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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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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문화’ 뽑아버린 원주시…아카데미 보존도 ‘모르쇠’

전국 가장 좋은 평가 받은 원주 문화도시사업… 주무 부처와 상의도 않고 중단
바뀐 시장은 1963년 개관 단관극장 ‘아카데미’ 보존 움직임에 ‘모르쇠’로
등록 2023-06-02 17:24 수정 2023-06-06 14:07
2023년 3월3일, 강원도 원주시에서 아카데미극장 1층 유리문을 가림막으로 막고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펼침막을 설치한 모습. 아카데미의 친구들 제공

2023년 3월3일, 강원도 원주시에서 아카데미극장 1층 유리문을 가림막으로 막고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펼침막을 설치한 모습. 아카데미의 친구들 제공

“편집장님, 문화도시사업이… 이제 없어진대요.”

강원도 원주 매거진(잡지) <점점>의 편집장 조수정씨가 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의 연락을 받은 건, 마감을 나흘 앞둔 2023년 3월20일 오후였다. 아직 사업 기간이 남았는데 왜 종료되느냐는 수정씨의 질문에 센터도 “공문을 받았다”고만 했다. 더는 <점점>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센터는 잡지 발행처였다. 이미 잡지는 완성 단계인데, 원고료도 못 줄 상황이 됐다.

2024년까지 계획된 사업인데 왜 갑자기

원주는 2020년부터 문화도시사업을 진행했다. 지역 고유의 자산을 활용해 문화도시를 조성하자는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이다. 중심엔 시민이 있었다. “도시가 가진 역사적인 정체성을 시민이 발굴했어요. 그 정체성을 기반으로 5년 동안 81개 의제를 시민들이 수십 차례 회의를 거쳐 결정해요.” 문화도시추진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던 정종은 상지대 교수의 말이다.

원주는 2020년 우수도시로, 2021년 최우수도시로 평가받았다. 전국에서 진행되는 사업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원주시 문화도시사업이 왜 중단되는지 수정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정씨와 달리 지원센터에선 2022년부터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2022년 12월29일, 센터 사무국장 김선애씨는 원주시 문화예술과와 회의했다. 그 자리에 문화도시사업 변경 이야기가 나왔다. 센터 예산 중 10억원 정도를 시가 원하는 다른 사업으로 바꾸자고 했다. 센터의 한 해 예산은 약 30억원이다. 센터에선 거절했다. “정말 당황했어요. 협의하자고 했지만, 결정해서 왔더라고요.” 선애씨가 말했다. “이 사업은 문체부와 진행하는 사업이고, 지정 당시 5개년 문화도시조성계획을 제출했거든요. 변경하려면 문체부 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에서) 진행하려다보니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센터와) 이견이 있었던 거죠.”

원주 문화도시 거점 공간으로 사용됐던 진달래홀. 옛 원주여고 진달래관을 리모델링해 2022년 7월부터 다양한 문화도시사업이 진행됐지만, 현재는 닫혀 있다. 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 제공

원주 문화도시 거점 공간으로 사용됐던 진달래홀. 옛 원주여고 진달래관을 리모델링해 2022년 7월부터 다양한 문화도시사업이 진행됐지만, 현재는 닫혀 있다. 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 제공

센터가 문화예술과의 요구로 골머리를 앓던 2022년 12월, 원주 청년 4명도 원주시 문화예술과를 탓하며 한자리에 모였다. 문화예술과 예산안 항목 중 2022년까지만 해도 약 1억원이 배정됐던 ‘아카데미극장 활용 예산’이 2천만원 수준으로 줄어든 것을 발견해서였다. 상영회 등 극장 관련 활동 예산은 없어졌고 전기요금과 수도세 등 시설관리비가 다였다.

1963년 개관한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에 남은 유일한 단관극장이다. 2015년 다른 단관극장인 문화극장 철거 뒤 본격적으로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시민들 요구가 계속되자 원창묵 전 시장(더불어민주당)은 2021년 극장을 매입해 리모델링하겠다고 밝혔다. 2022년엔 아카데미극장 활용 방안 모색이 문화도시사업 의제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기조가 바뀐 것은 원강수 시장(국민의힘)이 2022년 7월 취임하면서다.

