.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 시절 국회도서관이 민간인에게 문을 열었다. 출퇴근하다시피 일제시대 매체와 근대 미술의 거의 모든 자료를 봤다. 근대 미술 공부를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제5·6공화국 통틀어 ‘가장 위험한 미술인’으로 일컬어졌다.
“1980년대 내내 민중미술 평론가이자 운동가였다.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원주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풀려났다. 노태우 대통령 때 1년6개월 동안 수감됐는데 그동안 시대가 바뀌었으니 미술사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8년 12월 결성한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해체 선언을 스스로 했다. 지난 우리의 운동 방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각자 영역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기로 했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많은 사람이 정치권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정치권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 확실히 공부를 선택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자료를 검토하면서 한국 근대미술의 계보를 확인하고 사실을 정리한 최열은 1993년 근대미술사학회를 만들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식민 미술’을 연구했고 1920년대 이후 일제시대 프롤레타리아 미술운동과 미술가, 좌익 미술 운동사를 함께 공부했다. 작은 기사 토막에서 단서를 얻어 추적하는 등 마치 탐정처럼 근대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파고들었다. “당시에 미술사학계에서 한국의 근대미술은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카데미 안에서 시민권이 없다. 그 점이 안타깝다”고 그는 말했다.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이 주도한 역사적 해석을 그대로 이식한 한반도에서 최열은 사실을 탐구해 ‘실제’ 있었던 미술사를 복원해내기 시작했다. 그가 집필한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 1800-1945>(1998)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 1945-1961>(2006)은 지금도 근현대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지도가 되고 있다. 한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로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을 이끌었던 김복진(1901~1940)을 재평가하고 <김복진: 힘의 미학>(1995)을 내면서 평전을 쓰기 시작한 최열은 <추사 김정희 평전>(2021)으로 추사 탄생지와 관련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해석보다는 사실에 방점을 둔 저술을 한다.
“김복진, 권진규, 박수근, 이중섭, 김정희 등 평전을 썼다. 그저 그 사람 삶의 고통과 외로움을 충분히 보여주면 되는 거다. 최대한 대상에 대한 충실성을 갖고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내 원칙이다. 내 생각을 책에 쓰려다보면 소설이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 기자 같고 탐정 같다.
“1997년부터 <가나아트>(1988~2000년까지 발간된 미술전문잡지) 편집장으로 일했다.(웃음) 학교 때 ‘조선시대 실경이 없다’고 배웠는데, 그럴 리 없다는 의문을 갖고 답해나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미술사를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조선은 실경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실경의 천국’이라고 썼다. 김정희의 탄생지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근거도 없이 일제강점기 일본 연구자의 논문에 따라 추사 탄생지를 충남 예산이라고 추정했는데 추사의 외가 친척인 유만주의 일기 <흠영>을 연구해보니 그의 고향은 서울 명동이었다.”
―특종을 한 셈이다.
“미술사 연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봤다. 미술은 특정인의 시각, 세계관, 정치관, 사회관을 바꿀 수 있다. 미술은 우리의 감각과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간의 태도를 번역해낼 힘을 가진 매체다. 집회 때 걸개그림을 걸고, 삐라(전단)에도 그림이 들어가지 않나. 미술이 선전·선동의 매체라고 하면 ‘빨갱이’ ‘공산주의’ 프로파간다를 떠올리고 거부감을 갖는데 선전·선동성은 미술의 본질적 기능이다.”
―‘옛 그림으로 본’ 시리즈에서 개발과 자연훼손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한다.
“못내 자꾸 거슬린다. 개발한다며 거덜을 내니까. 승경지를 개발하면서 주차장, 카페, 목책, 철책, 케이블카 등을 만들고 정작 아름다운 곳은 자꾸 찌그러뜨린다. 어떤 기자가 ‘통영의 케이블카가 축복에서 저주가 됐다’는 식으로 썼던데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소박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내 책을 보고 좀더 자연을 사랑했으면 싶다.”
―이번에 낸 연작 가운데 ‘금강 편’에는 분단 때문에 가지 못하는 곳이 많다.
“진주담을 비롯해 만 개의 폭포가 있다는 만폭구역에 가보고 싶다. 이곳을 그린 화가 여섯 명의 여섯 작품이 전해오는데 겸재 정선이 그린 그림은 이념화된 것이고, 지우재 정수영의 그림은 아름답다. ‘금강산 회화사상 혁명’이라고 책에 썼다. 산악이 허공에 뜬 것같이 신비롭고 채색도 아름답다. 그분은 ‘어디 따로 한 봉우리, 한 봉우리 얘기할 수 있겠느냐, 1만2천 봉이 모두 같다’는 글을 화제(그림에 넣은 글귀)에 짧게 썼다. 봉우리와 풍경이 모두 다 평등하다. ”
―당시 조선 실경이 유행한 까닭은.
