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배에서 살아 나온 뒤 삶이 온통 뒤바뀌었다. 농담하던 친구를 더는 만날 수 없고 파도에 배가 침몰하는 꿈을 자주 꿨다. 희생자를 저주하는 댓글과 호기심 어린 질문 세례가 괴로웠다. 때로는 방구석 게임 세계로, 때로는 머나먼 나라로 떠나며 그날 닥친 일들을 조금씩 돌아본다. 나만큼이나 그 일로 슬퍼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나와 같은 이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심리학을 배운다. 산불로 피해 입은 할머니들을 찾아가 음식을 건네고 손을 내민다. 이제는 자신이 만든 단체의 이름과 같이 ‘운디드 힐러’(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다. 책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에 담긴 세월호 참사 생존자 유가영씨의 이야기다.
2024년 4월18일 방영 예정이던 한국방송(KBS)의 세월호 다큐멘터리도 이 책에서 제목과 콘셉트를 따왔다. 세월호 생존자의 참사 후 10년을 따라가며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다큐였다. 제작에 참여한 이재연 작가는 2월27일 <한겨레> 기고문에 “처음엔 마음 아픈 그 사건을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면서도 “피디가 건넨 (가영씨의)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을 살아내는 인간의 생명력이 담긴 이야기가 세월호 10주기를 맞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리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위로는 멈춰 섰다. KBS는 돌연 방영 시기를 4월에서 6월로 미뤘다. 다큐 내용도 다른 참사와 엮어 트라우마 위주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총선(4월10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총선 이후 방영되는 다큐가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냐’는 항변엔 “총선 전후 한두 달은 영향권”이란 궤변을 내놨다.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문법이 10년에 걸쳐 ‘생존’에서 ‘치유’로 나아가는 동안 정치권의 시각은 그대로 멈춰 있다. “ 피해자의 목소리로 참사를 다시 기억하는 다큐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각 자체가 사안을 정파적으로 바라본다는 방증”이라고 416연대는 2월22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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