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19일, 서울행정법원 대법정엔 휠체어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재판부는 법정에 온 휠체어 사용자들에게 사용법과 가격 등을 자세히 묻고, 휠체어 작동 시연을 지켜봤다. 뇌병변·지체·지적장애인 정고은(32)씨가 서울 강서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의 공개변론날이었다.
소송의 시작은 2018년이었다. 장애인에게 보조기기 구매 비용을 지원하는 현행법에 따라 고은씨는 강서구에 전동휠체어를 신청했다. 그러나 강서구는 관련 법령을 들어 지급을 거부했다.(전동휠체어 보험급여 대상을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전동휠체어를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경우’로 한정하는 규정.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의 별표7 ‘보조기기에 대한 보험급여 기준’)
고은씨와 고은씨의 활동지원사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거동이 자유로운 장애인은 전동휠체어 구입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데, 혼자선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은 받을 수 없게 한 규정이라면 타당한 것인가 싶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는 2021년 12월3일 고은씨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전동휠체어조차 자가 조종할 수 없을 정도로 장애가 중하여 그 보호 필요성이 훨씬 더 높은 장애인을 전동휠체어 급여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한 것은 우리 법체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고은씨는 5년 만에 강서구로부터 전동휠체어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이 판결은 2023년 ‘장애인 인권 디딤돌 판결’ 중 하나로 선정됐다.
그런데 ‘고은씨의 소송기’에는 빈칸이 많다. 고은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전동휠체어 비용 지원이 꼭 필요하긴 했지만 부족하나마 수동휠체어와 낡은 중고 전동휠체어가 있었다. 패소할지도 모르는 행정소송을 감수하며 5년이나 ‘전동휠체어’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는 왜 전에 없던 행정소송을 도우며 고은씨와 함께했을까. 2023년 10월18일, 서울 용산구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사무실에서 고은씨, 고은씨를 7년째 지원하는 활동지원사 황순자(60대·가명)씨, 소송을 도운 독립생활연대 김동수(55) 권익옹호팀장을 만났다. 김 팀장 역시 고은씨처럼 뇌병변장애가 있는 장애인 당사자다. 그는 휠체어 얘기에서 “인간이라면 다 자유가 필요하다”는 말을 꺼냈다. 이야기는 고은씨가 세 살이던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고은이가 세 살 때, 엄마 아빠가 뇌병변장애 아이들이 거주하는 시설에 놓고 갔어요. 어릴 때인데 동생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더라고요. 자기만 놓고 간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도 큰 거 같고요.”(활동지원사 황씨)
황씨가 고은씨의 삶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려는데, 고은씨가 직접 말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래, 네가 얘기해’ 하자, 고은씨는 얼굴에 머금던 웃음기를 빼고 단어 하나하나에 힘줘, 이내 어렵게 말을 꺼냈다. 고은씨 눈은 곧 빨개졌다.
“나가야. 난 어떻게. 난 어떻게.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어떻게. 아… 저쪽. 선생님.”(고은씨)
“난 어떻게 하지. 먹고 자고, 먹고 자고만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저쪽 선생님이 왔다고? 김동수 팀장님이 와서 방법을 가르쳐줬다고?”(황씨)
황씨가 의사소통을 돕자, 고은씨는 “응, 응” 했다.
고은씨는 27년 동안 시설에서 거주했다. ‘갇혀 있었다’고 표현할 순 없지만, ‘자유가 있었다’고 할 수도 없는 삶이었다. 고은씨 시선으로 본 세상은 이랬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아빠, 동생과 떨어져 시설에 남았다. 수십 년간 시설의 일정에 맞춰 살아가야 했다. 여행은 1년에 한 번 정도 했던 것 같다. 간혹 교외 나들이를 갔지만, 자유로운 외출은 없었다. 매일 보는 사람도, 하는 일도 비슷했다. 그의 표현대로 ‘먹고 자고 먹고 자고’였다. 더 막막한 건 앞으로의 삶도 그럴 것이란, 정해진 미래에 대한 예감이었다.
같은 뇌병변장애가 있는 김 팀장은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았다. 자신도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제가 어릴 땐 장애인이 다 숨어 살았어요. 이동권도 당연히 없고 휠체어도 귀했고. 형제들이 학교에 가고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면 집 안에 혼자 남아 기어다녔어요. 형제들이 밖에서 간식도 사먹고 할 때, 전 집에만 있었죠. 19살 때까지 집 안에서만 산 거예요. 그러다 처음 세상 밖을 구경했는데, 와 제가 살아온, 생각한 세상과 실제 세상이 완전히 달랐어요. 저뿐만 아니라 세상에 늦게 나온 동료 장애인이 많아요.”
