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회원 정보를 관리하는 일을 한 적 있다. 사람들의 신상을 파악할 때 직장도 함께 물었는데, 거듭하다보니 흥미로운 점이 눈에 들어왔다. 정규직일수록 말이 짧았다. 반말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직장을 물으면 정규직원인 사람은 회사 이름을 댔다. □□전자요. ㈜○○이요. 그런데 계약직, 파견일수록 설명이 따라붙었다. □□기업 ○○부서에 일하고 있긴 한데요….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직업이 교사인 사람들은 학교명을 말하고 끝이었다. ○○중학교요. 직장을 물었을 뿐이니, 당연했다. 그런데 교사가 아닌 직종의 사람들은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중학교 급식실이요. □□초등학교인데, 돌봄교실에서 일해요.
내가 일하는 곳을 내 직장이라 말하는 데도 어떤 ‘자격’이 필요해 보였다. 최근 직장을 묻는 말에 학교 이름만 말할 수 없었을 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가 내 질문을 받았다면 이렇게 말했을까.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하고 있어요. 13년을 일했다.
고 이혜경씨. 2023년 12월4일, 폐암 판정을 받은 뒤 3년 투병 끝에 떠났다. “산재 인정을 받는 데 2년이나 걸려서, 사람이 병실에서도 마음고생을 했단 말이에요.” 그의 동료들과 노동조합은 경기도교육청 앞에 분향소를 세웠다. 그들의 요구는, 재발 방지.
경기도 교육청도 급식실 환경개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2021년 처음으로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이 직업병으로 인정된 뒤 17개 시도는 급식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폐암 건강검진을 했다. 경기도만 보자면, 검진 대상자(경력 10년, 55살 이상) 1만1천여 명 중 125명이 폐암 의심 판정을 받았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은 환기시설 점검·개선, 인덕션 등 주방시설 교체, 검진 대상 확대를 주 내용으로 하는 계획을 냈다.
그런데 추모와 개선은 별개였는지, 분향소 설치는 막았다. 경찰이 출동하고 분향 물품이 부서졌다. 12월6일 고인의 장례가 치러진 날이었다. 결국 분향소는 교육청 앞에서 지하 1층으로 밀려났다. 보는 눈이 적은 곳으로 치워진 분향소에선 국화꽃이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얼었다. 향마저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더 차가운 이야기도 들었다. 애초 분향소를 세우려 한 곳에는 며칠 전만 해도 다른 이의 추모공간이 있었다고 한다. 서이초 교사의 분향소였다(삼가 명복을 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급식실 조리사의 분향소는 세워질 수 없었다.
정부와 교육청의 급식실 개선 계획 발표는, 정작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지 못했다. 그들이 묻는 것은 “언제?”였다. 내일도 모레도, 오늘의 급식실로 출근해야 한다. 폐암 판정을 받고 요양하러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일터도, 환기시설이 미약한 반지하 급식실이다.(경기도 초중고교 중 37곳은 지하와 반 지하에 급식실이 있다.) 하루하루 폐에 하얀 자국이 만들어지는데, 언제? 당장, 시급히, 서둘러… 같은 수식어를 가질 자격은 따로 있는 걸까. ‘일하다 다치고 병들지 않기 위해’라는 이유만으로 바랄 순 없는 단어일까.
일하는 사람들은 점검 계획을 내지 않는 교육청을 대신해 휴지 조각을 길게 찢어 들고 다녔단다.
“후드(환기시설)에 휴지를 대보는 거예요. 빨려 들어가는지.”
휴지가 기운 없이 흐느적거리면 걱정한다. 힘없이 축 처지면 큰일이구나 한다. 고장 났구나. “학교 급식이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잖아요. 거의 다 노후화된 거죠.” 20년의 세월 동안 꿋꿋하게 자신들의 일할 권리를 찾아온 급식실 노동자들이다. 급할 것 없는 정부와 교육청을 대신해서 휴지 조각 하나 들고 간다. 또 한 번 권리를 찾기 위해,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희정 기록노동자·<베테랑의 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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