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다급한 전화가 왔다. 어르신이 위급한데 빨리 와주실 수 있는지 묻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기록을 확인해보니 2년 전 몇 번 찾아뵈었지만 요양원 입소로 인연이 이어지지 않은 분이었다. 위중한 상황이라 하니 일단 다른 일정을 미루고 찾아갔다. 어르신은 1921년생으로 100살이 넘은 고령이었다. 가만히 누워 계신 모습을 보니 이미 돌아가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미약한 호흡을 뱉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상태가 좋지 않아 대학병원에 갔는데 소생이 어렵다고 해서 집으로 모시고 왔다고 했다. 보호자는 병원에 다시 가기 어려우니 마지막을 살펴주길 원했다. 나는 사망을 진단하는 일만 남았다고 판단했다. 하루 이틀 내로 임종하실 상황으로 보여 언제든 연락 주시라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임종이 가까운 환자가 있으면 신경을 쓴다. 연락이 오면 찾아뵙고 함께 애도하고 사망 선고를 하고 이후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어르신은 당장에라도 임종하실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집에 진료를 다니면서도 바로 찾아뵐 수 있도록 전화기를 매번 확인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틀 뒤 다시 찾아뵈었을 때도 상태는 비슷했다. 여전히 사망을 진단하는 일 이외에 다른 처치를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바쁘게 지내다 정신 차려보니 2주쯤 지났다. 어르신이 떠올라 전화하니 보호자는 어르신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다. 식사도 잘하신다고. 다시 찾아가보니 놀랍게도 어르신은 눈을 마주치며 인사도 해줬다. 인지 저하 증상이 심해 대화는 어려웠지만, 손을 마주 잡으니 온기가 느껴졌다. 아무 처치도 하지 않았는데 좋아지신 걸 보고 너무 일찍 단념했던 걸 자책했다. 보호자와는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선물이라 생각하고 같이 지내보자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시간이 지나며 건강을 차츰 회복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상 행동을 보이고 밤낮이 바뀌어 보호자가 감당하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연락을 주면 찾아뵙고 약물로 증상을 조절하며 보호자가 잘 돌볼 수 있도록 도왔다. 어느 날 밤 9시에 보호자에게 전화가 왔을 때 드디어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호자가 전해준 이야기는 어르신이 열이 난다는 소식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 받아온 약을 드시도록 하고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은 열이 나기도 하고 설사를 하기도 하며 차츰 일상을 회복했다.
3개월쯤 지나고 어느 휴일 오전 보호자가 어르신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연락을 줬다. 드디어 때가 됐구나 생각했다. 몇 시간 뒤 다시 연락을 줬다. 빠르게 찾아뵙고 살펴보니 편안히 임종하신 상황이었다. 보호자도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어르신께 애도를 표했다. 보호자가 더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는데 나도 울컥했다.
요양원에서 혹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집에 와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보호자에게도 왕진 의사인 내게도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어르신과 보낸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귀한 선물이었다. 생을 정리하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면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값지다는 생각도 든다.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보호자의 인사는 내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좀더 잘 치료했으면 더 좋아지진 않았을까 매번 복기한다. 죽음의 순간은 예상과 다르고 누구도 알 수 없다. 기뻐할 일도 그저 슬퍼할 일도 아닌 생의 마지막 순간은 남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결국 지금 이 순간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진실을 전한다. 어르신, 보호자와 몇 개월 함께 지낸 덕분에 왕진 의사인 나도 조금 성숙할 수 있었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30만명 ‘김건희 특검’ 외쳤다
“윤-명태균 녹취에 확신”…전국서 모인 ‘김건희 특검’ 촛불 [현장]
해리스-트럼프, 7개 경합주 1~3%p 오차범위 내 ‘초박빙’
에르메스 상속자 ‘18조 주식’ 사라졌다…누가 가져갔나?
로제 아파트는 게임, 윤수일 아파트는 잠실, ‘난쏘공’ 아파트는?
거리 나온 이재명 “비상식·주술이 국정 흔들어…권력 심판하자” [현장]
노화 척도 ‘한 발 버티기’…60대, 30초는 버텨야
“보이저, 일어나!”…동면하던 ‘보이저 1호’ 43년 만에 깨웠다
이란, 이스라엘 보복하나…최고지도자 “압도적 대응” 경고
구급대원, 주검 옮기다 오열…“맙소사, 내 어머니가 분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