김 팀장은 글을 배우고, 자립에 대해 공부했다. 2000년대 장애인 자립 관련 운동이 생겨나면서 관련 일을 했다. 고은씨 자립도 도왔다. 그는 고은씨를 시설에서 만났을 때, 고은씨가 이야기를 알아듣는 “상당히 양호한” 상태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다 알면서” 27년간 시설에서만 생활했다는 게 안타까웠다. 고은씨는 2017년 시설에서 나왔고, 현재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산다. 황씨를 만난 건 독립을 준비하면서였다. 적응을 위한 배려였다.
“판단 좀 못한다고, 주장 좀 못한다고 평생을 시설에서 보내는 거예요. 인간인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자유가 필요한데. 사회가 기본적으로 그런 사람을 너무 쉽게 생각해요. 장애인도 20대, 30대일 때 정말 활동하고 싶거든요. 고은이 같은 경우도 그 시기라 에너지가 넘쳐요. 미국 같은 선진국들은 24시간 갇혀 지내는 시설은 없애고 했는데, 한국과 일본은 있죠.”(김 팀장)
장애인이 대규모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운동·정책 방향인 ‘장애인 탈시설화’는 우리에겐 갈 길이 먼 과제다. <한겨레>가 전국 17곳 시·도에 문의한 결과를 보면, 탈시설 장애인 자립정착금을 지원받거나 탈시설 자립에 성공한 장애인은 2062명(2022년 6월 기준)이었다. 서울시가 2009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집계한 탈시설 장애인 수는 1242명에 불과하다. 국내 등록장애인은 265만여 명(보건복지부 2022년도 현황)이다.
여론은 발생 사건에 따라 흔들렸다. ‘시설서 장애인 폭행해 사망’ ‘시설 복지사가 장애인 조롱·학대’ 등 인권침해 뉴스가 나오면 여론은 ‘탈시설’에 기울었고, ‘발달장애인 자식 죽이고 스스로 목숨 끊은 어머니’ 뉴스가 나올 때면 ‘시설은 그들에게 숨통’이라고 치켜세워졌다. 다른 한편에선 탈시설은 장애의 종류와 정도, 가족 상황 등 고려할 게 많고, 자립교육 시스템과 거주시설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시설이 이뤄지면 사각지대 장애인이 생겨난다는 우려도 있다.
고은씨는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움직인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지역사회에 살면서,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먹고 싶을 때 먹는 자유가 필요했을 뿐이다.
“고은인 전동휠체어 타면 뭐가 좋아?”(황씨)
“많이 돌아.”(고은씨)
“많이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다네요.”(황씨)
시설에서 나와 자유를 찾은 고은씨에겐 휠체어와 활동지원사가 ‘다리’가 됐다. 황씨가 수동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밀면, 중증장애인인 고은씨에게도 ‘이동의 자유’가 생겼다. 그런데 시설에서부터 함께한 지 1년8개월 정도 됐을 무렵 문제가 생겼다.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는 고은씨 몸무게는 필연적으로 늘 수밖에 없었고, 휠체어를 끄는 황씨 어깨에 회전근개 파열이 왔다. 황씨가 아프면 고은씨가 위험한 건 당연했다. 오르막·내리막길을 갈 때 휠체어를 지탱할 힘이 없었고, 일상생활에서 제약도 많아졌다.
“사람이요, 이동할 수 있다는 것과 없다는 건 아주 큰 차이예요. 젊은 사람도 언덕에서 휠체어를 밀기 힘들어요. 고은이가 다른 사람들이랑 외출했을 때예요. 다른 전동휠체어들은 오르막길도 잘 올라가는데 고은이는 못 가서 밑에서 기다렸어요.”(황씨)
결국 2018년 고은씨와 황씨는 강서구 가양동의 주민센터를 찾아 전동휠체어 급여를 신청했다. 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자인 고은씨에게 전동휠체어 가격은 큰 부담이었다. 기초생활수급 장애인은 209만원 안에서 장애인보조기기 지원이 가능하다고 들은 터였다.
