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동부 ‘카프마르탱 해변’의 언덕엔 가로세로 각각 3.66m 정사각형 터에 높이 2.26m 작은 나무집, ‘르카바농’(Le Cabanon)이 서 있다. 동쪽으로 난 문을 열고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가구라곤 나무로 만든 붙박이 책상·침대·옷장에 철제 세면대 하나가 전부. 창은 모두 3개인데, 70×70㎝ 크기가 두 개, 70×30㎝ 크기가 한 개다. 바닥이 노란색, 천장은 빨강·초록·하양으로 칠해진 점이 다르달까. 크기나 간소한 세간살이는 영락없는 우리나라 농막 같다.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카바농은 스위스 출신 건축가 르코르뷔지에(1887~1965)가 1951년 설계했다. 그가 동성애를 혐오했고, 남성우월주의자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르코르뷔지에는 자신보다 나은 평가를 받던 여성 건축가의 건축물에 멋대로 낙서해 모욕했다. ‘3.66m’라는 수치도 탐정소설 속 주인공 영국 남성의 키 1.83m(6ft)의 두 배이고, ‘2.26m’는 이 남성이 팔을 뻗었을 때의 길이라고 스스로 설명한다.) 하지만 ‘현대 아파트의 효시’로 337가구가 살 수 있는,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이라는 12층 공동주택을 세웠던 유명 건축가가 이 작고 수수한 집을 ‘나의 궁전’이라고 불렀다는 점이 울림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르코르뷔지에는 마지막 13년간 매년 여름을 내내 카바농에서 지냈고, 여기서 죽었다.
널리 퍼진 유니테 다비타시옹과 달리 카바농은 실험에 그쳤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 카바농이 처음 대중화에 성공할지 모른다. 바로 전국 23만여 채(2022년 말 농림축산식품부 집계)에 이르는 ‘농막’ 때문이다. 2022년 12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은 ‘귀농·귀촌과 농촌에서 살아보기' 보고서에서 2019~2022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귀농·귀촌’ 관련 글을 분석해 ‘미니멀 라이프(물건·일을 적게 소유하는 생활방식) 귀농’을 트렌드로 선정하기도 했다.
카바농은 헛간·오두막이라는 뜻이다. ‘주거시설’이라는 의미가 다소 모호하다. 농막의 법적 지위도 ‘농작업 중 일시 휴식을 위한 시설’(농지법 시행규칙 제3조의 2)일 뿐이다. 넓이는 각각 13.4㎡와 18㎡(컨테이너형)다. 2019년 ‘카바농 같은 진짜 농막 만들기’를 기조로 ‘카바농 목조주택 건축학교’를 연 김대식 학교장을 2023년 7월12일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교정에서 만났다.
―학교 이름에 ‘카바농’이라는 프랑스어가 붙어 있습니다.
“유학을 다녀온 건 아니고요.(웃음) 제가 고향인 포천으로 귀농해 텃밭을 가꾸며 목수일을 한 지 이제 26년 됐습니다. 초기에 펜션으로도 쓰고 목공 작업장으로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연면적 100평에 2층짜리 큰 집을 지었어요. 많이 후회했어요. 큰 집에 산다는 건 집을 이고 산다고 해야 할까요. 집에 눌려서 살게 돼요. 농촌으로 이주하고 싶은 건 욕심내서 가지려는 게 아니라 줄여나가고, 비워나가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큰 집은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다시 채우게 하더라고요. ‘아, 집이라는 게 사는 데 최소한의 공간만 있으면 되는데….’ 작은 집을 지어 살면 원래 계획했던 대로 많은 걸 버리면서 살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작은 집을 연구하다보니 카바농을 알게 됐죠. ‘대체 이 작은 집의 의미는 뭘까’ 고민했죠. 그러면서 카바농의 가치를 구현하자, 이왕이면 귀농·귀촌을 꿈꾸는 분들과 함께 구현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살기 좋은 제대로 된 농막에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해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26년 전 귀농했을 때는 어떻게 생활했나요.
“처음 귀농했을 땐 80만원짜리 컨테이너를 하나 사다가 생활했어요. 전기도 끌어 쓰고 물도 썼죠. 알고 보니 그게 불법이더라고요. 농막이 이동 가능한 ‘가설건축물’이거든요. 그런데 2012년 말 정부가 유권해석으로 농막에 전기·수도·가스를 설치할 수 있다고 해줬어요. 컨테이너는 불편해요. 물건을 운송하기 위한 공간이잖아요. 그게 제일 싸고 구하기 쉬우니까 사람들이 (귀농을) 거기서 시작한 거죠. (넓이) 20㎡ 이내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경량 이동식 목조 농막’을 생각했습니다. 컨테이너는 건축물용 뼈대가 아니지만 목조주택은 뼈대 자체가 건축용이라서 큰 하중도 이겨내고 튼튼해요. 더욱이 철골이나 콘크리트가 안 들어가서 친환경적이죠.”(농식품부 담당자 설명을 들어보면 2014년 4월 농지법 시행규칙에 농막 면적이 20㎡ 이내로 규정된 것도 널리 쓰였던 컨테이너 크기 18㎡(3×6m)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수업합니까.