원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신동화(35)씨를 비롯해 한자리에 모인 4명은 곧 50여 명으로 불어났다. “오픈채팅방을 열었는데 하루 만에 50여 명이 들어오더라고요.” 이들은 이 모임에 ‘아카데미의 친구들’(아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3년 2월22일, 아카데미극장 출입문에 알록달록한 시트지가 붙었다. 시트지엔 ‘아카데미, 우리의 극장’ ‘추억이 가득한 우리의 아카데미극장’이라는 글씨가 쓰였다. 아친은 이날 처음 인간 띠 잇기 챌린지를 진행했다. 시정정책토론 청구를 위한 서명도 모으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움직임에 시는 3월3일 극장 폐쇄로 응답했다. 투명 유리문은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하얀색 천으로 덮었다.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펼침막이 알록달록한 시트지를 막았다. 정밀안전진단 결과 안전등급 ‘D등급’을 받아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극장 앞에는 위험시설물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었다.

2023년 2월22일 강원도 원주시 아카데미극장 앞에서 ‘아카데미의친구들’이 시정정책토론 청구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그 뒤로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표지판이 보인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제공

2023년 2월22일 강원도 원주시 아카데미극장 앞에서 ‘아카데미의친구들’이 시정정책토론 청구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그 뒤로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표지판이 보인다. 아카데미의 친구들 제공

공문 받고 열흘 뒤 센터는 멈췄다

이 무렵 문화도시사업을 둘러싼 지원센터와의 갈등도 깊어졌다. 원주시는 2023년 3월20일 지원센터가 사업 변경 협의를 불성실하게 했다며 3월31일부로 보조금을 중단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당시 시는 보도자료를 내어 “문화도시사업이 한계점에 봉착했다”며 “지난 3년간 사업 내용과 예산집행 내용을 검토한 결과 센터가 과도한 용역비 집행과 내부거래 금지 위반 등 보조금 집행 관련 지침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공문을 받고 열흘 뒤 지원센터는 멈췄다. 센터장을 포함한 직원 11명이 3년 동안 쌓아온 사업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일방적인 원주시의 발표에 사업에서 배제된 지원센터 직원들은 두 달 넘게 일하지 못하고 있다. “보통은 절차상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으니 해명해보라는 과정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어요. 강원도청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고, 문체부는 제가 전화해서 알았어요. 그러니까 국책사업을 진행하는데 원주시가 알아서 결정한 거예요.”(선애씨)

원주시는 구체적인 조사 결과를 묻는 <한겨레21> 질의에 “내부적으로 자체 감사를 진행하는 중이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는 자체 감사와 별개로 사업 주체를 원주문화재단으로 바꾸는 등의 사업 조성 계획 변경을 문체부에 신청한 상태다. 문화도시사업 주관 부처인 문체부는 지자체가 사업의 ‘주체'이기 때문에 절차만 따른다면 사업자 변경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문체부는 원주시 발표에 관한 자체 점검 결과와 사업 조성 계획 변경안을 문화도시심의위원회에 올린 상태다. 문체부 관계자는 “심의위원회를 거쳐 승인 여부를 6월5일 전에 원주시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원주시의 중단 통보 이후 문화도시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이 진행하려던 2023년 사업도 모두 중단됐다. ‘문화도시 원주 연차보고서 2022’에 따르면 2022년 60개 테이블(의제)에서 557명이 사업에 참여했다. 수정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수정씨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다정한 ‘로컬 잡지’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숨어 있는 문화공간과 창작자를 발굴해 점을 찍어보자는 취지에서 잡지 이름도 <점점>으로 지었다. 2021년부터 분기에 한 번씩, 이번이 8번째였다. 사업 중단 통보를 들은 그가 선택한 것은 크라우드펀딩이었다. 이틀 만에 모인 금액으로 ‘폐간호’를 만들었다. 폐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잡지엔 철거를 앞둔 아카데미극장 이야기도 실렸다.

