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최일권(54)은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미처 가게 주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수백 번 말한 문장이 쏟아졌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도지사를 이번에 소환하려고 하는데요.” 가게 주인의 눈이 집중하는 듯 가늘어졌다. 최일권은 쉬지 않고 말했다.
“김영환 도지사에게 책임을 물으려면 (충북도민의 10%인) 14만 명의 서명을 받아야 해요. 이름하고 주소만 쓰면 되거든요. 이거 해주실 수 있으세요?”
“집중호우 그거요?” 가게 주인이 답했다.
“네, 물난리 났잖아요. 근데 김영환이 한두 명만 사상자 난 줄 알았다 하고, (사고 현장에) 오지도 않았잖아요. 우리가 도지사 소환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요.” 설명은 끝났다. 주방에서 쳐다보던 가게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줘봐요.” 최일권이 내민 용지 상단에는 ‘주민소환투표청구인 서명부’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최일권은 충북 청주 흥덕구 강내면 주민이다. 그의 집이 있는 강내면 일대는 2023년 7월 집중호우 때 대부분 물에 잠겼다. 강내면 옆으로 흐르는 미호강이 마을을 덮쳤다. 미호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 오송의 지하차도에서는 14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최일권은 평범한 주부였다. 참사 이후 약 두 달이 지난 9월22일, 그는 점심시간에 집 근처 상가를 돌며 서명을 받고 있다. 8월14일부터 시작했으니 한 달이 넘었다. 지금까지 홀로 2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최일권은 청주 흥덕구의 ‘수임인’(소환청구인대표자로부터 서명요청권을 위임받은 사람) 대표다.
‘주민소환제도’ 절차가 충북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방의 선출직 공직자를 해직하려면,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 유효투표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 다만, 도지사의 경우 투표가 시작되려면 120일 동안 충청북도 청구권자의 10%인 13만5438명의 서명이 모여야 한다.
최일권이 스스로 돈과 시간을 들여 거리로 나선 이유는 오송 참사 때문이다. 당시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말이 기폭제 구실을 했다. 7월20일, 김영환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오송 지하차도는) 한두 명의 사상자가 났구나 정도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서명을 받으면서도 이 말을 많이 한다. 김 지사의 이 말이 많이 아팠다. 그 아픔이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원동력이 됐다. 처음엔 가족과 지인 위주로 받던 서명 활동의 반경이 점차 넓어졌다. 틈이 나면 주변 상가로 발걸음이 향한다. 이날도 그는 약 1시간 동안 10여 명에게 서명을 받았다.
최일권처럼 자기 시간을 할애해 서명을 받는 수임인은 약 600명, 주민소환투표청구에 서명한 이는 도달 인원의 10%도 안 되는 1만여 명(김영환 충북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 준비위원회 추산, 2023년 9월 말 기준)이다. 12월12일까지 갈 길이 멀다.
소환 대상자는 김영환 충북도지사. 2022년 7월 취임했다. 4선 의원 출신의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한동안 민주당계에 몸을 담았다. 2016년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한 뒤로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으로 합류했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당시 선거대책위원회에 참여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을 했다.
충북도지사의 말은 입길에 자주 올랐다. 시작은 ‘친일파 논란’이었다. 김영환 지사는 2023년 3월7일 페이스북에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을 두고 이런 글을 올렸다. “(…) 국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 논란이 계속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지만,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른 논란을 만들었다. 3월 말, 제천 산불이 일어났을 때 현장을 찾지 않고 술자리에 참석한 사실이 알려졌다. 4월 초 옥천에서 산불이 났을 땐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꼭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가문 날 산불처럼 하나가 진화되면 또 하나 논란이 타올랐다. 그러던 7월15일, 오송 참사가 일어났다. 충북도는 참사가 일어난 궁평2지하차도의 관리주체이자 교통통제 권한을 가진 기관이었지만, 제대로 모니터링하지 않고 교통통제도 하지 않았다.(7월28일 국무조정실 감찰조사 결과) 김영환 지사는 당시 현장에 오후 1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그리고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 “제가 현장에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주민 사이에서 도지사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배상철(55)은 수해복구 봉사활동에 참여했을 때 피해 주민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회상했다. 구체적으로 주민소환제를 거론하는 이도 많았다. 이전에도 일부 시민단체 사이에서 주민소환제가 언급됐지만 주민들 입에서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이야기는 한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직접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단은 주민소환밖에 없었어요.” 한국문화정보원장을 지낸 이현웅(54) 미래포럼 대표는 자신이 나선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현웅은 충북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 준비위원회 대표를 맡았다. “시민단체든 정치권이든 매일 성명서만 남발하고 있었어요. 언론을 통해 보여주기만 하는 건 존재감만 드러낼 뿐이지 사회에 어떤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거든요.” 배상철은 사무국장으로 참여했다.
