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 남은 유일한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을 둘러싸고 원주시와 시민들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본격적인 철거 작업 전 극장 앞 가림막을 설치하려는 시와 이를 막으려는 시민들이 대치 중이다.
2023년 9월6일 아침 6시30분쯤 원주 평원동 아카데미극장으로 향하던 철거 하청업체 직원들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아카데미극장 주변 가림막 설치 마무리 작업을 위해 막 도착한 터였다. 이들을 막아선 건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이하 아친연대)였다. 하청업체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철거 원청업체 직원은 사진만 찍고 돌아갔다.
한시름 돌렸지만, 잠깐의 평화다. 시청에 상황을 보고한 원청업체 직원은 아친연대에 이런 말을 남기고 철수했다고 한다. “다음엔 어쩔 수 없이 작업 진행해야 합니다.”
2023년 60살이 된 아카데미극장를 향한 철거 움직임은 2022년 7월 원강수 시장이 취임한 이후 본격화됐다.(제1466호 ‘하루아침에 문화 뽑아버린 원주시… 아카데미 보존도 모르쇠’) 원주시는 2023년 4월 공식적으로 철거 계획을 밝힌 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아친연대는 원주시가 극장 앞에 펜스를 설치한 6월6일부터 극장 길 건너편에 천막을 치고 농성했다.
아친연대와 원주시가 처음 충돌한 건 8월8일이다. 원주시는 당시 극장 자료를 이전하려고 시도했지만 아친연대가 막아서며 무산됐다. 8월29일엔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 왔다. 이들이 아친연대를 막아서는 동안 철거업체가 가림막을 쳤다. 아친연대에서 활동하는 오현택(33)씨는 “마지막 남은 한 면까지 가림막으로 막아버리면 모든 면이 다 막히는 거라 철거를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다”며 “어떻게든 저지해보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9월8일 남은 가림막을 치면, 남은 건 본격적인 철거 작업이다.
학술단체에선 “일방적 철거 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와 한국사회학회 등 28개 학술단체는 9월4일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긴급 호소문'을 내고 “아카데미극장은 20세기의 한국인들이 영화를 위해 함께 모여 웃고 울며 여가를 보내던 삶의 흔적을 간직한 매우 희귀한 장소”라며 “그 자체로 문화적, 역사적 활용 가치가 충만한 희소성 높은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아카데미극장의 등록문화재 지정을 위한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원주시에선 아카데미극장의 철거 이유 중 하나로 리모델링과 보수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를 드는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정부에서 보수유지비를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아친연대는 7월 아카데미극장 등록문화재 직권지정을 요구하는 전국문화예술인 13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문화재청에 전달한 상태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아카데미극장의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에 관해 묻는 질문에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등록문화재 지정에 관한 원주시의 반응은 냉담하다. 아친연대 한 관계자는 “최근 원강수 시장과 비공식 면담을 했는데 ‘문화적 가치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는데 그런 거 원주에 엄청나게 많다’고 말하더라”며 “등록문화재 심사라도 받아보자고 했지만 그냥 안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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