“18세기에 먹고살 만하니까 유람 문화가 꽃을 피웠다. 물론 사족계급 이야기지만 유람을 못 간 사람들은 화가들에게 경치를 주문했다. 그림이 잘 팔리는 시대가 되자 유능한 사람들이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제주도 관련 그림이 많다는 것도 놀라웠다.
“제주가 제일 신기했다. 1980년대에 서울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서 <탐라순력도>가 들어 있는 화첩을 처음 만났다. 지금은 원화를 제주시에서 사들여 소장하고 전시도 했고 이후 석사학위 논문도 나왔다. 이렇게 묘한 ‘못난이 그림’들을 발견할 때 신기하다. ‘지역 양식’ ‘변방 양식’이라고 하는데 가만히 보면 귀엽고 재밌다.”
최열은 실경화를 그린 화가 중에서도 김윤겸(1711~1775)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는데, 최열은 “똑같은 풍경도 김윤겸이 그리면 아주 해맑아진다”고 말했다. 김윤겸은 오랫동안 권세를 누린 척화대신 김상헌의 집안 후손이었지만 서자였다. 벼슬 뜻이 없었던 김윤겸은 세상을 주유하며 그림을 그렸다. 최열은 조선시대 미술가들을 ‘그분들’이라고 높였다. 미술가들에 대한 존경과 겸양이 몸에 배어 있었다.
―조선 실경화의 원칙이나 미술가들의 공통된 태도가 있나.
“이분들은 풍경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풍경 속으로 자신이 들어간다. 화가가 풍경 속으로 자기를 넣어버린다. 아마 그분들 인생관, 철학이 그랬을 거다. 감히 자신이 지배하는 풍경이 아니라 그냥 원래 우리가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나는 자연, 우주의 일부라는 거다.”
―요즘은 아트페어에 사람들이 몰리고 미술품 재테크에도 관심이 높다.
“특권 계급 20%에 부의 독점이 이뤄졌다. 아트페어의 흥행과 미술자본의 형성이 좋거나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미술이 그런 특권 계급이 형성한 자본시장의 부속물이 됐다는 생각이다. 자본이 원하는 미술이 최고의 미술인 것으로 평가받고 아트페어 부스를 차지한다. 미술이 환금성이 있고 물질이라서다. 중세 때도 다른 영토를 정복하면 미술품을 약탈했다. 본질적으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최근 민중미술계도 안타까운 사건들이 있었다. 임옥상 화백의 성추행 사건을 봐도 그렇다.
“안타까운 게 아니라 지탄받아야 한다. 비판받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다. (임옥상이 제작한) 청계천 전태일 동상이나 전태일 기념관 벽면의 파사드도 철거해야 한다. 강력하게 비판받고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논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 그림으로 본’ 시리즈를 낸 혜화1117의 이현화 대표는 1인출판사로 독립하기 전 최열 저자와 함께 <이중섭 평전>(2014·돌베개 펴냄)을 작업한 적이 있다. 2020년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이 나온 뒤 독자들이 뜨겁게 반응하고 ‘우리 고장의 산들은 언제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느냐’고 요청하면서 후속권을 출판할 동력이 만들어졌다. 종잇값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껑충 뛰었지만 이 대표는 후속작 출간을 마음먹었다. 저자가 보내온 어마어마한 분량의 원고를 접하면서 이 대표는 책 3권을 동시에 발간하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은 “회화라는 언덕으로 함께 걷는 동료 산책자”(이현화)가 됐다.
―앞으로 저술 계획이 있다면. “미술의 인식사와 계보학에도 관심이 있다. 겸재의 동시대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이후 평가는 무엇이고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이다. 김홍도는 생전에 ‘화선’으로 불렸는데 이런 ‘인식사 덩어리’가 궁금하다.”
―독자들이 ‘옛 그림으로 본’ 시리즈를 어떻게 읽어주면 좋겠나.
“이 책은 미술사책도 역사책도 지리책도 정확히 아닌 듯한데 미술을 매개로 한 총체성을 띤 인문지리서의 개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는 그런 마음이었으면 한다. 꽃을 보는 사람이 물도 주듯이 독자도 책과 함께했으면 한다. 자연에 대한 태도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장소에 뭔가 짓고 내가 들어가서 풍경을 내 것으로 삼을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함께 녹아들었으면 한다. 그림을 먼저 보고 글을 읽든, 글을 먼저 읽고 그림을 보든 어느 쪽이 낫다 말할 수 없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즐겨주길 바란다. 여행할 때 미리 공부해서 선입견을 갖고 보면 아는 것만 보이지만 정보를 전혀 모르고 낯선 곳을 찾았을 때 뜻밖의 풍경을 만나는 재미도 있으니까.”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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