하지만 주민센터는 기계적으로 신청을 거절했다. ‘스스로 운전하기 힘든 중증 지적장애인의 경우 안전상 이유로 지급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더 서글펐던 건, 강서구가 ‘이 제도는 활동지원사를 위한 복지가 아니란 입장’을 내비쳤을 때다. ‘시설에 살았던 고은씨에게 생긴 자유, 그 자유를 돕는 활동지원사, 활동지원사의 건강은 왜 중요한지’ 등을 설명하기엔 너무 길었다. 고은씨와 황씨는 강서구 결정이 야속했지만, 바꿀 수 있단 생각은 못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다들 그냥 참고 산다 하더라고요. 전동휠체어가 절실한 상황이라면 변호사비 댈 돈도 없고,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면 마련해야 할 비용도 없으니까. 저도 되게 마음 졸였어요. 혹시 패소하면 어쩌나. 행정소송 이런 건 패소하면 2천만원 내야 한다고 누가 그러던데, 하면서.”(황씨)
고은씨와 황씨도 처음부터 소송에 나선 건 아니었다. 50만원을 마련해 중고 전동휠체어를 샀다. ‘다리’나 다름없어 온종일 써야 하는 전동휠체어는 1년도 안 돼 고장 났다. 전동휠체어는 비싼 건 5천만원에 이를 정도로 천차만별인데, 가격이 저렴하고 중고일수록 고장도 빨리 난다. 2020년 황씨와 고은씨는 한 번 더 전동휠체어를 신청했다. 다시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요구에 따라 보조기기 처방전, 간이정신진단검사가 포함된 의무기록사본증명서 등을 제출했는데도 그랬다. 특히 강서구는 지적장애인인 고은씨가 지능검사를 받고 ‘전동휠체어를 스스로 작동하는 데 문제없다’는 담당의사 소견을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활동지원사 황씨는 병원에 찾아갔지만 받을 수 없었다.
“못 받을 걸 알면서 병원에 간 나 자신이 우스워서 웃음이 나더라고요. (누구나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어떤 의사가 만에 하나 책임져야 하는데 ‘스스로 작동하는 데 문제없다’ ‘다칠 위험이 없다’는 식의 소견서를 써줄까요.”(황씨)
김 팀장에게 이정훈 독립생활연대 자문 변호사는 ‘차별 같다’며 소송을 한번 해보자고 했다. 비슷한 문제를 겪는 장애인들이 소송할 엄두도 못 냈기에 최초의 소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지자체의 관련 규정에는 모순이 있었다.
“웃긴 거죠. 지적장애가 있으면 ‘위험해서 전동휠체어를 안 준다’ 그래놓고, 직접 사서 쓰는 건 아무 제약이 없잖아요. 모순이에요, 모순. 전동휠체어란 게 저렴해도 300만원 남짓이에요. 200만원도 기초생활수급 장애인에겐 엄청난 돈이거든요. 싼 걸 사서 시간 지나면 또 고장 나서 못 다니게 되고, 악순환이에요. 이런 분이 많은데 다들 포기하고 산 거예요. 우린 안 되는구나. 포기하고 살자.”(김 팀장)
규정과 문서만을 들여다본 지자체는 고은씨의 ‘삶과 돌봄’을 상상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달랐다. 재판부는 ‘급여 대상이 되는 전동휠체어를 자가 조종형 전동휠체어로 한정하고 보조인 조종형 전동휠체어를 배제’함으로써 ‘자가 조종 능력이 있는 뇌병변장애인과 자가 조종 능력이 없는 뇌병변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며 의료급여법 시행규칙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봤다. 특히 “전동휠체어조차 스스로 조작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이 어디론가 이동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이 부분을 사실상 짊어지고 희생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그 가족”이라며 “전동휠체어 관련 급여 제공은 단순히 장애인 한 사람의 존엄과 가치 및 그 개인의 삶의 질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가족공동체 전체의 존엄성 유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질 유지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또 “특별히 가족조차 없는 중증장애인은 돌봄노동을 구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판결 뒤 “이 판결을 계기로 보건복지부 등 행정청이 중증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 등 보조기기가 단순한 운행 도구가 아닌 기본권과 깊은 관련이 있는 보조기기임을 확인하고, 이에 따른 의료급여법, 중증장애인 보조기기 급여 지원에 대한 보건복지부 고시 등 관련 법령을 제·개정하라”고 촉구했다. ‘2023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인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이 판결이 “보조기기 급여가 단순히 개별 급여의 부여 여부를 넘어, 돌봄 및 사회보장 문제와 연결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5년의 싸움은 ‘전동휠체어 급여’를 위한 것이 아닌, 자유를 위한 싸움이었다. 주민센터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말은, ‘보호를 가장한 차별’이었다. 이 판결의 재판부는 서론을 존댓말로 작성했고, 판결문에 <장애의 역사>(킴 닐슨 저) 속 한 대목을 인용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차별은 공기와 같아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리 눈을 떠도 보이지 않지만,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삶의 모든 순간을 차별과 함께 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상처받고 다칠 수 있는(그리고 누구나 갑작스레 장애를 가지게 될 수 있는) 취약한 존재인 동시에, 그 약함을 서로 응시하고 나눌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은 서로 돕고 의존함을 통해 더 잘 지켜낼 수 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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