8월7일, 이현웅을 비롯한 준비위가 충북도청 앞에 섰다.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하는 김 지사는 오송 참사 당시 직무를 유기하고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언행으로 일관해….” 기자회견을 마친 이현웅은 충북선거관리위원회에 주민소환투표 청구인대표자 증명서교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일주일 뒤 8월14일, 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았다. 투표 개시를 위한 1차 관문을 넘으려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9월19일 오후 3시55분, 이현웅이 청주 성안길 올리브영 사거리에서 어느 가게 옆 창고로 들어갔다. 이곳은 청주 시내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 창고에서 나온 그의 손엔 테이블과 의자가 들려 있었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 대로 한복판에 간이 테이블 3개를 이어 붙이고 의자를 놨다. 그리고 가방에서 펼침막을 꺼냈다. ‘충북도지사 김영환 주민소환 서명대’라는 글자만 적힌 단출한 펼침막이었다.
앙상한 테이블 다리를 펼침막으로 막아 붙이니 제법 그럴듯한 서명대가 완성됐다. 서명대를 차리는 중에 한 부부가 쭈뼛쭈뼛 걸어왔다. “이것만 설치하고 얼른 서명 안내해드릴게요.” 이현웅이 말했다. 조용히 기다렸다가 나란히 서명한 부부는 “얼마나 모였냐”고 물었다.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더 질문은 없었다. 남편 신아무개(60)는 “이 근처에서 서명 받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위치를 몰라 찾아 헤맸다”고 했다.
현행 주민소환법상 서명은 일대일 대면 방식만 가능하다. 청구인대표자나 수임인이 구두로 주민소환투표의 취지를 설명해, 서명자가 주소와 이름을 직접 적는 식이다. 까다롭다. ‘서명대'라고 적힌 현수막 이외에는 다른 현수막도 불가능하고, 선관위에서 받은 용지에 서명을 받아야 한다. 인쇄물·시설물, 전화 등을 통한 활동은 물론 온라인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서도 서명 요청 활동이 불가능하다. 이현웅이 매일 똑같은 시각에 성안길에 나와 서명대를 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아무개 부부처럼 주민들이 서명대를 보고 찾아왔다. 청주 성안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서명대를 보고 멈춘 양재호(65)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네. 알았으면 진작 했지. 사람이 14명이나 죽었는데 책임지는 게 없잖아요. (김영환 지사뿐 아니라) 청주시장도 마찬가지야. 이게 잘못되지 않았나요?”
강내면에서 점심 장사를 준비하던 정근우(54)는 서명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대뜸 욕부터 했다. “그 개××, 도지사를 끌어내리려는 거지요? 나도 수임인 신청했어.” 김영환 지사 고향 선배라는 그는 이전부터 김 지사를 지지해왔다고 한다. “경선 때도 열심히 도와주고. 그런데 여기(강내면) 전체가 수해를 입어서 사업자 몇백 명이 피해를 봤어요. 위로 한마디 정도는 해줘야지.”
참사가 아니라 참사 이후가 이들을 서명대로 이끌고 있었다. 인근에서 안경집을 운영하는 유남규(35)의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그는 “잠기면 안 되는데 잠겼고, 적당히 잠긴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게 잠겼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바뀐 게 없어서 내년에 비가 오면 또 잠길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고깃집에서 만난 신아무개(51)는 발언보다는 일처리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솔직히 친일파 발언 등은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그렇게 화나진 않아요. 그런데 일은 잘해야죠. 배수 관리도 안 됐고 (집중호우 때) 밤새 뭐를 했기에 모니터링도 안 했냐는 거예요. 제대로 안 해놨으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책임지지 않아요. 인정을 해야죠.”
수임인들은 최일권처럼 직접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거나 ‘서명대’를 만들어 서명을 받는다. 청주 상당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재홍(41)은 계산대 옆에 임시서명대를 만들었다. 작은 펼침막을 만들어 걸어놓고 서명 용지와 수임인 신청 안내문을 올려뒀다. 오창읍에 거주하는 박종호(68)는 자기 집 마당에 간이서명대를 설치했다. 하루에 두세 명씩, 각자 50~100명씩 서명을 받았다. 그렇게 조금씩 서명이 모인다.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 박종호는 서명 받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알고 지내던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제 서명 도로 지워주시면 안 되나요? 공문이 왔어요.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아직 돈 쓸 일이 많은데 학교 잘리면….”