“이 글이 당신에게 닿았을 때, 아카데미극장은 어떤 상황에 놓였을지 알 수 없다. 그만큼 요즘의 아카데미는 하루하루가 절벽 위에 선 듯 위태롭다.”(‘우리가 지키려는 건 그저 낡은 건물이 아니다’)

원주 문화도시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잡지 <점점>. 1호부터 7호까진 원주문화도시 로고가 박혔지만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제작한 폐간호(맨 오른쪽)엔 로고가 없다. 류석우 기자

원주 문화도시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잡지 <점점>. 1호부터 7호까진 원주문화도시 로고가 박혔지만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제작한 폐간호(맨 오른쪽)엔 로고가 없다. 류석우 기자

원주시장, 결론 정해 ‘아친’ 만나놓고는

위태로운 길을 걷던 아친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23년 4월10일 원강수 시장과 처음으로 만났다. 그 자리에서 원 시장은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원 시장은 취임 이후 여러 차례 “숙의 과정을 거치겠다”거나 “공개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했기 때문에 아친은 간담회에서 낸 의견을 원주시가 진지하게 들어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 원 시장은 취재진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야외공연장과 주차장을 조성하겠다.”

원주시가 결론을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아친을 만났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원주시 공무원 ㄱ씨는 “아카데미극장을 어떻게(철거) 하겠다는 문서를 4월7일 작성해서 결재가 났다”고 폭로했다. 이 문서는 김지헌 원주시의원이 상임위에서도 공개하라고 요청했지만 시는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시에서) 따로 찾아와서 자료는 줄 수 없지만 말로 설명하겠다고 했다”며 “떳떳하게 ‘의원님이 생각하는 게 맞다’며 철거 관련해 자기들끼리 심의한 거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보존을 반대하는 상인들과의 만남에서 원 시장이 철거를 약속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카데미극장 인근 시장상인회 관계자는 “시장과 공연장을 크게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다”며 “장날에 사람들을 모이도록 해서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약속한 시점과 관련해선 철거를 발표한 4월11일에서 ‘며칠 전’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원주시 쪽은 “공식적으로 원 시장이 상인회와 만난 적은 없다”고 했다.

시 내부적으로는 결속을 다졌다. <한겨레21>이 확보한 원주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원 시장은 4월24일 ‘아카데미극장 관련 시민사회 혼란 경계, 적극 대응 당부’라는 제목의 지시를 내려보냈다. 지시엔 이런 내용이 들어갔다. “아카데미 친구들이라는 단체가 아카데미극장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라며 존치를 주장하고 있으나, 1935년에 개관한 광주극장이 현재까지 단관극장으로 운영 중에 있음. 이는 사실이 아닌 정보로 시민사회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것임.”

그러나 아친은 “단관극장 ‘원형’을 가장 오랫동안 보존한 건축물”이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원 시장이 언급한 광주극장은 1935년 개관했지만 1967년 화재로 전소돼 다시 세워졌다.

1983년의 아카데미극장 모습. 아카데미의 친구들 제공

1983년의 아카데미극장 모습. 아카데미의 친구들 제공

지역 소멸한다면서, 왜 청년 말 듣지 않나요

철거 발표 이후는 빠르게 진행됐다. 철거 계획을 담은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안과 철거 예산안이 연달아 시의회를 통과했다. 아친 쪽은 시의회에 제출할 안건을 미리 공고해야 하는데 공고 없이 철거안을 제출했다며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위법한 부분에 대해선 고발 등 법적 조치도 검토 중이다.

원주 청년들은 “이게 싸울 문제냐”고 말한다. “지역에 사람이 없다고 소멸한다고 하잖아요. 청년을 유입시켜야 한다고 항상 말하면서 정작 청년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아요. 논의하면 되는데 왜 이런 것 가지고 저희가 싸워야 해요?” 동화씨의 말이다.

원주=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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