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은 학교였다.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인생의 학교였다.
2000년대부터 15년 정도 이태원에 주말마다 밤마실을 다녔다. 클럽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지만, 사람 일이 그러하듯 클럽만 가지는 않았다. 클럽 앞에서 출출하면 레바논 청년이 파는 케밥을 야식으로 사 먹었고, 시아파 무슬림만 모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으며, 할랄 고기만 파는 정육점에서 아랍어가 적힌 고기도 구경했다.
이태원 소방서를 지나 우사단로를 오르면 한국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이 나온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못박은 정문을 지나면 서울 야경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첨탑이 우뚝한 모스크 건물과 히잡을 쓴 여성과 수염을 기른 남성들이 우르르 지나는 풍경은 낯설고 아름답다. 가을이 완연한 2023년 10월 주말, 친구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추모하러 그곳에 갔다. 이태원 시장의 휴대전화 가게 앞 입간판에는 ‘이스라엘 지상군 가자지구 침공을 반대한다. Solidarity with Palestine!’ 아래 ‘누구나 개통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안에서 휴대전화를 고르는 사람들, 그곳이 이태원이다.
중국어를 쓰는 이들이 하는 식당에서 만두를 먹고 나오다 ‘퀴논길’에서 굳이 친구를 세우고 설명했다. “여기가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이태원 참사 당일에 시가인 경남 의령에 갔다가 돌아와 차에 내려서 귀가했다는 길이야. 저쪽이 집인가봐.”(박희영 구청장은 나중에 복기하니 이날 동선이 달랐다고 발언을 뒤집었다.) 빨리 걸으면 7~8분, 700m도 안 되는 거리를 차로 1시간 돌아간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도 용서되지 않긴 마찬가지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이태원 파출소의 너무나 가까운 거리가 믿기지 않아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도대체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차로만 터줬어도 희생자가 없지 않았을까, 2022년 가을 해 지는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파출소 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다시 가을이다. 20년 전 아들을 떠나보낸 배우 박원숙씨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그 노래가 내게는 다른 의미가…”라며 방송에서 목이 멘 적이 있다. 그런 가을이 159명의 유가족에게 돌아왔다.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 지면 서러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듣는다. <한겨레21>이 연재한 ‘미안해, 기억할게’에서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얼마나 적극적인 삶을 살았는지 새삼 감동하고 다시 안타까워진다. 생각하면, 축제란 원래 인파 속에서 즐기는 것이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치는 곳에서 눈빛을 마주치며, 그 밀집을 견뎌야 파티를 즐길 수 있다. 그러니 그날의 사고는 전혀 당신들 탓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는 한국인만의 재난이 아니었다. 외국인 희생자만 무려 26명이었다. 케이(K)팝이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어서 ‘자유 대한’을 찾아온 이들이었다. 2022년 추모의 벽에서 웃고 있던 여성 희생자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5명의 이란인, 4명의 러시아 여성이 여기서 숨졌다. 올해 1주기를 맞은 골목에는 외국어로 적힌 추모 포스트잇도 적지 않았고, 고개 숙여 추모하는 외국인도 있었다.
분단에 저항한 김남주 시인은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노래했다. 2022년 그날 이후 이태원은 이태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게 됐다. 당신이 목숨 걸고 타야 하는 지옥철에도 있고, 출근 시간 ‘입석금지’ 팻말에 ‘만석’을 표시하고 당신 앞을 지나는 좌석버스에도 이태원은 있다. 너무나 일상적인 재난이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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