공문을 부탁해 받아보니 ‘서명 금지’ 공문이 아니었다. ‘서명요청 활동’, 즉 수임인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의 공문이었다. 한국 역사 속에서 생활인은 공직자를 거스른다는 게 두렵다. 참사 때는 보이지 않던 행정이 득달같이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청주의 한 행정복지센터는 서명이 시작되고 이틀 뒤 주민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를 받는 단체는 서명요청 활동이 제한된다는 내용이었다. 명백한 오류였다. 서명요청 활동 제한은 대표자와 상근 임직원에게만 해당된다. 이 센터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며 일주일 뒤 정정 문자를 보냈다.
약 한 달 동안 집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서명을 받아본 수임인들은 “주민소환제도는 주민소환을 못하게 만들어놓은 제도”라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온라인 서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온라인 청원을 여러 번 해봤는데 당연히 주민소환도 비슷한 시스템이 있을 줄 알았어요. 이렇게 직접 서명을 받으러 다녀야 하는 줄 몰랐죠.” 박재홍이 말했다. 주민소환투표권자의 기준 연령도 선거권(만 18살)과 다른 만 19살이다. 최일권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털어놨다. “한 장에 같은 동 사람들만 서명할 수 있는 것도 문제예요. 글씨를 조금만 갈겨써도 무효래요.” 주민소환법 시행령상 주민소환투표청구인 서명부는 시·군·자치구별로 읍·면·동을 구분해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글씨를 못 알아봐도 주소가 정확하지 않아도 무효가 된다. 수임인 유병천(60)은 “제도 자체가 무효가 많이 나오게 만들어놨다”며 “함정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2015년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 주민소환투표 서명 때는 35만7801명의 서명부 중 9만5164명이 무효 처리됐다. 26.6%였다. 실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22년 12월까지 선관위에 청구된 125건 중 주민소환투표를 실시하지 못하고 종결된 사례가 113건이었다(91.1%). 이 중 서명 미달로 무산된 경우가 67건으로 약 60%에 이르렀다. 1차 관문부터 좌절된 셈이다.
준비위는 서명 받는 수임인 수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서명을 달성하기 위해 600여 명인 수임인을 10월16일 운동본부 출범 전 1천 명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선 이런 운동 자체를 “청구 사유가 의혹·선동 정도이고 2024년 총선 사전운동 의혹이 짙다”(충북자유민주시민연합)고 비판한다. 혹은 “소모적이고 끊임없는 정쟁과 논란은 충북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황영호 충북도의회 의장)이라고 한다.
주민소환제 대표 청구인으로 나선 이현웅은 더불어민주당 정치인이다. 제21대 총선에서 청주 상당에 출마했지만, 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천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선 후보일 때 캠프에서 현장형정책총괄특보단장 등을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주민소환제 자체가 정치적 활동이에요.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정치적이다, 정치적이지 않다고 얘기할 수 없어요. 제가 이걸 한다고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니에요. (주민소환) 결과에 책임져야 하고요. (총선을 앞두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지역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저는 여기에 다 쏟아야 하거든요.”
주민들은 그저 주민소환제를 통해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목소리가 김 지사에게 닿기를 바랄 뿐이다. “그동안 한 번도 (지자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성공한 적이 없잖아요. 이번에 본보기로라도 김영환을 끌어내려서 전국 지자체장들이 국민을 무서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성공하지 않더라도 (주민소환제가) 국민적 논의로 번져 지자체가 활성화됐으면 좋겠고요.” 박종호가 말했다.
<한겨레21>은 준비위가 주장하는 김 지사의 소환 사유와 관련해 입장과 반박을 듣기 위해 충북도청 쪽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대신 대변인 명의의 ‘주민소환 제기 관련 충청북도 입장’을 보내왔다. 입장문에는 “언제나 충청북도는 도민들의 뜻을 받드는 도정을 펼치고자 한다”면서도 “일부에서 걱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명운동을 계기로 도민들의 마음이 분열되고, 도정 현안 추진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 피해가 오롯이 도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로 생각된다”고 적혀 있었다.
2023년 9월22일 강내면의 음식점. 최일권이 서명을 받고 있을 때 밥을 먹으며 조용히 듣고 있던 손님이 불쑥 고개 들어 질문을 던졌다. “그 서명을 받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14만 명이 서명하면 다시 투표할 수 있어요. 도지사 투표를 다시 하는 거예요.” 최일권이 답했다. “아, 도지사를. 근데 도지사를 바꾸면 해결돼요?” 최일권이 다시 물었다. “안 바꾸면요?” 충북 주민이, 주민에게 묻는다.
청주·오송(충북)=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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