“10일간 교육합니다. 학생 10명가량이 10일 안에 20㎡(농막의 법적 최대 크기) 크기의 목조주택을 짓습니다. 저는 도와주기만 할 뿐, 학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집을 지어봅니다. △바닥 구조 만들기 △바닥 배선·배관 작업과 벽체 구조 작업 △벽체 붙이기△서까래 작업 △창문·문틀 시공 △내부 인테리어 △주방 타일 작업 △지붕 마감 등의 순으로 진행합니다. 지금까지 졸업생 수는 모두 300여 명입니다. 80~90%가 망치질 한번 안 해본 분들이에요. 부부가 함께 오기도 합니다. 집 짓는 이론과 지식은 유튜브나 책 등 여기저기서 많이 얻을 수 있어요. 도구 사용법도 반나절이면 익힐 수 있습니다. 직접 해볼 기회가 없었던 거죠. ‘작은 목조주택’의 가장 큰 장점은 한두 명이 손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기본에 충실하면 100년 가는 주택을 지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힘’ ‘건축을 보는 안목’이에요. 튼튼하게 오래가는 집을 만들려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나갈지가 중요합니다. 초보자들이 모이니까 실수도 자주 생기는데, 그때그때 같이 고민하면서 풀어가는 걸 함께 경험하는 거예요.”
―20㎡ 이내 목조주택을 짓는 비용과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우리 학교에서 배웠다면 두 명이 한 달이면 6평(약 20㎡) 이동식 목조주택은 충분히 지을 수 있습니다. 비용은 골조, 안에 들어가는 창문까지 순수 자재비 1천만원, 여기에 싱크대·변기·타일 등 추가 자재비까지 다 합치면 1300만원 정도 들어가요. 그런데 직접 짓지 않고 사면, 지금 시세로 3천만원 정도 합니다. 직접 지으면 컨테이너 농막 비용만으로 목조 농막에서 살 수 있죠.”
―2023년 6월13일 농식품부가 농막에서의 야간 취침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으로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백지화했는데요.
“도시에 살며 시골에서 주말농장 형태로 왔다 갔다 하면서 농사짓다가 하루 이틀 잠자기도 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해서 농막을 짓거든요. 감사원의 감사 결과(4월18일)를 보면 농막을 호화롭게 너무 크게 지었다고, 호화 별장이라고 문제점이 지적됐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일부인데 그걸 침소봉대했어요. 귀농할 때 도시 생활, 전 재산을 일시에 처분하고 농촌에 가는 경우는 잘 없어요. 입법예고했다가 철회된 규정을 보면 농지 200평 이하일 땐 2평 이하 농막만 짓도록 하는 게, 그게 참 행정편의적 발상이죠.”
농식품부가 추진한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농지 면적 200평 미만일 땐 농막 2평으로 제한 △야간 취침 금지 △취침·주방·욕실 공간을 전체 농막 면적의 25%로 제한 등을 뼈대로 한다. ‘농림부는 농민을 괴롭히는 부서. 농민이 농사 후 휴식 공간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삶의 질 파괴하는 악법 당장 고쳐라’(한 유튜브 채널 댓글) 등 농민들까지 “실정을 모른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농식품부 한 관계자는 “농지는 헌법에 따라 농사짓기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권리와 의무·제한이 따르는 공공재 성격이 강한 건 사실입니다. 농막은 원래 농기구 보관 창고예요. 실상을 고려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융통성 있게 농막 이용을 관리했는데, 감사원이 2022년부터 오랫동안 감사하면서 법 문구만 엄격하게 본 거예요. 다 걸리죠. 그래서 개정안을 발표했는데, 언론 등이 보기에는 과한 거예요. 이제 감사원 의견대로 개정안을 계속 추진할 수는 없죠. 일단 무기한 보류한 상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귀농·귀촌에서 농막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가 귀농·귀촌 강의도 하고 있어요. 그때마다 오도이촌(5일은 도시에, 이틀은 농촌에) 생활을 하다가, 혹은 세컨드하우스처럼 오가다가 익숙해지면 그때 완전히 귀농해도 늦지 않다고 하거든요. 귀농·귀촌에 실패 안 하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중간단계를 두는 거예요. 그때 농막이라는 공간이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도 26년 전에 7년 정도 가건물을 짓고 도시에서 출퇴근했어요. 시골문화를 경험하고, 안면도 익히고, 가끔 마을 행사에도 참석하고요. 제가 그 7년간의 중간단계 없이 귀농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리고 별장이라는 비판도 ‘호화’만 떠올리는데, 도시에서 오갈 수 있으면 아무리 허름해도 별장인 거죠. 우리나라 도시 사람들이 허름하고 작지만 시골에 별장이 하나씩 있다면 얼마나 행복해질까 생각해요. 농막 크기는 법 취지대로 농지 훼손을 최소화하도록 20㎡로 제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넓히려 욕심부리는 건 항공사진으로 다 걸러낼 수 있어요.”
농막은 카바농이면 안 되는가. 이번 농막 논란에서 농촌·농민을 바라보는 도시 사람들의 비뚤어진 시선도 확인됐다.
“농막을 고급스럽게 해놓은 걸 문제 삼는 것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농막은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하면 안 되나요? 서울 강남 아파트는 금으로 치장해도 아무도 욕하지 않잖아요. 유독 시골에 농막을 짓는 것에 왜 호화로우면 안 된다는 기준을 대는지 모르겠어요. 농막은 농민의 쉴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농촌 사람은 헝겊때기만 덮어야 합니까. 옥장판 깔면 농사지을 마음이 없다는 건가요?”
포천(경기)=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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